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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 7 - 혼노 사의 변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소설 <오다 노부나가>의 후반부는 마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복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선 5권 미카타가라하 전투가 그랬고, 6권 나가시노 전투가 그랬다. 마지막인 7권 <혼사 사의 변>도 마찬가지였다.
우다이진 노부나가는 쿄토 상경 작전 이래, 천하의 공적이 되었다. 처음에는 혼간 사 세력과 결탁한 쇼군, 아사쿠라-아사이 연합군 그리고 카이의 타케다 신겐으로 이루어진 반 노부나가 연합으로부터 시작해서 사방이 적이었다. 우군은 오로지 미카와와 토토우미 그리고 스루가를 영지로 삼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뿐.
<오다 노부나가> 마지막 권은 오다 노부나가에게 무려 세 번이나 배신을 감행한 마츠나가 히사이데가 자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동쪽에서 자신을 위협하던 우에스기 겐신을 막고, 사이고쿠의 패자 모리 정벌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면서 오다 노부나가의 운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정에서 우다이진 벼슬도 제수 받아 명실상부한 천하인이 되었다.
우다이진의 운빨은 정말 대단했다. 미카타가하라에서 도쿠가와 군에게 괴멸적 타격을 가한 신겐이 죽으면서 위기를 벗어나는데 성공했고, 그의 사후에는 그렇게 대결을 피하려고 했던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과의 대결에서도 결국 겐신이 병사하면서 천하포무의 꿈을 이룰 수가 있었다.
다만 시대의 혁명가이자 풍운아였던 우다이진은 내부 단속에 결국 실패한 영용한 군주였다. 외부의 적에 대해 용서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성공에 일조한 가신들에게까지 가혹했던 것은 결국 그의 운명을 끝장낸 패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오와리 이래 후다이였던 하야시 사도노카미를 숙청하고 모반한 아라키 무라시게 일족에 대한 처참한 주벌은 훗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칸파쿠 히데츠구 일족 처형을 연상시키는 그런 무시무시한 오판이었다.
하마마츠의 사돈 도쿠가와 가문에도 사단이 났는데, 그것은 바로 시나노의 타케다 카츠요리와 내통한 이에야스의 정실 츠키야마 부인과 그의 아들 노부야스 문제였다. 우다이진의 장녀 토쿠히메가 전한 오카자키 내전의 스캔들과 이에야스 가신들의 실수로 장차 천하를 다스릴 패자로서 우다이진은 사위에게 할복을 명령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정실 부인과 적장자에 대한 구명을 호소할 수도 있었으나, 당시 자신보다 기령과 무력에서 앞선 상전 격인 동맹자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우다이진에게 운명의 해가 된 덴쇼 10년(1582년)의 출발은 산뜻했다. 나가시노 전투에서 처참한 패전을 겪긴 했지만 여전히 카이와 시나노의 패자로 군림하던 타케다 카츠요리의 실정으로 다수의 가신들이 이탈한다는 첩보를 접수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은 미카타가하라의 최종 복수전에 나선다. 수대를 거쳐온 미나모토 씨 명문 출신의 카츠요리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배신당하고, 멸문하는 장면도 이미 읽었기에 기시감으로 넘어가련다.
우다이진의 진짜 문제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사천왕 중의 한 명인 아케치 미츠히데에 대한 처우였다. 원래 아사쿠라 가문에 출사하던 아케치 미츠히데의 백부는 바로 오노/노히메의 아버지였던 미노의 살무사 사이토 도산이었다. 도산 역시 미츠히데의 역량을 높게 평가했었다. 물론 그것은 사위 우다이진 노부나가를 만나기 전의 일이었다. 오다 군단에 합류한 아케치 미츠히데는 축성의 달인으로 우다이진 노부나가의 거성인 아즈치 성을 건축했으며, 무장으로서도 숱한 전공을 세워 단바와 오미의 54만 석의 영지를 받은 오다 가문 중신 중의 중신이었다.
위기를 극복한 우다이진 노부나가는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바로 이런 사나이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대머리’라고 부르며 자신의 측근들인 코쇼들 앞에서 망신 주기를 거듭한다. 십대인 모리 란마루를 시켜 대신 폭행하는 장면에서는 기가 찰 지경이었다. 게다가 카츠요리 정벌 후에 미츠히데 자신의 결정적 말실수까지 겹치면서 미츠히데는 자신이 결국 우다이진에게 팽당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 잡히게 된다.
결국 모든 책임은 자신의 중신이 모반할 생각을 품게 한 우다이진 노부나가에게 돌려야할 것 같다. 교토를 방문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접대역을 맡겼다가 자신의 의중을 읽지 못한 미츠히데에게 다시 한 번 벼락 같은 호통을 친 우다이진. 한 때 천하를 품을 만한 기량을 가졌던 무장에게 그런 모욕을 가하고도, 아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빗추의 다가마츠 성에서 사이고쿠의 모리 군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하시바 히데요시 휘하에 들어가 싸우라는 명령에 결국 아케치 미츠히데는 병력을 동원해서 혼노 사에 머물고 있던 우다이진 노부나가를 습격한다.
할복을 거부하고 혼노 사에서 끝까지 싸우던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의 어느 지점에서 이시야마 혼간 사가 있던 오카사에 거성을 쌓고, 사이고쿠의 모리 가문을 치고 그 다음에 칸토 오다와라의 호죠 가문을 정벌하는 유언 같이 남긴 말 우다이진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대로 따랐다는 점이다. 그는 과연 자신의 죽은 뒤까지도 예언할 수 있는 그런 능력자였단 말일까.
오다 노부나가가 생전에 타령하던 아츠모리처럼 그는 인생 50년을 넘기지 못하고 풍운아의 삶을 혼노 사에서 마무리지었다. 평소 관습과 전통을 우습게 알고,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하려던 그의 천하포무 꿈은 그렇게 스러져 갔다. 고수처럼 전장에서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그의 전략 전술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시바타 카츠이에나 하시바 히데요시 같이 야심만만한 가신들을 부리고, 동맹자이자 라이벌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내로라하는 무장들을 다루는 솜씨 역시 대단했다.
아케치 미츠히데가 새로 쌓은 아즈치 성을 킨키의 새로운 중심지로 삼아 쿄토의 국왕을 근왕이라는 미명 아래 통제하면서 각지를 제압하려는 시도도 인상적이었다. 일찍이 교역의 중요성을 깨달아 통행의 제한을 풀고 물산의 유통을 장려한 것처럼 아즈치 성 일대를 일체의 세가 없는 자유도시로 만들어 사카이 버금가는 상업 요충지로 만드는 경세의 달인이기도 했다. 난세의 어둠을 걷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과연 천하인 다운 모습이었다. 다만, 오와리의 난폭자라는 킷포시 시절의 별명처럼 너무 많은 피를 흘린 게 문제였다. 덕분에 후세에도 그에 대해 무력만 앞세우는 무자비한 폭군이라는 세간의 평이 남게 된 게 아닐까.
이런 우다이진 노부나가의 실패를 옆에서 조용히 관찰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그것과는 다른 방식의 포용과 평화의 정신으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성공했다. 결국 천하제패에 실패한 군주가 주는 교훈이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이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