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드라 - 제국과 다중의 역사적 기원 아우또노미아총서 15
마커스 레디커.피터 라인보우 지음, 손지태.정남영 옮김 / 갈무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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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라>는 원제처럼 '숨겨진 역사'를 들추는 책이다. 그 속에는 그동안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 '역사'의 범주에 들지 못했던 생생한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다. 거기다 방대한 자료들과 그림들, 그리고 특히 당대 마이너리티들의 생생한 구술을 읽고 있자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몇 백년 전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큰 따옴표로 인용되어있다니! 그것을 발굴해 낸 저자들과 그것을 한국어로 옮긴 역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될 정도다.

 
칭찬이 너무 과했나? ^^; 하지만 이 책은 날로 잔인하면서도 교묘해져가는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역사란 무엇인가'를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 책은 제목부터가 걸작인데, 이 책을 관통하는 <히드라 vs. 헤라클레스>라는 대결구도는 아주 탁월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헤라클레스가 '영웅'에 '완소남'이었다면, 히드라는 한낱 '괴물'이며 '비호감' 캐릭터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멋진 캐릭터도 많은 왜 하필이면 악의 화신같은 히드라냐'고 불평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늘 헤라클레스의 입장에서 신화를 읽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주인공으로 설정된 영웅에 동화되어 신화를 읽듯이, 어느샌가 이식되어버린 권력의 시선으로 역사를 읽어왔다. 

 
여기서 상기해야할 것은 헤라클레스가 히드라를 죽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목을 쳐 내면 거기서 두 개의 머리가 나고, 그래서 결국 목을 불로 지졌지만 끝내 죽이지 못했다. 다만 바위로 머리를 눌러놨을 뿐. <히드라> 속의 혁명적 주체들은 이런 점에서 히드라를 꼭 닮아있다. 지배자들은 헤라클레스처럼 그들의 목을 쳐냈고 그들은 쓰러졌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인물들은 죽었을지 몰라도, 그 투쟁의 강렬한 흐름들은 결코 죽지 않았다.히드라가 한번도 죽은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자본이라는 헤라클레스는 혁명적 히드라가 죽었다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은폐하고 있다. 그런데 <히드라>는 혁명적 히드라의 목소리와 삶을 복원해냄으로써 지배자들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있다. <히드라>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간다. <히드라>는 지배자들에 의해 은폐된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복원했을 뿐 아니라, 혁명에 대한 지배적인 시각을 전복한다. 

 
역사를 지배자들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혁명을 영웅담으로 해석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아무리 혁명의 역사를 다룬다 하더라도 그것이 특정 인물들의 것으로 환원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헤라클레스의 시선으로 바라 본 혁명사, 즉 혁명에 대한 반혁명적 해석일 뿐이다. <히드라>에서는 그동안 계몽과 지도가 절실한 존재들로 묘사되었던 노예들, 여성들, 이단들이 주체로서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다. 소위 '무지몽매한' 그들이 보여준 자기조직화와 민주주의, 평등, 그리고 삶에 대한 진지하고도 재기넘치는 태도는, '고매하신' 귀족들, 정치가들, 학자들의 설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것이다.    


이처럼 <히드라>는 지배권력, 엘리뜨주의자, 전위적 혁명가 모두에게 날리는 통쾌한 펀치이다. 자본주의에 쿨하게 맞섰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되뇌이며 '한 방 날릴' 준비를 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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