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비밀 -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노래, 희랍 비극 읽기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4
강대진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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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 비극을 읽다가 포기한 전력이 있다. 읽지 않거나 읽다가 포기한 책에는 부채감이 든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볼 때마다 다시 읽어야지 했지만 마음뿐 선뜻 손이 가진 않았다. 희랍 비극은 오랜 시간 내겐 너무 먼 당신이었다.

 

강대진의 『비극의 비밀』에 관심이 간 건 밀린 숙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고 싶기 때문이었다. 비극의 비밀, 그것은 인간의 밑바닥, 심연의 일이라 생각했고, 비극의 비밀을 통해 인간을 좀 더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비극의 비밀』에는 오레스테이아 3부작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을 포함하여 모두 열두 편의 희랍 비극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저자는 지속해서 희랍 비극을 읽은 후 이 책을 읽기 바랐으나 성급한 독자인 나는 희랍 비극을 읽지 못한 채 이 책을 읽었다. 소장하고 있는 희랍 비극은 원전을 번역한 것이 아닌 영어와 불어를 번역한 책이라는 사실도 원전에 앞서 이 책을 읽은 이유였다. 새 책을 기다리기에 내 마음은 너무 조급했다.

 

원전을 읽지 못한 탓에 아쉬운 맘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희랍 비극 읽기에 실패한 경험 탓에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잘 읽혔다. 『비극의 비밀』은 고전은 딱딱하다는 편견을 뒤로하고 희랍 비극을 재미있게 읽는 데 도움이 될 책이라는 생각이다. 저자는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독립된 이야기가 아닌 연결된 이야기로 순서대로 이어서 읽어야 하고, 3부작 다음에 나오는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와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는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과 같으므로 세 작품을 비교해서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많은 희랍 비극 중 어떤 작품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이 책의 목차를 따라 읽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같은 작가의 경우 작품이 나온 순서에 따라 내용과 구성에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다른 작가의 경우 같은 내용을 어떻게 차별화하는지, 현대라면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피면서 읽으면 희랍 비극을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테니까.

 

사람들은 보통 비극(悲劇)이 ‘슬픈 극’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에 닥친 불행의 크기와 거기서 비롯된 고통의 깊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희랍 비극이 강조하는 것은 불행과 고통보다는 그 속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이다.(이것은 애당초 히랍어로 ‘비극tragoidia'이라는 말 속에 ‘슬프다’는 뜻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원래 tragoidia는 ‘염소노래’라는 뜻이다. 아마 당시 희랍인들에게 비극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비극 경연 대회에서 상연되는 극’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중략)) (109-110쪽)

 

‘비극’이란 단어가 주는 선입견 때문에 나 역시 희랍 비극은 모두 슬픈 이야기라고 오해했는데 해피엔딩 작품도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불행과 고통은 빈번하다. 불행과 고통은 인간의 숙명이기라도 하듯. 희랍 비극은 불행과 고통보다는 그 속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 를 강조한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희랍 비극을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비극의 주인공들은 거의 언제나 불행에 빠진다. 하지만 비극이 그런 인간들을 애도하기 위해 쓰인 것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 불행 속에서도 더욱 빛나는 내면의 힘, 그 재앙 속에서 인물들이 도달하는 어떤 높이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 비극의 목적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불완전한 존재에게나 열린 가능성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로, 영원한 행복 속에 사는 신들에게는, 그 완벽함과 행복함 때문에 오히려 그 가능성이 닫혀 있다. 시인은 인간사를 주관하고 예지하는 신들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인간이 지니고 있는 위대함도 보여주었다. 이 두 가지 어려운 과제를 동시에 해낸 것이 이 걸작의 성취이다.(210쪽)

 

인용문의 ‘걸작’은 고대에 가장 유명했던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의미한다. 이 문장을 통해 우리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비극의 비밀’을 알 수 있다. 인간에겐 불행 속에서 더욱 빛나는 내면의 힘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희랍 비극은 ‘실수하는 것은 인간에게 당연한 것’이지만, ‘자기 행위의 결과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드라마 <상어>는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난 한이수가 김준이 되어 아버지를 죽인 조회장에게 복수하는 내용으로 어제, 17회 방영분에선 자신의 아버지가 피해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불편한 진실과 직면하게 되는 이야기가 방송됐다. 비밀을 모르는 한이수의 입장에서 무능한 경찰과 검찰(혹은 신의 판단)에 맡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야 했을까, 라는 질문에 어떤 답도 할 수 없지만 준영의 말처럼 복수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고통 속에 빠져 사는 건 현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정확하진 않지만 비슷한 대사를 했다). 죽은 아버지 역시 그걸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희랍 비극은 피의 복수는 악순환일 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젠 실제 희랍 비극 읽기를 통해 인물들이 지닌, 우리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한 내면의 힘을 확인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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