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제3차 국민대회 현장에서 백골단원의 도은에게 복창하게 한 말이다. 이 구절을 읽는데, 문득 ’국가의 권력’이 인간의 권리를 짓밟고 존중받지 못하는…. 어떻게 이런 국가에서 사람들이 살게 된 걸까?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도 없는 이 시대는 일제강점기의 연장선이었다. 이 시대에 태어났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태어났지만 힘이 되지 못해 슬퍼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약칭)가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교사들의 단체인 줄로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선동적이다’ 라는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은 이 소설을 읽으며 깨졌다.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교육이, 인권이 전교조가 내세우는 가치였다.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글쓰기 수업에서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난감했다. ‘한 고등학생 소녀의 성장소설’인가. ‘한 여고생의 눈에 비친 사회를 고발하는 소설’인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내가 기억하고 겪어 본 상황도 아니기에 소설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본 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는 개인의 개성이 억압받으며 의견을 말하면 패륜아로 불리는 폭력이 만연한 사회, 그것을 외면한 언론. 바뀌길 바라지만 살기 위해 외치며 참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도망처여야 하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솔직히 이 소설을 읽으며 한없이 창피했고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면서 책을 멀리했고 더군다나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과거를 다룬 소설을 읽어보기를 꺼렸다. 이런 주제의 소설도 읽어야 내 소설의 정체성도 확립할 수 있고, 내면의 가치관 역시 정해볼 수 있을 텐데…….
“상대방의 주장을 동의할 수 없더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해야 합니다.”
강론 시간에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나는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읽으며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약칭)의 모습과 주장을 완전히 동의한다고 할 수 없지만, ‘그들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읽었던 하명희 작가의 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는 두려움 많고 생각이 좁은 나에게 영역을 확장해준 고마운 소설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