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처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7
임솔아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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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는다는 착각을 믿어서는 안 되었다. 외부인은 외부인 일 뿐이었다.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을 스스럼없이 보여주고 함께 목욕을 가서 서로의 등을 밀어 주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은 혼자라는 사실을 어떤 순간에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껏 유용했던 이 원칙을 나는 회사에서도 지켰다. 어느 순간 나는 어느 쪽 라인에도 속하지 못한 채 계속 대기실에 앉아 있는 신세가 되었다. 다른 직원들도 서로를 믿지 않는다는 것, 믿어서가 아니라 필요하기 때문에 손을 내밀고 잡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나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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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는지를 속속들이 느끼느라 회사에서 허비하던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오히려 효율적이었다. 나는 오직 나의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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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삭제하는 대신 경찰이 먼저 폭행을 시작했다는 얘기도 삭제했다. 애초에 없었던 이야기를 지우기 위해 엄연한 사실도 지워야 한다는 거래가 채빈은 기가 막혔다. 채빈은 그 거래에 동의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집단 성관계에 대한 누명을 써서도 안 되었다. 거래를 하지 않기 위해 채빈은 도망쳤다.


어떤 내용인지 예상하지 않고 제목과 표지 느낌 그대로 시작해서 더 좋았다. 핀시리즈가 전부 이런 스타일이라면 차근차근 한 권씩 모아보고 싶다. 책은 작고 가벼운데 내용은 결코 그렇지 않은.

기억이 왜곡 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너와 나의 기억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서로 말을 나눌 기회가 없다면 왜곡된 그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겠구나. 그래도 관계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점에 이야기가 끝나서 마음이 놓였다. 내 삶에도 이렇게 서로 다른 기억으로 놓쳐진 관계는 없을지 궁금해진다. 유기견 이야기는 이 소설을 통해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고 심각한 문제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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