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생활의 설계 - 넘치는 정보를 내것으로 낚아채는 지식 탐구 생활
호리 마사타케 지음, 홍미화 옮김 / 홍익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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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다’는 말이 괜찮은 소신처럼 들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약간 촌스러워진 것 같다…기엔 어딘가 뒷북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아, 원래 한참 전부터 촌스러웠는데 혼자만 몰랐나 보다. 전에는 전혀 읽지 않았던 책도 요즘은 곧잘 읽는다. 예를 들면 지금 당장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미국식 자기계발서 같은. 때때로 세계 제일가는 긍정과 확신으로 가득한 에너지가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보다 좀 더 좋아하게 된 자기계발서 타입은 어떤 분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라고 등을 떠밀어주는 것보다, 저자 나름의 통찰을 설득력 있게 들려주는 편이 내게는 자기계발에 더 실용적이었다.


≪지적 생활의 설계≫는 후자에 속하는 자기계발서다. 이 책은 정보를 정리하고 생산해나가는 여러 방법을 소개한다. 평소 데이터를 관리하고 체계화하는 데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 실용적인 팁이 있을까 하여 집어 든 책인데, 오히려 저자의 ‘지적 생활’에 대한 통찰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지적 생활’이란 양질의 정보를 꾸준히 접하고, 축적하고, 이를 가공해서 생산하고, 외부로 발신하는 과정 일체를 말한다. 저자는 단순히 ‘책을 꾸준히 읽고, 감상을 기록하고, 블로그에 포스팅을 올려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정보 순환의 관점에서 인풋을 어떻게 관리하는 게 효과적이고, 정보 소비와 정보 생산이 어떻게 다르며, 정보 발신 행위가 왜 발신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설명한다.


이 책에서 또 새로웠던 점은 이학박사인 저자의 이력답게 ‘정보’를 일종의 정량적 연구 대상으로 다룬다는 점이었다. 보통 독서법에 대한 책은 ‘진정한 독서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깊이 있는 독서란 이런 것이다’라고 정성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곤 하는데, 이 책은 정보를 과학적 탐구 대상의 데이터를 다루듯이 서술한다. 마치 ‘독자 X의 인지 체계에 정보 A를 인풋 하면 새로운 정보 B가 산출된다’, ‘하루에 N시간씩 M만큼의 정보를 축적하도록 설계하면 10년 후에는 K에 도달한다’라고 말하는 느낌(실제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아니다)이었다.


이 책에서는 정보 관리에 대한 여러 팁을 제시한다. 그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이 “16. 정기적인 자체 검열로 깊이 있는 지적 축적을(98p)”이라는 대목이었다. 저자는 축적해가는 정보를 정기적으로 검열함으로써 깊이 있는 지적 축적을 할 것을 당부한다. 이 꼭지를 읽으며 크게 공감이 되었는데, 평소에 기록을 해나가다가, 문득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회의가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먹는 사진만 수백 장 촬영하다가 거기서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지 못하고 차츰 기록을 그만두고 마는” 경험을 누구나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생활 속의 작은 정보들은 적절한 편집을 거치면 새로운 인사이트로 거듭날 수 있는 반면, 검토 과정이 없다면 그 사소함으로 인해 무수한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따라서 작은 정보들이 ‘재인용’에 지나지 않는 종잇조각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축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외에도 “기록할 때 객관적인 정보로만 남기지 말고, 개성화 작업 곁들이기”, “장기적인 관점으로 지적 생활에 투자하기” 등 현재 나의 독서 습관과 기록 습관을 되돌아볼 수 있는 대목들이 많았다. 그 밖에도 정보 관리와 지적 생활에 대한 다른 책들을 여럿 소개해주어서 찾아보며 참고가 되었다. 나처럼 읽고 쓰는 생활을 몸에 붙이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이나, 자신만의 지적 축적을 꾀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팁들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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