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희의 국어수업
이금희 지음 / 피서산장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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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쓰기 활동으로 그녀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예뻤다. 아니 감동이었다. 그렇게 힘들다는 대한민국 고등학교의 지친 교사의 모습이 아닌 열정적이고 당당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선생을 관두면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했다. 경로당이나 노인정으로 찾아가 할머니들께 책을 쓰게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신 나게 들려주었다.

할머니, 살아온 이야기 해 보소.” “한 줄만 이야기 해 보이소. 그걸 10줄로 늘여서 자세히 써 보입시다.” 할머니를 붙들고 이렇게 11책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을 그녀 모습을 그려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그런 그가 만든 <이금희의 국어 수업>, 이 책은 바쁜 나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나를 울렸다. 사실 나를 포함한 많은 교사들은 교육 관련 책 읽기를 두려워한다. ‘00수업 길잡이라고해서 읽어보면 그 말이 그 말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자존감을 높여주라. 프로젝트 수업이 좋다. 학생 중심 수업을 전개하라. 좋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좋은 줄 잘 알지만 이 빡빡한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되냐고 되묻고 싶을 때가 많다.

어떤 책은 작정하고 구제적으로 알려준다. 이렇게 따라 해봐. 된다니까, 자신이 성공한 방법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늘어놓는다. 그런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잘난 사람의 자랑 같은 느낌만 든다. ‘그래, 넌 참 잘하는구나. 현실에서 이게 진짜 될까?’ 이러면서 책을 덮기 일쑤다.

이 책은 달랐다. 추상과 구체를 오가며 참 재미있게 쓰였다. ‘그래, 이런 선생이 되어야지.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런 수업, 이런 선생이 되냐고 라는 마음이 들 때면 어김없이 구체적인 교실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수업 장면에 내가 서 있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삶을 사랑하는 기분 좋은 교사가 있는 교실이다. 그 교사는 당당하다. 그 앞에는 국어공부를 왜 해야하냐고 투덜대지만 배움의 본능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등학생이 떡하니 있다. 그리고 그들과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내 마음을 다잡는다.

좋은 교육학 이론서도 가르치려 들면 싫어지는데 설명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보여줘서 좋다. 그가 선생으로 날것의 삶을 살아내 주는 모습이어서 좋다.

 

최근 나는 어려운 책은 안 본다. 이 책 속에는 자전거 타는 걸 가르쳐주는 것 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책도 도전하라고 하지만 말이다. 책이란 일단 읽혀져야 하지 않나. 이 책은 참 쉽다. 담긴 마음은 간절하고 깊고 무겁지만 가볍게 읽힌다. 그래서 그녀의 학생들도 이런 매력 때문에 이금희의 매력에 빠져 억울하게도 열심히 글을 읽고 글을 쓰고 말을 하겠지 싶었다.

사설이 길었다. 책 속으로 살짝 들어가 보자.

앙칼진 고양이처럼 성난 늑대처럼 성질내던 아이들이 물오른 느티나무처럼 푸르게 바람 소리를 내는 때가 바로 수업에 몰입할 때라고 저자는 말한다. 제자를 그 자체로 완전하게 보는 선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보는 순간 참 괜찮은 사람 맞다는 교사로서의 이 주장에 박수를 보낸다. 나도 매일 기도처럼 지금 이대로의 내 아이들은 이미 온전한 인격체라고 믿는다.

이 책의 1장 힘을 키우는 교육까지만 읽어도 책값이 아깝지 않다. 읽어보면 왜 이런 말을 했을지 공감이 가실 거다. 밑줄 긋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힘들 때 기억해 줘

, 내 몸에 힘이 들어 오는 구나.

힘은 힘들 때 생기는 구나라는 내용으로 1장은 끝이 난다.

 

2장 질문으로 키우는 힘에서는 교사가 먼저 텍스트를 읽으며 사실적, 추론적, 비판적, 창의적, 성찰적 질문을 어떤 참고 도서 없이 만들어보라는 것이 확 와 닿는다. 산유화 수업 장면에서 질문 만들기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좀 우스운 건 고등학교 수업 이야기이지만 초등학교 교사인 내가 봐 도 별로 낯설지 않다. 정이 가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한국말 잘하는데 국어공부는 왜 하냐고 투덜대는 학생들에게 국어 수업을 해야 하는 이유를 삶의 문제로 연결해준다.

교사가 먼저 자신이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가르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수업을 해야 한다. 맞아. 맞아. 그 확신이 먼저 필요하다. 교사인 내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 이러면 되겠구나. 읽으면서 속이 다 시원하다.

 

유명한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평범한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공개하면서 내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힘은 능력이 아니라 상황이라고 강조한다. 3학년 1반에서는

다양한 도형 모양을 보여주고 5개를 골라서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어라고 한다. 2반에서는 먼저 마음에 드는 도형을 5개 골라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어라고 한다. 3반에서는 도형을 가리고 앞반과는 달리 순서를 바꾸어서 너희들이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려면 뭘 만들것인지 정한 다음 도형을 보여주고 5개를 골라 만들라고 한다. 4반에 서는 3반과 똑같이 진행하고 마지막에 고른 도형을 짝과 바꾸어서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낯설고 도전적인 상황을 주면 평범한 3학년 아이들임에도 3반과 4반에서는 세계 창의력 경진대회에 나온 팀보다 더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금희의 수업 이야기를 보며 이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소재로 한 수업은 바로 교사가 평범한 학생들을 데리고 어떻게 상황을 만들어주느냐에 따라 배움과 탐구가 가능한 수업이 될 수 있는지 보여 주었다. 낯선 상황이지만 목표를 가지면 생각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아하, 말로는 하기 쉬운 교사의 전문성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수업은 시범입니다. 이론이 아니라 교사가 직접 몸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저는 새 학기 초반에는 최대한 예쁘게 차려입습니다.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 자리이니까요? 교실에 들어갈 때는 무조건 웃고 들어갑니다. 설령 기분 언짢은 일이 있다 해도 교실 문 앞에서 긴 호흡을 하고 분 흐름을 끊습니다. 문을 열면서 가장 환하게 웃습니다.

얘들아 내가 왔다. 너희들을 만나러 가장 행복한 마음으로 왔다. 그러면 아이들도 웃습니다.’ 본문 중에서

나는 이 대목이 참 마음에 든다. 이 시작이야말로 선생으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이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학생이 사서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60권을 읽게 된다. 그 아이에게 물었다. 책을 많이 읽고 나니 뭐가 달라진 것 같니? ‘제가 좀 더 멋있어 진 것 같아요.’ 얼마나 빼어난 말인가? 이 대목에서도 난데없이 눈물이 난다. 한 아이의 인생을, 스스로를 멋진 사람으로 여기게 변화 시킬 수 있는 자리, 그 자리가 선생의 자리이다. 그리도 나는 선생이다.

 

책보다 삶이 먼저임을 잊지 않는 국어 선생님, 신라의 향가인 제망매가를 통해 천 년 전 신라사람이 말을 걸어오게 하고 세월호의 아픔과 연결 지어 학생들 입에서 시가 말을 하네라며 시와의 만남을 시 속의 화자와 만나게 도와주는 선생님,

!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하늘 때문인가, 이 책을 읽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책을 읽는 동안 한 때 내 꿈이었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을 며칠이라도 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국어 수업처럼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반 열 살 아이들과 이런 감동의 수업을 하고 싶었다.

이 책을 많은 선생님들이 읽어주면 좋겠다. 혹여나 내가 내 뜻대로 아이를 평가해서 책도 글쓰기도, 말하기도 싫어지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이 땅의 많은 어른들이 함께 봐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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