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시골의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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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특히 그들 모두가 시거 연기를 코와 입으로 공중에다 뿜어 내는 태도를 보아 대단히 신경질이 나 있음이 역력했다. 그런데도 누이동생은 참 아름답게도 연주했다. 누이의 얼굴은 옆으로 숙여져 있고, 음미하며 슬프게 그녀의 시선은 악보의 행을 좇고 있었다. 그레고르는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될 수 있으면 어쩌면 누이와 눈길이 만날 수 있도록, 머리를 바닥에 바싹 붙였다. 음악이 그를 이토록 사로잡는데 그가 한 마리 동물이란 말인가?

 

- 프란츠 카프카, <변신> 중에서

 

*

 

카프카의 <변신>을 처음 읽은 건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이다. 당시 난 고등학생이었고, 누군가의 추천으로 잠자리에서 이 책을 펴들었다가 결국 밤을 샜던 기억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너무나 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으며, 나의 인지 능력이 사고의 속도를 따라잡히 못해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 책은 충격이었고 일종의 폭탄이었달까. 그렇게 기억의 저편으로 점점 사라져 가던 중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어렸을 때 읽었던 수많은 고전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지만 카프카의 <변신>은 다시 읽기가 참 꺼려지는 작품 중 하나였다. 그리 길지도 않은 중편 소설이고 문체가 어려운 것도 아니라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음에도 손이 선뜻 가지 않는 그런 책이었다. 역시나. 다시 읽어보니 예전에 읽었을 때보다 더 우울하고 더 불편하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로 시작하는 소설 <변신>.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부터 독자는 충격에 빠지고 이 소설의 장르가 SF였던가? 하고 다시금 표지를 살피게 된다. 벌레만도 못한 인생, 벌레 같은 인생... 이라는 표현을 그냥 표현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주인공을 갑작스레 벌레로 만들어 버리는 신선한 시작. 보험회사 외판원으로 살면서 연로한 아버지와 어머니, 음악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여동생을 실질적으로 부양해왔던 주인공 그레고르는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 보다는 벌레로 변한 나의 상태를 회사의 지배인이 알아채서 해고 당하면 어떡하나부터 걱정한다. 그의 이러한 속마음은 모른 채, 사람들은 그가 쓸모없고 흉하게 생긴 해충이라고 손가락질하며 혐오감을 숨기지 않고 심지어 그가 뼈를 깎는 고통으로 부양했던 가족들조차도 그를 외면한다. 심약한 어머니는 그레고르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아버지는 화부터 내는 상황에서 여동생만이 그를 돌보지만 그녀 또한 그레고르를 돌본다는 행위 자체를 일종의 집안에서의 권력으로 행사하고 있다. 그레고르의 걱정과는 달리, 가족들은 상황에 재빨리 적응하고 각자 살 길을 모색한다. 연로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는 멀쩡해진듯한 몸으로 일자리를 찾아내고 어머니와 여동생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그레고르가 방 밖으로 나왔을 때 아버지가 던진 사과 하나가 등에 박혀 결국 그 상처 때문에 삶을 마감한다.

 

가족이란 것,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왔을 때 하나의 편안한 둥지며 보금자리가 되어야 하는 것, 나의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지키고 싶은 단 하나의 것, 그만큼 누군가들에게는 소중하고 듣기만 해도 뼈에 사무치는 어떤 것. 하지만 그만큼 날 옭아매는 굴레이기도 하며 남보다도 못한 존재이기도 한 게 바로 가족이다. 그레고르가 뼈 빠지게 일해도 그건 장남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몫이라고 생각하며, 막상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어 아무것도 자기 힘으로 할 수 없고 수치스러운 집안의 식충이가 되자 차갑게 외면하는 게 바로 그의 가족이었다. 참 슬픈 이야기지만, 내 주변만 봐도 가족 사이에서 그레고르 취급 받는 사람들이 제법 있고 그들의 부모와 가족은 혈육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옭아매며 착취한다. (이건 뭐 착취한다고 밖엔 표현할 단어가 없다)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었다고 묘사된 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날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장애인이 되었다거나,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병에 걸렸다든가, 어떤 사정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되어 전과자가 되었다든가 등등. 사회에서 착취 당하고 가정에서도 착취 당하는 무력한 개인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썩은 사과 때문에 목숨을 잃는 법이다.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소설 속의 그레고르 잠자는 현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하는 희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생. 벌레가 되어 제 코가 석자인 상태에서도 음악적 재능이 있는 여동생을 어떻게 음악 학교에 보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그레고르. 읽으면서 어떤 의미로는 이상의 소설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음울하고 광기에 사로잡힌, 읽기 불편한 천재랄까. 이 책에는 <변신>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아주 짧은 단편과 에세이 같은 것들도 수록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찬찬히 읽다보면 에드가 앨런 포 소설의 느낌이 나는 것들도 제법 많다. 그만큼 환상과 공포, 욕망과 절망이 뒤엉켜서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 번 생각해 본다. 당신의 남편을, 아내를, 어머니를, 아버지를, 아들을, 딸을, 오빠를, 동생을... 돈이나 벌어오는 하나의 기계쯤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가 벌레가 되어도 가족으로서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받아줄 자신은 있는지. 그만한 자신은 없으면서 그들이 당신에게 주는 것을 넙죽넙죽 받아 먹고만 있는건 아닌지.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식인 벌레는 누구인지 말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dionysos83/30108504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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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로저와 대머리 해적 압둘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4
콜린 맥노튼 글.그림, 김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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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로저는 점점 흥분되었습니다. "바로 이거야! 먼 바다로 달아나서 해적단에 들어가는거야. 어쩌면 아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른이 되어서 몸집이 커지고, 수염도 많아지고, 칼자국도 생기고, 주머니가 보석으로 불룩해지면, 돌아와서 엄마한테 큰소릴 탕탕 치는 거야. '하하하! 별거 아니군! 받아랏! 이것도!'......"

 

- 콜린 맥노튼, <즐거운 로저와 대머리 해적 압둘> 중에서

 

*

 

어린이를 대상으로 영국의 동화나 영화를 보면, '해적'에 대한 로망이 아주 뿌리깊게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건 많은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바다, 커다랗고 잘 빠진 배, 남자들만의 여행, 어딘가 묻혀 있을 보물, 사나이들의 결투, 의리, 배반, 죽음... (갑자기 또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생각나는군) 생각해보면 나도 어렸을 때부터 해적에 대한 소설을 좋아했지만 ㅡ 이를테면 스티븐슨의 <보물섬> 같은 ㅡ  그건 단순한 재미였고 가슴 두근거리는 모험담 중 하나였을 뿐이지, 해적과 해적생활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이 나의 내면에 뿌리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 '해적'이라는 단어는 유럽권 국가들에 비해 별로 함축하는 바가 없다. (기껏해야 왜구... 정도-_-) 제임스 매튜 배리의 <피터 팬>을 봐도 후크 선장을 비롯 해적이 나오고 심지어 웬디 남매들은 해적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지 않는가. <즐거운 로저와 대머리 해적 압둘>의 작가인 콜린 맥노튼 역시 영국 태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해적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던 수많은 아이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주인공 로저는 꽤나 불행한 아이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실종과 함께 가난에 허덕이며 억세진 어머니. 어머니는 자신의 우울함과 짜증을 로저에게 화를 내며 풀곤 했다. 한 번도 웃지 않는 어머니. 그리고 로저도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항상 얼굴을 찌푸리고 있어서 동네 사람들은 반어적인 표현으로 로저에게 "즐거운 로저(Jolly Roger, 해적기라는 뜻도 있음)"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어머니의 잔심부름을 하며 무료하게 살던 어느 날 로저는 압둘의 해적선인 황금 궁둥이 해적선에 타게 되고, 그 곳에서 지저분하고 상스럽기 짝이 없는 ㅡ  그러나 어딘가 모자르고 순진한 ㅡ 해적들과 함꼐 생활한다. 해적들은 나중에 로저의 어머니집에 들어갔다가 오히려 붙잡혀서 노동 착취(?)를 당하고 깨끗하게 씻지 않는다며 구박을 당하기도 한다. 결국 여러가지 해프닝 끝에 졸리 로저는 실종된 아버지를 찾게 되고 (아버지는 바로 해적선의 요리사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실종된 이후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는 이야기.

 

어린 로저가 자기보다 훨씬 무섭고 덩치 큰 해적 아저씨들을 영리하게 가지고 노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온다. 모전자전이라고, 로저의 어머니는 해적들이 자신의 아들을 데려가서 심부름꾼으로 썼다는 얘기를 듣고는 분노, 해적들에게 일을 시킨다. 그리고 해적들이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 몸을 깨끗하게 씻기 역시 억지로 시킨다. 로저가 해적들을 만나 겪는 신나는 모험담인 것 같지만, 사실 이 동화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어머니, 그리고 그런 어머니에게 학대 받는 한 어린 아이가 행복을 찾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웃었을 때, 로저는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얼마나 자주 웃어줄까? 로저가 모험을 떠나고 싶었던 건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는 게 즐겁지 않았기 때문인데, 모험을 통해 아버지를 얻고 어머니를 얻고 가정의 행복을 얻었으니 이걸로 족한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의 주인공들은 사실 불행한 아이들이 제법 많다. 
 

출처 : http://blog.naver.com/dionysos83/30106230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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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로저와 대머리 해적 압둘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4
콜린 맥노튼 글.그림, 김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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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정감가는 해적들. ^^ 엄마의 웃음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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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심농 - 매그레 반장, 삶을 수사하다 ㅣ 버즈북 2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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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격에 이런 책이라니... 매그레시리즈에 대한 기대만 높아져가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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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사냥을 떠나자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3
헬린 옥슨버리 그림, 마이클 로젠 글, 공경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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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잡으러 간단다. 큰 곰 잡으러 간단다. 정말 날씨도 좋구나! 우린 하나도 안 무서워. 어라! 풀밭이잖아! 넘실대는 기다란 풀잎. 그 위로 넘어갈 수 없네. 그 밑으로도 지나갈 수 없네. 아, 아니지! 풀밭으로 헤치고 지나가면 되잖아! 사각 서걱! 사각 서걱! 사각 서걱!

 

- 헬린 옥슨버리, 마이클 로젠 <곰 사냥을 떠나자> 중에서

 

*

 

아... 뭐랄까 이 그림책은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정말 무서웠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이 그림책에 꽂혀 있었던 해설을 읽어봐도, 알라딘의 독자 서평을 봐도 다들 익살스럽고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평 일색인데... 난 이 그림책에서 굉장한 황량함과 쓸쓸함, 심지어 공포까지 느껴져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 그림책은 운문처럼 쓰여있다. 일종의 동시처럼, 반복되는 구절도 많고 의성어도 많다. 흑백과 컬러의 그림이 교차로 반복되는데, 내용은 간단하다. 한 가족이 곰 사냥을 가겠다며 큰소리를 탕탕치다가 정말로 곰을 만나고는 쏜살같이 도망쳐서 집으로 돌아온다는 얘기. 하지만 이 그림책의 마지막에 정말로 곰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난 이 그림책의 내용이 '가족들의 자살여행'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 같다. 아빠, 엄마, 아이 셋, 그리고 개 한마리로 구성되어 있는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가족. 계속해서 '큰 곰'을 잡으러 간다며 강물도 건너고 풀밭도 헤치고 진흙탕도 뒹굴고 하는데, 그게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찾으러 가기 위해 고행길에 오르는데 아이들을 설득할 구실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핑계처럼 들렸다. 정말로 마지막에 '큰 곰'이 나타나서 가족들이 질겁하고 도망쳤으니 이게 동화겠지만, 내가 만약 작가라면 이걸 모티브로 정말 우울한 소설 한 편 써낼 수 있을 것 같다. '큰 곰'을 잡으러 가자는게 정말 곰을 잡자는 얘기가 아니라 가족들이 다 같이 죽으러 가자는 얘기라면 어떨까. 아니면 전쟁이 터져서 가족들이 피난을 가야하는데 아이들이 가기 싫어하자 부모가 지어낸 환상적인 거짓말이라면 어떨까.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큰 곰이 나타나서 다행이다.

 

가족들이 질겁해서 으악 하며 왔던 길로 다시 도망을 치는데, 곰이 쫓아오는 그림은 웃겼다. 그런데 곰이 쫓아오는 게 가족들을 잡아 먹거나 위협하고자 함이 아니라 같이 놀고 싶어서, 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전까지는 흑백과 컬러가 교차반복 되다가 곰을 만난 이후에는 전부 그림이 컬러로 바뀐다. 집까지 쫓아온 곰이 무서운 가족들은 문까지 걸어 잠그고는 이불 속에 들어가서 숨는다. 다시는 곰 사냥 따위 떠나지 않겠다 다짐하면서. 나는 곰을 잡으러 가자고 했던 가족들의 허풍과 집에 돌아온 후의 안도감이 재미있기 보다는, 잠긴 문을 뒤로 하고 혼자 쓸쓸히 동글로 걸어가는 커다란 곰의 뒷모습이 그려진 책의 마지막 장 속표지의 그림이 더 와닿는다. 서글펐다. 
 

출처 : http://blog.naver.com/dionysos83/30105124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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