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은애숙 지음 / 상상마당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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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어딘가 처연하고 아련한 느낌이 드는 이 소설의 제목입니다.

동명의 제목의 중편을 비롯한 중편 2편과

5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은애숙 작가의 소설입니다.

저처럼 제목에 혹-해서 읽고 싶어진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제가 좋아할 컨텐츠를 보란듯이 예상해보이며

'동양풍 음악'을 추천 리스트에 꺼내놓더라구요

어떻게 알고리즘화 되어있는지 놀라웠습니다. 정말 제 취향에 딱 맞았거든요.

이 책은 그 음악을 들으며 읽으면 더 몰입되어 읽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편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의 주인공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을 만나 작가로서의 문학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돼요. 마치 드라마 '달의연인:보보경심려'가 생각나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글은 한숨에 읽어지지 않아서 가끔 검색하기도 하고 남편에게 물어가면서 읽기도 했어요.

문학과 작가의 역할에 대한 주인공 '루다'와 '만중'의 대화뿐 아니라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도 상세히 서술되고 있거든요.

몰락하는 명나라와 등장하는 청나라 그리고 조선의 관계.

경신환국 전, 숙종이 남인을 우대하며 호의를 갖고 있던 때,

서인이었던 김만중이 유배되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 묘사가 많기 때문에 자주 찾아가며 읽었어요. 현대문명에 대해서 주인공 '루다'가 만중에게 설명해주기도 하면서 역사와 현대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구운몽'에 대해서 '루다'가 '만중'에게 질문도 하는데, 예전에 읽었던 구운몽이 세세하게 생각나지 않아서 다시 구운몽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책 속의 책을 발견하는 재미랄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중편 '기다림'과 단편 '아득한 꿈'이었습니다.

두 편은 모두 한 부부가 나와요.

'기다림'의 부부는 노부부로 아내가 집을 나가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마치 종 노릇하며 몇 십년을 살아온 아내가 느닷없이 집을 나가게 되고 남편 판수는 그 후 두달만에 췌장암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단편 '아득한 꿈'에서는 젊은 부부가 나와요.

대학교 교수직을 위해 교수의 딸과 결혼을 한 주인공은 아내가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어 결국 아내로부터 이혼하자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주인공은 당황하지만 이내 자신의 제자인 '연두'와 선을 넘어버리죠. 어떤 감정의 동요없이 그 과정이 좀 쉽게 표현된 것이 아쉽습니다만, 여튼 주인공은 소설 말미에 '연두'에게도 '별거 없는 남자'로 치부됩니다.

두 소설 모두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남자의 모습에 대해서 비참하게 쓰여졌다고 느꼈습니다.

화자가 남자가 아닌 '여성'이었다면?

작가님이 '역사의 흐름에서 소외된 채 자녀양육과 가사 노동을 전담해 온 여성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면 그 편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판수의 아내는 집을 나가서 후회없이, 자신을 찾게 되었을까? 정말로 집을 나간 것은 단지 가사노동과 여성착취의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였을까? 이런점이 궁금했고 '아득한 꿈'에서는 첫사랑을 아직 잊지 못해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인 척 연기를 하고

끝내 이혼한다는 그 아내로부터 어쩐지 저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억압당한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에게 패해 치욕을 당한 이들 말입니다.

누군가 나서서 그들이 자신의 자유로운 생각과 신념을 따르다가 고난받고 정통의 경계밖으로 내몰린 존재임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_202p


이 한마디가 '아득한 꿈'뿐만 아니라 이 소설집 전체를 대표해 설명하는 말이 아닐까 해요

역사속에서 억압받은 이들에 대한 작가님의 시선을 따라가보면

그것은 패자로부터 듣는 당시의 정치이야기이기도 했고, 남편으로부터 맞으면서도 밥을 차리는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며 이혼가정에서 사랑이 부족하게 자랄 수 밖에 없었던 아이로의 사랑이야기이기도 했고,

명성보다 중요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했지요.

그 시선의 방향이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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