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의 암소 - ...한줌의 부도덕
진중권 지음 / 다우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생각 보다 재미있다. 출간일을 보니 20년이 넘은 책. 간혹 이 양반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욕을 먹는 것인가 궁금해 하곤 했었다. 유난히 유쾌한 표정과 급짜증 섞인 말들을 보면 성깔있는 동네 형처럼 보이지만 이제는 그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 그도 어느덧 '아재'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20년 전 과거로 돌아가 한 인간의 삶의 궤적을 곁눈질로 보았다. 뭐랄까 맥주캔을 들고 앉아서 세상 모든 것에 썰을 풀며 화를 냈다가 침울해지기도 하고 사뭇 진지해지기도 하는 아재. TV토론으로 처음 알게 됐지만 정작 책을 읽어보니 이 양반, 말 보다 '글'을 더 잘 쓴다. 비판마저 유쾌하게 토해내는 것을 보고 역시 무슨 일을 해도 개성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분명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더 명확하게 알게 됐는데 그런 스타일의 토대에는 나름에 철학적 이유(?)가 있다는 것. 자기 이데올로기인듯 한데 싫어하는 사람들이 볼 때 그것 마저도 개똥철학이라고 무시 하겠지만 말이다. 철학의 분과인 미학을 공부해서 일까? 일반적인 논객과는 다르게 정치칼럼에서 인문학적 어법이 묻어난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학자들의 상아탑에서 자기들끼리만 알아듣는 언어로 학문의 지식을 쌓아 올리는 사람들이라 추상의 높은 수준에서 즐겨 말하는 것이 보통인데 뜬구름 잡는다고 생각했던 인문학적 이론들이 땅으로 내려와 현실의 복잡한 사안을 간단하게 파악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정치적 사안을 철학을 통해 사태를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는 도구로 적용하는 것이다. 최근에 그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던데 정말 공부가 재미있나보다. 사실 본업인 미학책이나 강의를 보면 학자 같기도 하고.. 득달 같이 싸우는 걸 보면 논객 같기도 하고.. 그는 학자와 논객의 중간 어디쯤에서 넘나들기를 즐긴다.



보통 평론가들은 사회의 모든 이슈에 글쓰기로 개입하곤 한다. 어떤 사안에 따라 보수적 혹은 진보적 논조로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이기에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논객으로서 정치적 일관성을 지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유물론. 개는 밥을 주는 주인을 위해 짖는법. 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논객은 망가진다. 그러니 자기 밥을 자기가 챙기는 들개가 되어야 한다. 논객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일관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한국사회에 극소수일 게다. 자신도 극소수에 본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게다.



그가 옳은지 아닌지는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진보의 100만 유튜버들과 달리 이 들개의 어깨에는 끈적끈적한 물질적 이해관계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운동권세대의 행태를 20년 전에도 똑같이 지적 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시대착오적인 주사파 그리고 자유지상주의자들의 과격한 논리가 다수의 보수주의자들의 의견이라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20년 전보다 지금이 더 나은 세상일까? 모르겠다. 확실한 건 탄핵 사건이 한국사회의 정치 지형을 흔들어 놓았고 도덕적 우위에 있었다는 민주진영마저도 위선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런 혼란 속에서 진보 지식인들이 갈갈이 찢어지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논리를 버리고 특정 세력의 스피커 노릇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비판을 할 수 없기에 그저 눈을 감고 입을 닫는다. 이런 상황에서 논객이 하는 일은 제대로 비판하는 것 뿐. 과거 가깝게 지내는 동지들을 비판해야 하는 상황. 그런 면에서 볼 때 진중권아재.... 썩 이 상황이 그리 유쾌하진 못할 것 같다. 정치는 공적 영역이기에 사적 비난은 안한다고 하지만... 비판하는데 기분 안나쁜 사람이 어디 있나.. 참 피곤하게 됐다. 왕따될듯......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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