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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정 문어발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3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다나베 세이코. 대표작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비롯해 『아주 사적인 시간』 『서른 너머 함박눈』 『고독한 밤의 코코아』 등을 펴냈다. 1928년에 태어나 아쿠타가와상, 여류문학상, 일본문예대상,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 기쿠치칸상, 요미우리문학상, 이즈미교카문학상, 이하라사이카쿠상 등을 수상하면서, 대중적인 작가로 자리 매김했다. 특히 인간과 사랑에 대한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과 예리한 유머 감각, 명징하고 담백한 서사로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다나베 세이코의 이번 단편집『춘정 문어발』 역시 작가 특유의 색깔이 진하게 묻어나는 여덟 편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오사카와 간사이 지방을 중심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미와 삶의 의미를 읽어 내는 진지함과 함께, 음식을 통해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을 그리면서도, 그 시선을 블랙코미디로 포착하여 남녀 주인공들을 희화화하는 위트 있는 작품들이다.
달달한 연애, 달콤한 잠, 따뜻한 음식, 그 중에 제일은 음식이더라
인간의 대표적인 세 가지 욕구인 성욕, 수면욕, 식욕. 인간은 이 세 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최근 부각되고 있는 것이 바로 ‘식욕’의 충족으로,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 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쾌락을 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미각(味覺)을 만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은 식욕을 채워 주면서, 동시에 ‘먹는 행위’라는 유희를 제공한다. 맛집 순례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식도락은 신선놀음에 가깝다. 음식은 그 지방의 지역색을 드러내 주는 문화의 지표가 되어 인류학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음식이 인간의 정서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치 한 조각과 고추장 한 숟갈에 이국에서 느끼는 낯설음이 달래지듯이, 모국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어루만지는 데는 모국어나 사투리 이상으로 음식이 필수다. 따뜻한 요리 하나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성의 없는 식사 대접에 마음을 잃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다.
다나베 세이코는 여덟 편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마음과 음식 사이의 긴밀한 연대를 세밀한 관찰과 감수성으로 탁월하게 풀어낸다. 특히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일본 간사이 지방색이 물씬 느껴지는 음식에 대한 묘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푹 우려낸 곰탕 한 그릇 같은 진한 ‘물기’를 느낄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인 오뎅과 우동뿐 아니라, 일식 전문점에서 종종 맛볼 수 있는 오코노미야키와 타코야키에 조금은 생소한 스키야키, 고로 등 먹거리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이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남자, 여자, 그리고 음식의 삼각관계
음식 안에 만드는 사람의 영혼이 배어 있듯이, 사람은 음식을 함께 먹고 즐길 소울메이트를 찾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한 심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춘정 문어발』에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 속에 다나베 세이코는 공통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남자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그들은 아내에게서 그 음식을 얻어먹는 데에 실패했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음식의 맛을 공감할 여자를 갈망한다. 그러면서 이상적인 그 ‘맛’을 찾아 헤매다, 자신의 입맛에 딱 맞는 식당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안식을 얻는다.
그곳에서의 안식은 일종의 구원이다. 결핍 혹은 욕구불만으로 살아갈 맛을 잃은 남자들에게 모성과 같은 그 음식 맛이 혀를 덮을 때, 그들에게 찾아온 찰나의 순간은 잠시나마 지상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천상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그러한 순간을 주지 못하는 ‘쿨한’ 아내들과의 갈등, 황홀한 음식 맛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여자들의 또 다른 부덕함, 중년이 되어서도 잊히지 않는 어머니의 손맛 등 여자와 음식은 주인공과 묘한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음식과 관련하여 여자를 바라보는 주인공들의 시선은 자못 불편하기까지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나베 세이코의 노련한 필치가 드러난다. 음식뿐 아니라 인간의 심리에 있어서도 예리하고 섬세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작가는, 말하기 어려운 혹은 말로 번역되지 않은 미묘한 심리를 포착하여 폭로함으로써, 특유의 사르카즘(비꼼, 풍자)을 절묘하게 발휘해 이중의 희화화에 성공한다. 그 블랙유머를 웃으며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샌가 사람과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작가의 통찰에 가닿게 되고, 결국은 주인공을 포함한 인간을 끌어안고 토닥이는 작가의 따스한 이해와 포용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주인공들이 찾아 헤매던 음식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인간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