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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4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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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을 견뎌내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책. 작가의 솜씨와 좋은 번역 덕분에 분량과 내용의 경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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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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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 훼손되지 않고, 변함없이 경이롭고 감동적인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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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 어제 여행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자크 루보 지음, 김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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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문학의 유희와 알레고리를 잘 드러내는 한 쌍의 좋은 단편. 페렉에 대한 루보의 존중도 느껴져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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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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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젯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단편은 첫 번째 이야기인 혜성이다. 3인칭 소설인 혜성의 첫머리는 이렇게 열린다. ‘필립은 6월 어느 날 아델과 결혼했다.’ 이 문장만 보면 앞으로 필립의 이야기가 전개될 것처럼 보이지만, ‘해가 지기 전 마지막 불꽃 같은아델의 삶에 관한 설명이 이어지면서 필립은 이내 독자의 시야에서 멀어진다. 우리는 아델이 한 번 결혼했고, 그 결혼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으며, 필립과의 재혼에 나름대로 만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필립은 아델을 사랑하는 성실하고 평범한 남편처럼 보인다. 그는 나이듦에 따라 우울해지는 아델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잠들어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 이 소설은 고작 대여섯 장 쓰였을 뿐이지만, 이미 우리는 아델의 삶과 그녀의 생각에 대해 거의 다 파악했다. 이야기는 아델의 시선으로 진행되었으나, 그 정확한 단어의 사용, 한 줄의 문장으로 인물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힘은 3인칭 화자 뒤에 숨은 작가 설터의 능력이다.

  후반부에서 화자의 어조는 바뀐다. 부부가 어떤 파티에 참석하고, 거기서 반쯤은 우연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필립의 과거가 밝혀진다. 지금껏 아델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3인칭 화자는 필립의 과거에 대해서는 극히 제한적으로 말을 아낀다. 그러나 제한적이더라도 그 묘사에는 빈틈이 없고, 우리는 필립의 충격적인 과거에 대해서도 짧지만 가장 정확한 정보들을 얻게 된다. 필립에게는 세 명의 아이가 있었고 그 중 한 명은 장애인이었다. 십오 년의 결혼 생활은 파국을 맞았으며 그는 아이의 가정교사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그 가정교사는 콜걸이었고,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와 결혼하나, 하지만……. 필립은 이미 망가진 자신의 삶에 대해 감상을 늘어놓는 대신 나가 버리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와 같은 간결한 문장 속에서 그의 후회와 고통은 충분할 정도로 배어나온다. 아델은 낯선 사람들도 함께 있는 파티장에서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했고, 그들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아델은 하늘을 보던 필립을 찾으러 가지만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고, 그들은 함께 돌아가지 않는다. 홀로 사람들에게 돌아가던 아델은 현관에서 발을 헛디딘다.

  이 단편에서 설터는 줄곧 세심하게 화자의 시점과 거리감을 조절하고 있다. 그게 내가 혜성을 좋아한 이유다. 후반부의 절제되고 중립적인 태도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이 부부가 맞닥뜨린 현실을 영원히 알지 못했을 테고, 또 아델을 중심으로 서술한 전반부가 아니었다면 후반부가 가져오는 충격은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소설은 아델이 필립의 부정을 알게 된 시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데(초반 아델의 시점에서는 필립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다는 암시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아델은 언제부터 필립의 과거에 대해 알았던 걸까? 아델은 필립이 아델을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생각했지만, 필립의 마음은 정확히 어떤 상태였을까? 이야기는 짧지만, 행간에서 연상되는 이 부부의 쓰이지 않은 사정에 대해 독자는 계속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유연한 시점의 변동은 설터의 장편소설인 가벼운 나날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 능력이다. 우리는 남편 비리의 시점, 아내 네드라의 시점, 그리고 이 작품을 바라보는 제 3자의 냉정하도록 정확한 시점을 통해 같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읽게 된다. 소설은 끝까지 평범하고 일상적인 부부의 특별하지 않은 인생에 대해 다루지만, 그렇게 수많은 서술과 시점의 차이를 오가며 이 이야기는 더 이상 가볍지만은 않은 묵직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그 묘사는 대단히 정확하고 날카롭다. 인생은 단순히 무거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가벼운 나날들과 다양한 시선들이 중첩되고 겹쳐지며 무게를 더해오는 것이었다고나 할까.

  《어젯밤의 다른 단편들 또한 이런 측면에서 몹시 매혹적이다. 나의 주인, 당신에서 아디스가 겪는 감정의 흐름은 세련된 사건의 배치와 섞여 몹시 흥미로워진다. 권태로운 파티 한중간에 쳐들어온 광기에 찬 시인, 그 시인에게 이끌리듯 그의 빈 집에 들어가 일탈 행위를 저지르는 아디스, 이 소설과 같은 제목인 이백의 시, 아디스를 쫓아다니는 시인의 커다란 개. 이 이미지들이 직관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주인, 당신혜성이 그러했듯 크고 넓은 거울이라기보다는, 진실을 조각내어 보여주는 분절된 조각들의 모임에 가깝다. 우리는 다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아디스의 본심은 바닷가 흙먼지 나는 벌판에서 보는 그런 여자, 비키니를 입고 맨발로 감자를 훔치는 그런 여자에 가깝다고. 그녀의 마음속에서 걷잡기 힘든 어떤 변화가 일어났으며, 줄곧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또한 공감한다. 우리 또한 타인은 알 수 없는 영역에서 조용히 변화하며, 마음의 부침을 겪지 않는가. 그리고 그 변화가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가. 그리고 그 변화 탓에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헤어지고, 오해하며, 결국 관계를 엉망으로 망치고 만다. 그러고는 ‘그냥 그게 전부였다.' 변화가 이미 끝난 뒤, 인생도 기적 같은 관계의 회복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어젯밤에는 그런 변화가 이미 지나간 뒤의 한순간 흔들림을 포착한 작품도 있고(방콕이나 플라자 호텔같은), 그 변화가 한순간 치명적인 독처럼 퍼지고 만 작품도 있다(표제작 어젯밤같은). 어젯밤의 결말이 가져다주는 섬뜩함은 이미 무척 유명하니 여기서는 따로 말하지 않겠다. 설터는 그러한 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쉽게 단언하지 않지만, 정확하고 섬세한 비유와 수많은 행위의 묘사를 통해 최대한 명료하게 그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마치 칼날이 길지 않은 면도칼처럼,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설터의 문장은 화려하지도 않고 과도한 수사도 없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정확하며 진실에 가깝다. 이 글에서는 주로 혜성에 관해 논했지만, 어젯밤에 수록된 단편들은 그래서 한 줄에 꿰인 진주 목걸이처럼 제각기의 크기로 몹시 고르게 아름답다.

 

  그들의 삶은 미스터리였다. 숲과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되고 묘사될 수 있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흩어져 빛과 그림자로 조각났고, 그 빽빽함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는 형태가 없었고, 경이로울 정도의 디테일만이 어디나 가득했다.

 

- 가벼운 나날, 51

 

  이 글귀는 인생에 대한 탁월한 묘사인 동시에 곧 설터의 소설을 명확히 가리켜 주는 묘사이기도 하다. 설터의 소설을 읽는 경험은 내게 드물고도 귀한 기쁨이었다. ‘경이로울 정도의 디테일을 통해, 설터의 소설은 부서지고 망가지고 비틀린 사람의 마음과 관계에 대해 한순간 명백히 드러내 보인다. 그 순간은 터널을 뚫고 나온 빛처럼 눈부시고, 아주 짧은 순간이라 해도 분명 우리의 영혼을 파국처럼 파헤쳐 놓는다. 짧고 간명하더라도 곧장 사람의 영혼을 찌르는 글. 모든 작가들이 분명 설터와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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