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를 떠나는 너에게 낮은산 키큰나무 20
임어진 지음 / 낮은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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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답한 요즘이다.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이 이렇게나 물리적으로 느껴지던 시기가

 내 인생에 또 있었을까 싶다.

 덕분에 시간은 많아져서 책을 많이 읽었다. 

 어떤 책이 말하는 희망은 그저 남의 이야기 같았고,

 어떤 책은 꼭 내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았다. 응원받는 기분이었다.


 <궤도를 떠나는 너에게>는 후자에 해당하는 단편집이었다.

 작품마다 어떤 지점이 꽂혀서 감정이입이 되었는지 내 개인적인 경험을 밝힌다면

 책을 고르거나 감상을 공유하고 싶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스포일이 싫다면 패스해주세요.)


 <니르 순환선>은 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공간을 함께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죽은 가족에게 느끼는 어떤 부채감에 대해 말하는 청소년 소설들은 전에도 몇 편 읽어봤다.

 그런 극복하기 어려운 감정을 한국을 2시간 안에 왕복하는 순환선으로 구상화한 것이 이 작품의 독특한 지점이라 생각한다. 

 오직 SF의 세계에서만 경험해 볼 수 있는 낯선 속도 속에서는 다양한 일이 일어난다. 

 그저 하차하지 않는다는 사실 만으로 같은 처지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있고, 나라도 외면하는 즉물적인 폭력이 자행되기도 하지만, 또 뜻밖의 행복을, 뜻밖의 깨달음과 만남을 얻기도 한다.

 그 공간에 함께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주인공의 하차 장면도 더 감동적였던 것 같다.


 <해피 하우스>는 무조건 재밌을 수밖에 없는 SF 호러 장르라고 생각했다.

 특히 긴 부연설명 없이, 상황에 대한 묘사만으로 공포감을 느끼게 해주는 지점이 좋았다.

 작품의 공포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저 과거의 SF들이 그러했든 인간이 아닌 존재의 공포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이 작품 속의 AI가 내게 두렵게 느껴졌던 이유는 뭘까?

 AI가 그런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 배후엔 과연 누구의 잘못이 놓여 있을까?

 (여담이지만 난 어린 아이가 당하는 폭력엔 둔감하다가 자신도 비슷한 위험에 빠지는 부모님의 모습이 좀 통쾌하기도 했다.) 


 <나나와 하나>는 나의 최애작이었다.

 아마 집안에서 둘째나 막내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싶다.

 잘해도 첫째도 그러더니 운운, 못하면 첫째는 안 이랬는데 운운.

 그런 구체적인 감정까지 끌어가서 AI와 원본 인간의 관계라는 SF 소재를 풀어낸 점이 좋았다.

 스필버그 감독의 A.I.도 좋아하지만 한편으론 생각한다.

 '원본이 아닌 나는 누구일까?'라는 고민을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로봇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하게될까?

 무조건적으로 엄마의 애정을 갈구하는 나이가 지난 로봇의 경우 그 고민의 결은 얼마나 더 복잡해 질 수 있을까?

 그렇게 혼자 해본 상상들에 어떤 구체적이고 상상해볼만안 답을 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짱 재미있었다.


 <로봇 단테> 시리즈는 시리즈의 구성 자체가 좀 신선했다.

 나는 당연히 목차를 보고선 같은 주인공에 대한 두 가지 에피소드라고 생각했는데,

 각각 단테1과 단테2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생각해보면 SF의 세상 속에서 1, 2와 같은 일련번호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건데, 뭔가 작품의 구성에서부터 내 고정관념을 깨달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단테1은 모험적인 요소가 강한 이야기라 술술 즐겁게 읽었다.

 한편으로 그 안에 담겨 있는 고민할 거리자체는 그리 가벼운 내용인데, 그걸 이런 몸의 서사로

풀어낸 솜씨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훨씬 많은 가능성을 가진 어린 단테는 자신의 최후만을 생각하는 더 이상 개선의 가능성이라고는 없는 장 회장의 계획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을까.

 둘 중 누구에게 더 힘이 있었을까.

 이처럼 어린 아이의 가능성을 무시한 채 그저 옆에 두기만을 바라는 식의 대우가 꼭 우주 순장의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얼마나 폭력적인 일이 될 수 있을까. 

 한 편으로는 안티 히어로인 장 회장의 사연이 매력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절대 장 회장이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꽤나 제 처지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고, 행동력도 뛰어난 빌런 같아서 장 회장 캐릭터가 매력이 있기도 했다.


 단테2는 단편집의 마지막으로 꼭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단테2의 결말부가 그랬다.

 나는 특히 로봇인 단테가 인간들이 구성한 시스템 밖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장면이 섬칫하게 다가왔다.

 내가 상상하기에도 단테같은 최첨단의 존재는 쉽게 시스템에서 벗어나 숨거나 자립하는 것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소설 속의 대안이 아는 좀 못 미덥기도 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생각했다.

 워낙에 새로운 가능성이란 언제나 완전한 확신을 줄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전과 다른 대안이란 그 전엔 아무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선택일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미 익숙한 궤도에서 벗어나는 일은 꼭 이 소설이 묘사한 상황처럼 불안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불안함의 끝에 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능성이 놓여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소설을 다 보고난 나는 다시 한 번 믿고 싶었다.

 으으. 왜 내가 이상한 시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책이 던지는 메세지에 나도 조금은 힘이 나 남겨 보는 감상평이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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