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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란 무엇인가
하워드 리사티 지음, 허보윤 옮김 / 미진사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허보윤이 번역한 책 ‘공예란 무엇인가’는 순수미술의 관점에서 공예를 이해하려고 했던 필자의 시각을 넓혀주었다. 철학, 미학,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쉽지 않은 책을 번역해 준 역자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한다.
한국에서 그 동안 공예와 순수미술, 공예와 디자인의 관계에 관한 추론은 많이 있어 왔지만, 하워드 리사티와 같이 본격적인 담론으로 발전시킨 예는 드물다. 또 저자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맥락을 잘 짚어 독자가 저자의 생각에 공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번역서를 만나는 일도 흔하지 않다.
“As I have already argued, for something to contain, to cover, and to support, it must conform to the physical laws of nature, to what we can call the brute facts of nature. These brute facts dictate the physical forms for such objects while society and social conventions dictate only whether or not we shall use them.”(p. 317)은 공예의 정체성을 자연에서 찾고 이를 언어적으로 설명한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총정리 하는 단락의 처음이다.
번역은 다음과 같이 했다: “앞서 지적했듯이, 담고, 덮고, 받치는 물건은 반드시 자연의 물리적 법칙을 따라야 하며 또 자연의 엄연한 현실에 부합해야 한다. 사물의 물질적 형태를 결정짓는 것은 그 같은 자연의 법칙이며, 다만 그 사물의 사용 여부를 사회적 관습이 결정할 뿐이다.”(269쪽)
저자가 자주 쓰는 “physical”이라는 단어는 “물질적, 혹은 물리적”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역자는 문맥에 따라 적절한 선택을 하고 있으며, “the brute facts of nature”의 경우도 직역을 하면 “자연의 외면할 수 없는 진실들”이 되겠지만 “자연의 엄연한 현실”로 의역해 유연성을 두었다. 또 “objects”의 경우 “오브제, 대상, 물건, 물체” 등의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고 저자도 여러 가지 의미를 돌려가며 쓰고 있다. 여기서는 “사물”로 번역했는데 “thing”의 의미에 가까우므로 이것도 타당하다.
번역서가 원문에 충실한 것은 좋으나 너무나 많은 정체불명의 한국어가 판을 치는 현 상황(영어의 문법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단어만 한글로 바꾸는 현실)에서 저자의 의도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잘 파악하면서도 유연성을 발휘하여 어색하지 않은 번역을 한 역자의 노력은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저자가 성급한 이론적 결론을 내릴 때가 있는데 특히 미학적 개념과 관련해서 그렇다. 일례로 저자는 미학의 창시자인 바움가르텐의 ‘sensitive knowing’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어떤 논리적 설명도 근거도 없이 바로 칸트의 ‘기능/비기능’ 이분법의 이론적 토대로 규정하고 공예와 순수미술의 관계를 도출해 버리는 식이다. (p. 109)
이럴 때 역자의 번역에도 흔들림이 나타난다. ‘senstive knowing’의 경우 ‘감성 지식’ (139쪽)으로 번역을 했는데 여기서 ‘knowing’은 바움가르텐의 상급인식(오성적 인식)과 하급인식(감성적 인식) 이론에서 나온 것이므로 ‘인식’이 더 타당하다.
끝으로 책의 생김 꼴에 대해 한마디.
처음 영문 책을 받아 보고 깜짝 놀랐다. 글이 너무 크고 도판이 흑백으로 나와 있어서다. ‘EasyReadSuperLarge editions’라고 책의 마지막 장에 설명이 나와있는데 원래 책은 어떤지 모르겠다. 아무튼 글자가 크니 저절로 천천히 읽게 되어 내용을 음미하기에는 나쁘지 않다. 흑백 그림 인쇄는 너무했지만.
이에 비해 번역본은 우선 표지나 속지의 색깔이 예쁘고, 들고 다니기에 좋은 크기다. 종이의 질이나 도판도 잘 나왔고. 그런데 눈에 띄는 오타가 있는 것은 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