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슈퍼마켓엔 어쭈구리들이 산다 - 슈퍼마켓 점원이 된 신부님과 어쭈구리들의 달콤 쌉쌀한 인생 블루스
사이먼 파크 지음, 전행선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는 아마도 shelf life 유통기한.

그러나 번역자가 후기에서 밝히듯 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이 책의 번안 제목은 <그 슈퍼마켓엔 어쭈구리들이 산다>

소제목도 감각적이고, 역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책이었어요.

어쭈구리의 정확한 의미가 무언가 급 궁금해져서 인터넷에 검색해봤더니 이렇게 뜨네요.


어쭈구리 오픈사전

'어쭈, 제법인데'에서 온 말. 뒤에 구리구리한 느낌의 명사형 어미 '~구리'가 붙어 '어쭈, 너 제법이지만 역시 구리구리하구나,'의 의미로 '어쭈구리'로 쓰임


내용은 전직 신부가 슈퍼마켓이란 공간 안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나 고객의 다양한 군상,을

영국식 위트로 시니컬하면서도 세련되게 표현해냈는데요.

책은 제가 기대했던 류의 내용과는 조금 달랐지만,

(이를테면 따뜻한 사람 냄새가 마구 풍기는 소통의 장이 되는 참으로 이상적인 슈퍼마켓을 꿈꾸었달까요.)

쿨한 시선으로 전혀 미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슈퍼마켓이란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이

나름 꽤 매력적이었어요.

슈퍼마켓 앤드 더 시티(피플)이랄까요.

그런데 이 어쭈구리들이 얼마나 찌질하면서도 친근하게 와닿던지,

언젠가 슈퍼마켓을 떠날거야. 지금의 내 모습은 내모습이 아니야.

나는 좀 더 큰 일을 할 사람이야. 여긴 잠시 머무는 곳이야.

라고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어쭈구리들의 꿈과 삶에 떠드는 이야기들이

국경을 넘어 공감을 자극하더라구요.

고배컨대 문득 슈퍼마켓에서 일해보고 싶다 라는 충동까지 들었답니다.

하지만 슈퍼마켓을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엔 삶과 시대, 자본주의를 관통하는 날카로움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절제와 탐욕, 슈퍼마켓에서는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 허리때를 졸라맬 수도 과소비를 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도 있으니 이게 바로 기적이 아니고 뭐겠는가!

(p.146)


서두름은 우리를 현재에서 멀어지게 만들어 괴물로 탈바꿈시킨다.

(p.186)


이외에도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하러 갔다가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되돌아오며

자석같은 마음과 고무같은 마음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서 얘기하는 대목도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나는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떤 마음을 갖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죠.


자석같은 마음은 대상을 불문하고 주변의 모든 이로부터 신뢰를 끌어당긴다. 또한 모든 것으로부터 배움을 얻을 줄 아는 겸손한 마음이다. 하지만 고무같은 마음은 다르다. 그것은 저항의 장기다. 거칠고, 방어적이고, 되튀면서 모든 진실을 밖으로 밀쳐버린다. 또한 위태로운 심정으로 모든 것에 반대해야만 하기에 세상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p.300)


여러분은 어느 쪽에 해당되시나요? 쉬운 얘기인데, 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젠데도

불구하고,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늘 상대 탓만 하고 있던 건 아닐까, 되돌아보게 되더라구요. (인간관계에 변화를 주고 싶으신 분들께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우리는 잠깐 떠오르는 악한 생각 때문에 황폐해지지 않는다. 인간이 황폐해지는 까닭은

그 생각을 마음속에 오래 담아두기 때문이다(p.222)


끝으로, 개인적으로 신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더 들어갔으면 좋겠다,

슈퍼마켓과 성직자 생활이 좀 더 맞물리거나 지속적으로 삽입됐으면 좋겠다,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고 성찰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아쉬움도 살짝 들었지만,

전반적으로 아주 유쾌한 책읽기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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