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행군
장 클로드 갈, 장 피에르 디오네 외 글 그림 / 문학동네 / 1998년 5월
평점 :
절판


시대와 배경은 모호하다. 그러나 고대 로마의 정복전쟁을 패러디한 스토리라고 짐작할 수는 있었다. '코난'을(미래소년 코난 말고)분들은 그 코난의 그림체와 분위기에서 좀더 깔끔하고 정교하게 그려졌다고 보면 되겠다. 이야기의 흐름도 꼭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웬지 어둡고 비극적인. 잔인하고 의미심장한 그 무엇인가 드러날 것 같은 가운데....

문제는 그 뭔가가 분위기만 잔뜩 잡아주고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결국 스토리는 모호하고 주제의식도 뜬구름 잡는 식이다. 굳이 뭐냐고 묻는다면 잔인한 정복자에 대한 조롱과 풍자. 그리고 쳐부수자 정복자! 정도일까. 이때의 정복자는 권력가, 독제자, 파시즘정도로 보면 되겠다.

나의 깍아내림은 부당할 수도 있다. 거기 물건너 사람들의 평가기준을 나는 알지 못한다. 유럽인들은 그런 저항과 혁명에 대한 로망같은걸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재미와 참신함과 감각을 우선으로 하는 나의 주의로는 아무래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고 싶은 작품이다. 그 비닐을 뜯어 볼 수 있었다면 구입하지 않았으리라.

여러가지 맘에 안드는 점이 있지만, 말풍선이외에 스토리 진행을 설명하는 네모칸이 있다는 점이 특히 답답하고 촌스럽다고 느껴진다. 그 안에 주인공의 심리를 설명한다든가 감상적인 나레이션을 늘어 놓기도 한다. 꼭 그래야 하는지. 이 만화만 가지는 특징이 아니라, 그래픽 노블의 특징이라고 하겠는데, 그림의 질은 높이지만 그림 보는 재미를 떨어뜨리는 형식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아무래도 그림을 기대하고 구입했거나 하려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의 경우는 촌스럽고 어디선가 많이 보아왔던-마블코믹의 만화체와 별다를 것 없는-그림체에 실망했고, 국적불명의 출처를 알 수 없는 고리타분한 디자인에 다시 실망했다. 뭔가 대단한 그림을 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고 충고하고 싶다.

그래도 볼 건 그림밖에 없는데, 첫번째 성당이야기에서 중세 고딕양식의 교회묘사가 굉장했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도 묘사에 있어서의 꼼꼼함과 성실함은 감탄할만 했다. 그러나 꼼꼼함과 성실함으로 승부하는 그림은 답답하고 재미가 없다. 그 집념에는 찬사를 보내지만 좋군. 하고 웃어 줄 수는 없겠다.

놀랍다!한국만화가들은 이걸 좀 봐라!우리나라에는 왜 이런만화가 안나오나? 라는 식의 리뷰를 본 것 같은데 좀 많이 모르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만나서 가르쳐 주고 싶다. 그래픽노블과 만화(comic)의 작화수준을 비교할 순 없다. 베르세르크와 둘리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해서는 안되는 것 처럼. 게다가 이 만화보다 수준 높은 그림에 수준 높은 내용의 작품은 얼마든지 있다. 단순히 보다 높은 수준의 그림을 찾는다 해도 차고 넘칠 정도다.

그래도 10년넘게(맞나?) 고생해서 완성했다는 이 책의 진가를 자신의 눈으로 반드시 확인해 보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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