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지금처럼 평범하고 서툴렀던 조선시대 아버지들이 붓끝으로 전하는 이야기
박동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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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버지들은 감정 표현이 서툴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 가부장이어야만 했던 조선시대의 아버지들은 더 했을거다. 겉으로는 표내지 못하면서도 한구석으로는 애끓는 마음으로 자식을 바라봤던 아버지들, 이 책은 그런 아버지들의 마음을 엮어낸 모음집이다. 조선시대 아버지들은 말로는 다하지 못했던 애틋한 父情을 한시로 풀어냈다. 작가는 이 한시들을 쉽게 풀어내어 소개한다. 따뜻한 한시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잊고 지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우리 아버지는 내가 일어나기 전에 집을 나가 내가 잠들고 나면 돌아오셨다. 가끔 일찍 퇴근하시는 날이면 양손 한가득 과자를 사오셨는데, 그럴 때면 동생과 나는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찬바람 이고 돌아온 아버지의 두손에서 과자꾸러미를 받아들곤 했다.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밤 11시에 학원 수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는 tv를 보고 계셨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감정 표현에 서툰 아버지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들 사이의 거리는 서울과 평양의 사이 만큼이나 멀었다.

그러다 군대에 갔다. 아버지는 하루 장사를 접고 논산까지 달려오셨다. 어깨를 두드리며 건강하게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웃으며 엄지를 들어올렸다. 아버지의 소망대로 나는 건강하게 전역했다. 군대에 다녀오니 아버지와 나눌 말이 많아졌다. 부쩍 어른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했다.

취업시즌이 다가왔다. 면접에서 매번 떨어졌다. 사촌누나의 결혼식이 있었다. 가기 싫었다. 취업 했냐는 고모들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밖에서 담배를 태웠다. 돌아오니 저 멀리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들이 말이야 내가 해준 것도 없는데 그 좋은 대학 떡 하니 합격하고 또 인턴할 때는 어찌나 일처리를 잘하는지 거기 과장이 너 없으면 일 어떻게 하냐는 말까지 했다니까. 요즘은 서류 붙기도 힘들다는 그 내노라 하는 대기업 면접 보러 다닌다고 역시 우리 아들이라고.

잘나거나 못나거나, 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은 이해하지 못한다. 언젠가 나도 아버지가 되면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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