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
스티븐 와인버그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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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머릿말대로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의 과학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어떤 점에서 더 유익한지는 잘 모르겠고

어떤 점에서 덜 유익한지는 잘 알것 같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마디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라서 끝까지 다 읽기는 했다.


이 책은 독자에게 과거의 학자들이 처해있던 상황을 이해시켜주면서 그들이 겪었던 사고과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기 보다는

오히려 과거를 이해하는데 장애물의 역할을 하고 있는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많다.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어, 쟤 좀있다 죽어"라고 스포일러를 하는 식으로

잔소리같은 내용을 계속 읽다보면 좀 짜증이 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재미있었던 부분은 저자의 그런 태도가 잘 드러나지 않는 장면이었다.

예를 들면 그리스 시대의 천문학자들이 어떻게 지구의 모양이라든지, 지구의 크기, 달까지의 거리,

달과 태양의 크기 비율, 달 혹은 태양까지 거리의 비율 등을 수학적으로 추론해 나갈 수 있었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당시 학자들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그 흥미진진한 발견에 나도 동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다른 부분에서는 좀 이해할만하면 자기는 반대한다는둥, 이것은 명백한 오류라는둥

계속 훈수를 받으면서 장기를 두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게 문제다.

물론 저자가 잘난척 하려고 쓴 것은 아니겠지만 지나치게 자기 관심사에 집중된 혼잣말같은 설명을 늘어놓기만 하고

정작 독자에게 설명해주는 역할에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해 보인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굳이 파인만이나 리차드 도킨스의 글들과 비교하자면 그런 점에서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글을 재밌게 쓰는 저자는 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보통이다.


천재적인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 저자에게만 '쉬운 문제'이거나 '단순한'문제인 것들로 설명되는 부분들이 많다.

예를들어 450페이지의 무지개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휘어지는 각을 입사각으로 편미분 해서 0이 되는 지점을 찾고 있는데

어쩜 이렇게 재미없게 설명하고 있는지.

나도 물리전공이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고, 심지어는 내가 이것보단 잘쓰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이부분은 몇 가지 복잡한 요인들을 단순화시켜서 풀고있는데

저자의 머리속에서만 정리된 내용들을 일방적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는 무지개라는 아름다운 현상을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결국 실패할 거라고 생각된다.

그럴듯한 그림 하나라도 있으면 훨씬 좋으련만 왜 그렇게 친절한 설명에 무관심한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부분에서는 아마 와인버그님은 자기 책이 재밌게 읽혀지기를 포기하신 것 같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이 그냥 혼잣말 하는 것 같은 부분들이 꽤 있다.

그런부분들을 읽고나면 - 물론, 내 이해력이 부족해서이겠지만 - '그래서 어쩌라는거지?'라는 문장이 머리속에 남게 된다.

예를 들면 194페이지에서

'그는 균일하지 않은 운동의 한 순간의 속도를, 그 속도가 일정했을 경우에 흘러갔을 시간으로 거리를 나눈 것으로 정의했다.

이 상태라면 이 정의는 순환 논리이므로 쓸모가 없다.' 라고 했는데

나로서는 이게 왜 '순환논리'라는 건지 이해하는데 오래 걸렸다.

물론 바로 뒤에 그것을 좀더 잘 정의된 문장으로 바꿔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왜 '순환논리'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어서

이분은 독자들을 과대평가하고 있거나, 아니면 물리학을 잘하는 사람만 읽을 걸로 기대하거나,

아니면 원래 불친절하거나, 아니면 이게 일기가 아니라 책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242페이지 주석을 보자

'행성들의 각크기는 충분히 크기 때문에 행성 원반의 다른 지점에서 나온 빛이 지구의 대기를 통과할 때

일반적인 대기 요동의 크기보다 더 넓은 범위로 통과한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오는 빛에 미치는 효과는 서로 연관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기의 요동이 증폭되기 보다는 상쇄되는 경향이 있다.

이때문에 행성은 깜빡거리지 않는다.'

솔직히 이런 문장은, 알 사람은 알고 모를 사람은 모를 설명이지, 결코 모르는 사람을 알게 만들 설명은 아닌 것 같다.

무지렁뱅이인 나로서는 결론은 알겠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이해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건지?

이런 부분에 적절한 그림 하나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될텐데 이렇게 말로만 떼우는건 아닌것 같다.


역자이신 이강환님도 이런 부분을 느꼈는지 역자 후기에서

'이 책은 세부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전반적인 흐름을 따라가며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파악하는 것에 집중해서 읽기를 권한다'라고 하고 있는데, 나는 이 말씀이 명백이 독자를 달래고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책이 애초에 흐름을 위주로 쓰여진 책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조금만 읽어봐도 와인버그가 모든 문장마다 본인이 명확히 이해한 것만을 바탕으로 아주 디테일하게 썼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결국 이 책은 이도저도 아닌 책이 되어버렸다.

책을 반 정도 읽는 동안 과거 학자들의 업적에 대한 사전식 나열을 주욱 읽었다는 정도의 기억만 남았던 것이다.

분명이 매우 훌륭한 책인데.. 재미가 없다..


물론 재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슬람 과학자들에 대해 쓴 부분들도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고 뉴튼을 찬양(?)하는 부분도 재밌었다.


그런데 뭔가 딱부러지게 남는 재밌는 결론이나 흥미진진하다고 할 만한 2%는 없었다.

결국 나도 무지렁뱅이 대중인지라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동안에는 무언가 나를 흥분시켜줄 어떤 것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수학적인 모델들(예를 들면 주전원이라든가)을 그림과 수식을 곁들여서 설명을 더 해주든가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 내용들은 맨 뒤에 전문해설로 몰아 넣었는데 그것 말고는 제대로된 그림 한장 없는 책이라니!


그래서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전문해설에 희망을 걸었는데 전문해설은 더 실망스러웠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의 발견을 담담하게 설명해놓은 것들이 주류이기 때문에

'그냥 물리 개론책이나 보면 될것을 뭣하러 이런책을 봐야 하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 학자의 발견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완전한 현재의 지식 체계를 보여주는 것도 아닌, 참으로 어중간한 설명이다.


우리가 만약 유클리드 원론이나 뉴튼의 프린키피아를 본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 책들을 학습을 위해 본다면 너무나 비효율적일 것이다.

그런 책들은 주로 그들의 머리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보는 것이지 학습만을 위해 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안타깝게도 저자의 어떤 고집때문에 결국 이 책에 만족할 사람은 저자 혼자뿐일 것 같다.

독자로서는 정말 이도저도 아닌 책이 됐다.


책 제목도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이라고는 했지만

책 전체를 통털어서 화학과 생물학에 대해서는 몇페이지 정도만 할애하고 있다.

생물학에 대한 그의 결론은 '생물학은 아직도 과학스럽지 않고 과학스럽게 되기도 어렵다' 인듯 하다.

차라리 제목을 '천체물리의 역사에서 왜 뉴턴이 짱인가?'라고 했으면 적절했을 것 같은데 과하게 거창한 제목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로써 다시한번 학문, 특히 물리나 수학은 본인 말고는 원래 재미 없는 것임을 다시한번 인정해야만 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나 역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반성의 눈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수학이나 과학 얘기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스티븐 와인버그와 같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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