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가격 - 돈에 갇힌 미디어와 언론, 그리고 민주주의를 구해낼 방법들
앙드레 쉬프랭 지음, 한창호 옮김 / 사회평론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어렵다. 게다가 각종 수치와 발음도 어려운 외국어 고유명사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그런데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읽는 내내 숨죽인 채 긴장감으로 붙들려 정신을 가다듬으며 페이지를 넘겨나간다. 왜냐면 이 책은 그저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엔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중요한 실상이 담겨있다. 뻔히 눈뜨고도 보지 못하던 숨막히는 진실이.

 

 동네 서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카페가 들어선다. 대형서점에 갔더니 눈에 잘띄는 진열대마다 베스트셀러들이 한무더기씩 놓여있다.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책 코너에는 전보다 책의 수가 줄어든 것 같다. 목록을 보니 대형서점 진열대와 인터넷서점 첫페이지에서 봤던 책들이 대부분이다. 언젠가부터 신문을 펼치기보다는 인터넷 검색으로 뉴스를 확인하게 된다. 검색어 하나만으로 참 많은 인터넷 신문사들의 존재가 확인된다. 그런데 선정적인 제목들 외엔 내용에 별 차이가 없다. 게다가 오자는 말 할 것도 없고 사실확인도 제대로 안된 내용이 버젓이 실려있다. 책도 무겁고해서 가볍게 전자북을 읽어볼까 하고 알아보니 아이패드보다 훨씬 저렴하고 쓸만하다는 킨들파이어가 눈에 띄어 구매욕이 동한다. 아마존의 많은 책들을 저렴하게 혹은 무료로 볼 수 있다니 더욱 끌린다. 관련 정보를 더 검색하다가 런던에 산다는 한 출판사 직원의 블로그가 들어온다. 아마존 때문에 출판계가 망해가고 있다고?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일까...?

 

 출판계의 한복판에서 산전수전 다겪으며 살아남아 꿋꿋하게 출판인으로서의 신념을 지켜가고 있는 앙드레 쉬프랭은 내가 뭔가 느끼면서도 그 의미를 정확히 깨닫지는 못하고 있던 이런 현상들을 속시원히 설명해주면서,한편 내가 얼마나 많은 책들의 주검을 밟으며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나의 '말'의 주검-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의 중요한 일부가 통째로 죽어버린 것이고, 그로인해 내가 잃어버린 미래의 주검이다. 단지 값이 더 싸다는 이유로, 편하다는 등등의 사소한 이유로 나는 그 시체를 쌓아가는데 동참해왔다.

 

 하지만 쉬프랭이 이런 침통한 얘기를 하는 것은 죄의식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실이 얼마나 참혹한지 제대로 눈뜨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걸음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시작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현실고발만 하고 한탄과 비난만 늘어놓기에는, 쉬프랭은 훨씬 진지하고 성실하며 긍정적인 사람이다. 쉬프랭은 하나하나 차분하게 구체적 예를 들어가며 눈먼 자본주의의 횡포로 인해 잃어버린 책들을 되살리고 우리의 미래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낼 방법들을 모색하고 토론한다. 그 일을 함께하자고 손내민다.

 

 돈은 좋은 것이지만, 그로인해 다른 가치있는 것을 잃게 될 때 종종 악의 근원이 된다. 이 책의 얘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가 돈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데 그는 매우 중요한 존재고 어쩌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쉬프랭이 이 책을 쓴 이유는 그 중요한 누군가-우리의 책, 우리의 말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 일은 혼자 할 수 없다. 바꿔말해 함께 하면 해낼 수 있다. 거대한 담벼락 앞에 멈추어서지 않고 손잡고 엉금엉금 기어올라 마침내 담너머로 나아가는, 어느 시인이 발견한 담쟁이 덩굴처럼. 그 의지를 공유하기 위해 그는 이 책을 썼다. 그 마음이 더 많은 사람들의 손과 손을 연결해 우리의 잃어버린 미래를 찾아오길 희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