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반철학
알랭 바디우 지음, 박성훈.박영진 옮김 / 사월의책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철학을 고귀한 지적 작업으로 생각하는 것을 경멸했었다. 그에게 철학은 자신을 괴롭히는 철학적 문제를 도려내는 실존적 문제로 보았다. 그 자신에게 철학적 물음에 고심하는 것은 하나의 질병이었다. 따라서 철학적 해답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해소'하는 것이었고 더 이상 철학하지 않는 삶을 원했다. 물론 본인은 그렇게 되지 못했지만..


바디우는 그에게 라캉의 말을 빌려 '반철학자'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반철학이란 철학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니체, 사도바울과 마찬가지로 삶으로서 몸소 증명하며 '철학을 깨우는자'를 말한다. 바디우는 철학자로서 비트겐슈타인의 해체활동에 대해 아마도 이론으로서의 철학을 위협하기에 그에 대해 대응을 하는 것일 것이다.


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태도가 옳다고 본다. 바디우는 철학으로 밥 먹고 살지만 먹고 사는데 바쁜 사람들에게 고심하게 만드는 철학적 물음은 사라져야 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드시 철학적 수수께기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발 붙인 대지에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OW TO READ 니체 How To Read 시리즈
키스 안셀 피어슨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불변하는 실재 보다는 생성을 중시했으며 그에 따라 형이상학적 실체 보다는 생성하는 이 지상의 현실을 긍정하기 위해 분투한다. 니체는 지상의 세계 보다 천상의 세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스도교를 공격했으며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플라톤의 이원론을 지독하게 붙잡고 흔들어댄다. 


도덕의 계보


형이상학의 죽음에 대한 은유로서 신의 죽음. 그에 따른 유럽의 허무주의의 극복을 위해 치열하게 사유한다. 그의 사유방식은 프로이트가 의식의 밑에 깔려 있는 '무의식'을 탐구하는 것처럼 도덕아래에서 어떤 '의지'를 읽어내기 위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가령 권력의지를 버리려는 금욕주의자 마저도 그 아래에 의지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삶의 권력을 추구하면서도 이러한 생각을 스스로 부정하고 고귀하고 고결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척하는 위선적이고 허위적인 태도를 드러내어 폭로하는 것이다. 니체의 글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그는 우리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감추어진 모습을 굳이 벗겨버리고서 비판한다. 도덕의 기원과 맨얼굴을 정면으로 보라는 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공동윤리보다는 개인윤리를 이야기 한다. 여기서 그에게 주인의 도덕이라는 귀족적 혹은 엘리트적 윤리학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신 개념을 토대로 인간에게 죄 개념을 부여하고, 신에 의한 죄의 심판과 최종적인 심판의 장소인 천국을 고안해내며, 그 목적을 위해 영혼불멸을 상정하고 선악이 확정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양심을 고안해낸다." 니체는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도덕을 노예도덕이라고 비판한다.


니체의 그리스도교의 도덕적 비판은 어느정도 진실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리스도교의 도덕은 스스로 도덕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그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니 대뜸 플라톤의 책이 읽고 싶어진다. 플라톤이 그렇게까지 잘못했는가. 니체의 비판은 심히 잔인할 정도로 비난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신경정신과 의사에 개인적 수기와 더불어 그 경험으로 탄생한 로고테라피를 소개한다. 죽음을 앞에 둔 실존적 인간의 여러 유형을 직접 경험하여 로고테라피 이론을 만들었다. 책의 절반은 절망적인 아우슈비츠 수용자들의 정신이 황폐화 되어가는 여러 심리상태를 그린다.

 

수용소 생활에서 오는 현실적 충격과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모멸감 그리고 죽음 앞에 한갓 초라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정서는 밑바닥까지 떨어진다. 불합리한 학살과 잔인한 폭력이 벌어지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덤덤해질 정도로 심리적 황폐화를 겪는다. 반면에 그러한 상황에서도 석양이 지는 것과 사소한 말장난을 주고 받으며 작은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절망의 가혹함 

 

절망할 수 밖에 없는 그 곳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면 그런 상황에서도 버텨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보고싶은 가족과 친구들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믿음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믿음은 인간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그 믿음이 사실과 다를 때 오는 비통함과 좌절은 정말 견디기 힘들 것이다. 

 

단적인 예로 크리스마스에 사망자 수가 많았다고 한다.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 노동 그리고 사람들이 차례차례 소각로에서 검은연기로 변하는 상황을 맨 정신으로 버텨낼 수는 없었을 게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며 그 때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을 갖는다. 허나 여전히 자신은 크리스마스에도 나가지 못하고 작업을 하고 있으며 언제 끌날지 알 수 없고 또한 살아나갈 수 있을지 분명치 못한 현실을 직시했을때 정신력으로 생을 버텼던 인간은 차가운 현실 앞에 좌절하게 된다.

 

또한 아우슈비츠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문제가 된다. 지옥 같은 수용소 생활에서 보고싶었던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환영받지 못했을 때, 그곳에서 사람들을 간절히 그리워했지만 사실 그들은 자신에 대해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을때 가령 "우리도 힘들었어요" "몰랐어요."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비통함과 환멸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로고테라피 

 

어쨌든 이런 죽음 앞에 선 경험에서 나온 것이 로고테라피 요법이다. 로고테라피는 미래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정신질환을 일으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는 송환기제(feedback mechanism), 악순환 형성(vicious-circle formation)을 막는다. 그래서 자기집중증상이 발생하고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정신병 중 일부는 실존적 문제일 것이다. 삶의 목적상실에서 오는 의미상실 그리고 상실감 후에 나타나는 불안과 자신에 대한 절망적 망상들은 더욱 증상을 악화시키거나 충동적 자살을 불러오는 요인이 된다. 미래라는 도로가 막혀 있을때 정신은 시간을 벗어나 과거의 추억으로 되돌아간다. 과거에 안좋았던 사건은 기억이라는 화살로 되돌아와 현재의 가슴에 꽂히기를 반복한다. 꽂힌 화살은 정신의 부정적 망상을 낳고 그것은 사실이 되고 현재의 심리상태를 뒤흔든다. 그래서 한 없이 현재의 자신은 초라해지고 비루해진다. 그리하여 아직 가보지 못한 미래라는 도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론 암흑처럼 덥칠지 모르는 두려운 그 무엇으로 비약하게 된다.

 

거대한 공포 그리고 삶 

 

사실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내가 태어난 이유도 모르지만 그저 태어나 있어서 떠밀리다시피 살아가고 그러다가 늙고 병들고 모든 생물이 그렇듯 죽는다는 것. 이 명확한 사실에 허망함을 느낀 인간은 대리석에 형상을 부여하듯 말씀으로 삶에 의미를 부여한 것일지도 모른다. 죽은 망자의 육신을 보며 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감은 천국이라는 형이상학적 내세를 만들고..

 

인생의 의미를 뻥튀기처럼 튀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생각 만큼 거대하지도 그리 대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어떤 일에 중압감이 크다면, 때로는 어린시절 재미있게 놀이를 했던 그 느낌으로 생각하면 안될까? 열정과 진지함? 놀이에 빠져 혼신에 노력을 기울이는 아이에게 그것은 진지하고 또한 스릴 있으며 소소한 행복이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장난감의 스케일이 변한 것일 뿐, 별 차이 없는 게 아닐까.  

 

아우슈비츠에서 믿음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소망과 가족들이다.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사랑하는 가족과의 만남과 소소한 취미활동 그리고 일이라는 것에서 따라나오는 행복일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감은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들은 분명 거창한 행복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에 누렸었던 소박한 행복과 안락함이 그들을 극한의 절망적 상황에서 견디게 해주었다. 간혹 삶을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만 느끼곤 한다. 하지만 작은 것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거창해져버린 비장한 삶이라는 옷을 벗고 가벼운 복장으로 쾌활하게 움직여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기사 신드롬 - 나는 늘 베풀면서도 왜 배신감을 느끼는 걸까
매리 라미아.메릴린 크리거 지음, 이창신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때 일이다. 외톨이였던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데 서툰 아이였는데 난 그 친구가 안쓰러워 그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법 친해졌을 무렵이다. 점차 나를 함부로 대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짓궂은 말과 행동을 장난으로 애써 받아넘기며 웃어 넘어가는 것이 나중에는 당연한 관계가 되었다. 그러다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고 마음에 상처만 남기며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서서히 멀리하게 되었다. 과연 외톨이였던 그 친구에게 내가 처음 손을 내밀었을 때 내 행동은 순수한 이타적 행동이었을까? 물론 이타심은 맞지만 순수한 것은 아니라고 이 책은 말한다.


상처 받은 자의 이타적 행위


여기서 백기사란 이타심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들은 항상 심리적, 경제적 위기에 처한 자가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타심에서 나온 행동이 자신의 내적 갈등을 대변하기도 한다. 과거 상실감, 정신적 외상 그리고 이들 중 다수가 양육자에게 받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안고 사는 경우가 많다. 백기사들은 감정이 예민하거나 성격이 무르거나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이다.


4가지 유형의 백기사 중에 감정이입이 지나친 백기사 유형이 있다. "그들은 마음이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사랑을 잃었을 때나 더 이상 인정 받지 못할 때 생길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선행을 하거나, 상대를 보살펴주거나, 상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거나, 긍정적으로 감동을 안겨줌으로써 감정적 유대를 유지하거나 회복하려 하고 상대에게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행동에는 이타적 의도가 있었으나 사실은 친구에게서 내 자신의 외로운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그 친구를 구해줬다는 생각에 내심 이타적 행동에 따른 고마움을 요구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땐 정말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건 사실 내면의 결핍에서 나오는 그릇된 요구였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상적인 친구관계도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사실은 내 자신을 구원하고 싶었던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균형 잡힌 구원자의 사례와 구원자의 자기성찰을 관한 글이 나온다. 자신를 잃지 않으면서도 올바르게 이타적 행위를 하는 대표적 사례와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글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읽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적지않은 내 자신의 단점 또한 보이도록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전2권 (반양장) - 현실 세계 편 + 현실 너머 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채사장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대넓얕


지대넓얕 팟캐스트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청취했었다. 왜냐면 초창기에 팟캐스트에서 철학 분야의 팟캐스트를 찾기 위해 검색란에 철학과 관련한 온갖 검색을 했었는데 그때 걸린 팟캐스트가 지대넓얕이었다. 처음 올라왔을 때부터 듣기 시작했었으니 꽤 오래됐다. 처음 시작할 때는 순위가 400위권 밖이었던 것 같았는데.. 


물론 정말 재밋다는 생각은 했지만(간혹 던지는 특유의 농담들 혹은 논쟁의 분위기) 내가 듣는 팟캐스트가 이렇게 성공할 지는 생각도 못했다. 그런 성공에 힘 입어 출판제안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 사람의 책은 읽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솔직히 말자하면 안읽었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이미 개론서는 너무나 많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어보니 나쁘진 않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이 그렇듯이 높은 곳에서 학문의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목적이라 머리 아프게 디테일하게 세부적으로 파고 드는 것은 없다. 만일 이 책의 부재를 정해야 한다면 '학문의 지도(?)'라고 정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나머지 김도인님이나 덕실님이나 깡샘도 책 쓴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이 사람들은 대학원에서 배웠던 것들을 책으로 만들 듯 하다. 이런 인기를 보며 드는 생각은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