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는 왜 경제적으로 옳은가 -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심리치료 모델, 영국 IAPT 탄생 이야기
리처드 레이어드.데이비드 클라크 지음, 솝희 옮김, 최진영 외 감수 / 아몬드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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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지난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위기를 극복한 후 우리나라 대표팀이 들고뛴 태극기에 쓰여 있던 구호입니다. 다만 며칠 지나지 않아, 그 구호는 한 방송인에 의해 다음과 같은 말로 변주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이다’. 이미 마음이 꺾여버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오히려 이 말에 더 깊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물음표가 꽤나 생기는 말입니다.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 단순히 투지로만 보고 칭송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 꺾인 마음을 내버려두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슬픈 상황을 승화한 표현 아닐까요?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마저 이미 꺾여 버렸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2년 전도 지금도, 여전히 꺾이지 않고 살아남기 어려운 이 땅 위에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꺾여버린 마음들이 회복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과연 우리 사회에는 있을까요?

<Thrive: 심리치료는 왜 경제적으로 옳은가>는 꺾인 마음들을 내버려두는 공동체가 얼마나 큰 손해를 보고 있는지, 꺾인 마음을 위해 공동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심리학자(데이비드 클라크)와 경제학자(리처드 레이어드)가 쓴 일종의 정책 제안서입니다. 세 명 중 한 명이 정신질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건 상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 10% 미만이 적정한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음을 책은 지적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꺾인 사람 중 열에 아홉은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으로 그 어떤 도움도 받지 않은 채 일상을 버텨내고 있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나 많이 ‘꺾인 마음’들이 외면받고 있을까요? 이 사회는, 그리고 꺾인 마음을 가진 나 자신마저도 내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책은 이야기합니다. “다리가 부러졌다면 당연히 못 일어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주요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일어날 수 있는지 없는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이 사회는 “마치 일어날 수 있는데 일부러 그러지 않는다는 듯 일어날 때까지 닦달(95p)”합니다. 이렇게 나 자신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오해 속 방치된 꺾인 마음은 단순히 정신적 고통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신건강문제는 어쩌면 골절보다 삶의 모든 영역에 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꺾인 마음은 일어나지 못하고, 그 꺾인 마음들은 실업, 고립 은둔과 같은 사회문제가 됩니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정신건강문제가 사회에 미치는 폐해를 알아듣기 쉬운 ‘돈’의 언어로 계량했다는 점입니다. 저자들은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개인의 능률 하락, 실직 및 휴가로 인한 노동시간 감소로 인한 비용을 계산한 후, 여기에 제때 치료받지 못함으로써 사후에 드는 모든 의료복지비용을 합산했습니다. 그 결과, 정신건강문제로 인한 비용이 국민소득의 7% 정도 된다고 합니다. 사회에서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을 방치하는 일은 정의롭지도 평등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경제적으로도 옳지 않습니다.

그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따라옵니다(2부). 이 책은 우선, 정신건강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각종 심리치료 기법이 이미 50여년전부터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개발되어 효과를 보이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연구 근거 부록 제시에 거의 100여쪽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혼자 문제를 해결하거나 약 복용에서 그칠 뿐, 심리치료를 제대로 이용하는 비중이 낮음을 책은 지적합니다.

이에 따라, 리처드 레이어드와 데이비드 클라크는 정부에 제안합니다. 전문적인 심리치료를 전국민에게 무료로 전달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해 달라고. 그들은 전국민 캠페인을 벌여 왜 심리치료가 중요한지 국민들을 설득했고요. 10여 년간 정권교체기를 겪어가면서도 여러 총리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사업을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연간 10여만명이 무료로 심리치료를 신청하여 2주 내 8회기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IAPT(현 Talking Therapies for Anxiety and Depression) 사업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학적 근거들이 예언했던 것처럼, 심리치료 사업은 충분한 양의 치료를 받은 국민 절반 이상의 정신건강문제를 해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모든 결과는 분기별로 공식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 모든 성과를 제시하면서도, 나아갈 걸음이 멈추지 않았음을 이야기합니다.

“변화를 요구해야 하는 사람은 우리 모두다. 정신 건강은 모든 정당의 정책에서 우선순위에 올라야 한다(363p)”.


최근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맨 처음으로 대통령이 한 일이 비상경제TF 출범인만큼 경제 상황이 어렵습니다. 전국민 지원금을 통한 소비 활성화를 비롯하여 각종 경제 정책들이 제시되는 요즘입니다. 이러한 비상한 시기 제안 하나 해봅니다. 경제불황(Depression)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의 우울(Depression)을 먼저 회복시키는 정책 어떨까요?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으로 전국민에게 안전하고 보편적인 심리치료를 보장하는 정책 말이지요*. “정신 건강 개선은 경제성장과 직결된다”라는 다소 속물(?) 같은 이 책의 캐치프레이즈를 내밀면서 제안해 봅니다. 이 공동체의 꺾여도 그냥 살수 밖에 없는 마음들이 좀더 돌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전국민마음투자사업과 같은, 검증된 심리상담전문가에게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될 수 있겠고, 아직까지 공식자격이 없는 심리사, 상담사의 자격을 법제화하는 정책도 될 수 있겠다. 심리 및 상담 전문가 단체 중심으로 입법 제안을 진행하는 중에 있다.


*이 글은 도서출판 아몬드의 도서 후원을 한국심리학회 청년정책 위원회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변화를 요구해야 하는 사람은 우리 모두다. 정신 건강은 모든 정당의 정책에서 우선순위에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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