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제3시집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15년의 세월을 건너


우연이다. 라고 밖에 설명이 안될 것 같습니다.

다른 책을 사러 서점에 들렀는데, 우연히 류시화 시인의 신간 시집을 발견했습니다. 마지막 시집 발간 이후로 년수로 치면 15년만이었습니다.

( 시인의 얼굴도 참 안타깝게도 상했습니다 얼마나 고난의 세월을 보냈길래.. 아 세월이여)

시집에 대한 흥미보다는 시인에 대한 흥미가 더 커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2. 자연에서 찾은 사랑의 모습


새로운 시집을 읽고 다시 한번 새삼 느낀건데,
류시화 시인의 시에는 자연을 상징하는 메타포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처음 읽은 이전 시집에서는 나무를 그 예로 들 수 있고,
그 다음에 읽은 시집에서는 제목에서부터 돌과 꽃이 들어가 있으니..

제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던 시들은, 자연현상에 시인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대입시켰던 시였는데요. 이번 시집에서도 대표적으로 좋았던 시 하나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첫 사랑의 강

그 여름 강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를 처음 사랑하게 되었지

물속에 잠긴 발이 신비롭다고 느꼈지
검은 돌들 틈에서 흰 발가락이 움직이며
은어처럼 헤엄치는 듯했지

너에 대한 다른 것들은 잊어도
그것은 잊을 수 없지

이후에도 너를 사랑하게 된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 첫사랑의 강
물푸레나무 옆에서
너는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지

많은 여름들이 지나고 나 혼자 그 강에 갔었지
그리고 두 발을 물에 담그고
그 자리에 앉아 보았지

환영처럼 물속에 너의 두 발이 나타났지
물에 비친 물푸레나무 검은 그림자 사이로
그 희고 작은 발이
나도 모르게 그 발을 만지려고
물속에 손을 넣었지

우리를 만지는 손이 불에 데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

기억을 꺼내다가 그 불에 데지 않는다면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때 나는 알았지
어떤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우리가 한때 있던 그곳에
그대로 살고 있다고
떠나온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3. 왜 시를 읽는가?

고전소설을 읽으면 읽는 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뒤에 쓰여진 해설을 읽어보고 인터넷에서 관련 배경지식을 많이 검색해보는 편입니다.

즉, 쓰여진 글에 대한 해석과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이해가 필요했었는데요.

시를 읽게되면 가급적으로 시에 대한 부가설명 및 해석을 읽는 것은 지양하는 편입니다.

한 시인이 쓴 시의 모음집이어도, 한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시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습니다.

시야말로 정말 ‘직관의 문학‘이 아닐까...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그리고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눈을 정화시켜주고, 지나쳤던 것들을 더 세심하게 들을 수 있게 귀를 기울이게 해주는게 시이고, 그래서 우리가 읽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 만일..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이 시때문에 류시화 시인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를 읊으면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말들이 달라졌으리라

봄은 떠난 자들의 환생으로 자리바꿈하고
제비꽃은 자주색이 의미하는 모든 것으로
하루는 영원의 동의어로
인간은 가슴에 불을 지닌 존재로
얼굴은 그 불을 감추는 가면으로
새는 비상을 위해 뼛속까지 비우는 실존으로
과거는 창백하게 타들어간 하루들의 재로
광부는 땅속에 묻힌 별을 찾는 사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 것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우는 것
그래서 그가 그 시를 잊었을 때
그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것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단어들이 바뀌었으리라

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로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보게 되는 선물로
목련의 잎은 꽃의 소멸로
죽음은 먼 공간을 너머와 내미는 손으로
오늘 밤의 주제는 사랑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