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 고명재 산문집
고명재 지음 / 난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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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정말. 글자 한 자 한 자가 함박눈 눈송이처럼 알차다. 쉽게 읽히는데 여운은 가볍지 않다. 읽는 내내 내 마음 속에선 하늘하늘 눈이 내렸다. 이제 더이상 ‘눈‘에 대해서 더 읽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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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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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디테일이 주문을 걸다 

작가가 솔직하게 털어놓은 삶의 이야기와 그녀를 구석구석 채우고 있는 그녀와 함께 살았던 여자와 남자들.  그녀가 겪는 경험들과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상황들. 특히 작가의 엄마와 작가 자신의 관계.  그 무엇도 나와 비슷한 구석이라곤 없었다. 그들이 사는 나라, 지역, 집, 이웃들 등등 참 많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수많은 차이점을 꾹꾹 다지듯 누르고 힘있게 뚫고 나오는 나만의 기억들.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쏙 빼닮아 있는기억들과 기분들. 작가의 이야기는 작가의  이야기만이 아니고, 나만의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그 각각의 이야기들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작가가 작품 속에 그려낸 다양한 사물들과 날씨와 감정과 대화들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주문이 되어 나와 나의 엄마의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기억들을 불러냈다. 그렇게 작가와 나는 부드럽게 이어졌고, 작가가 엄마와 살면서 느낀 모든 생각과 감정과 기분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엄마와 함께 한 그 모든 생각과 감정과 기분도 아주 강력한 이야기로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 어떤 보잘 것 없는 ,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엄마와 딸의 사연이라도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같은 종류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주문을 발견할 수 있다. 

  

   마음껏 화내도 좋아


 딸은 대체로 다른 가족 구성원들보다 더 많은 경우 엄마의 뒷모습을 애달프게 떠올린다. 엄마들도 마찬가지로  아들이나 남편보다 딸의 뒷모습을 애처롭게 기억한다. 나처럼 살까봐. 바깥에서 겪을 많은 억울함을 예상하며 딸의 뒷모습을 보고 또 본다. 딸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매일매일 해치워야 할 가사일의 무게를 상상하며 엄마의 뒷모습의 무게에 같이 주저앉을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엄마와 딸은,  서로의 욕망이

부서지고 해체되는 모습을 목격했고 목격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게 욕망을 고백하며 화내고 분노한다. 작가와 작가의 엄마처럼, 나와 나의 엄마도 그랬고 지금도 우리는 서로에게 화를 내고 또 받아낸다. 끊임없이 다투고 욕심을 말하고 억울해하고, 고집 부리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여자와 엄마는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마음껏 화낼 수 있는 서로가 있음에 안도하고 토닥인다. 서로가 서로의 오래된 욕망과 상처를 오래 목격한 사이. 작가와 작가의 엄마처럼, 나와 엄마처럼 많은 엄마와 딸은 마음껏 화낼 엄마가 있음을 딸이 있음에 안도하며 안전함을 느낀다. 책 속의 그토록 많은 말싸움들, 내용은 다르지만  많이도 닮은 말싸움들. 이 세상 엄마와 딸들은 서로에게 화를 내며 서로의 욕망을 인정하고 발견하고 애태운다. 


  기억나니?


작가가 엄마와 함께 옛날 사진을 보며 그때 그 시절로 함께 돌아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만은 아주 친숙했다. 기억나니? 여기 어딘지 기억나니? 이날 기억나니? 누군지 기억나니? 서로의 기억을 확인하고 자신의 기억이 맞다고 고집 부리기도 하는 가장 평온한  짧은 평화의 시간.

나의 엄마가 기억하는 나와 함께 한 기억들. 내가 모르는 엄마의 시간들. 나이가 들수록 엄마에게 질문이 많아진다. 어릴 때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엄마의 과거들. 엄마의 욕망들과 꿈. 펼쳐보지 못한 그녀의 시간들. 나와 완벽하게 겹쳐지는 억울함. 작가와 작가의 엄마처럼 나와 나의 엄마는 함께 억울해 하고 함께 서글퍼하며  함께 분노한다. 우리는 패잔병의 아픔을 같이 나누며 서로를 위로한다..

  이제 엄마도 나도 나이가 들어간다. 피할 수 없는 관계인 나와 엄마는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며 같이 걸어가고 있다. 나의 엄마와 나의 관계는 컵에 가득차 찰랑거리는 물처럼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관계지만,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관계다. 책을 읽으며 나와 나의 엄마는 한 편의 근사한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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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수프 - 가을 아이세움 그림책
문채빈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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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가을 풍경이 신나고 유쾌하게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책이다. 그림 구석구석 볼거리와 찾을거리가 넘쳐난다. 이마를 맞대고 앉아 숨은그림찾기 하듯 재미난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책이다. 글도 재밌지만 그림만으로도 자기만의 이야기를 뚝딱뚝딱 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형제가 별로 없는 요새 아이들에게 일곱 마리 생쥐 형제들과 동물친구들 이야기는 상상만으로도 가슴 뛰는 흥분을 안겨줄 것 같다. 책을 읽고 나면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 가을 속에서 놀다가 호박죽 색깔 노을이 번지면 아이들의 입가에 침이 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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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 사랑 웅진 세계그림책 219
맥 바넷 지음, 카슨 엘리스 그림, 김지은 옮김 / 웅진주니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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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딱 집어 답할 수 없는 모호한 질문은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 완전히 멈추진 않더라도 살짝 머뭇거리고 주저하게 한다.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가, 또한 자주 찾아오지 않는 순간이다. 어른으로 자라나면서 우리는 정확한 답이 있는 질문과 대답하기를 연습하고, 그것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너무 쉽게 대답해버린다. 금세 단정짓고 결론지으며 세상을 단순하고 일차원적으로 해석해버린다. 여기엔 어른들의 잘못이 크다. 이 책의 할머니는 '사랑이라는 게 뭘까요' 라는 어쩌면 거창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손주의 질문에 귀찮아하거나 어설픈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손주가 스스로 천천히 느긋하게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누군가가 억지로 주입해준 정답이 아니라 자신만의 정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세상엔 정답이 없는 것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소년이 들은 사랑의 목록들은 모두에게 정답은 아니지만 대답을 한 누군가에겐 정답이다. 책 속에서 소년은 끊임없이 묻고 생각하고 대답한다. 소년과 함께 독자도 묻고 생각하고 답하며 세상을 복잡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건, 사랑이라고 말해 준 단어들의 아름다움만큼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사랑스럽고 따듯한 색감들이 모두를 부드러운 햇살처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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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42
로버트 배리 글.그림, 김영진 옮김 / 길벗어린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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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같은 책이다.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쪼개지고 또 쪼개지며 크기는 작아지지만 등장인물들이 누리는 행복의 크기는 결코 작아지지 않는다. 잘라진 크리스마스트리는 크기만 작아질뿐 모양은 똑같다. 부분과 전체가 똑같은 프랙탈 현상이 연상되며 우주와 자연의 신비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집사,애들레이드,팀아저씨,곰,여우,토끼,생쥐와 윌로비 씨는 내용은 다르지만 똑같이 행복하다. 나누고 나누어도 나의 행복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 세상엔 누구도 빠짐없이 누릴 만큼 행복이 충분히 많다. 또한, 이 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들뜨게하는 명랑하고 유쾌한 모양말,소리말들이 가득하다. 노래 속의 신나는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문장들을 다같이 큰소리로 따라 외치면 뭐든지 이루어지는 주문을 거는 것처럼 힘이 불끈 솟고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리고 함께 같은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해낸다는 게 무엇보다 큰 선물이란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준다. 저마다 색다른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는 과정들도 너무 흥미진진해서 책을 덮자마자 이번 크리스마스트리엔 뭘로 꾸며볼까 집안을 돌아다니며 빙글빙글 찾아다녔는데 이또한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비싸거나 구하기 힘든 것들이 아니어도, 우리만의 기억과 추억이 담긴 것들로 멋지게 트리를 꾸미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생각에 벌써 가슴이 들썩거린다. 다가올 크리스마스엔 이 세상 모두가 행복하길. 남의 행복을 훔치지 않아도 세상엔 행복이 차고 넘치니까. 나만의 크리스마스, 나만의 행복을 찾는 연습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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