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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리에타의 드레스 업 1
채하빈 지음 / 디앤씨북스(D&CBooks)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가장 최근에 읽은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 「아델라이드의 라 돌체 비타」였는데, 공교롭게도 그 다음에 읽은 로판이 작가님의 차기작이 되었네요! 바로 「쥴리에타의 드레스 업!」이에요.
귀족의 사생아이지만 모종의 이유로 쫓겨난 주인공 쥴리에타는 어머니가 일했던 극장에서 자랍니다. 그 어머니마저 일찍 돌아가시자 그녀는 뛰어난 외모를 감추기 위한 변장을 한 채 극장의 허드렛일을 하지요.
중세시대와 유사한 배경의 로판이 으레 그렇듯 이 책에서도 외모가 일종의 무기로 사용됩니다. 사실 초반엔 그런 경향이 뚜렷해서 약간 읽기 힘들기도 했어요. 쥴리에타의 못생긴 분장으로 인한 배척, 외모주의가 너무 부각되어서요.
또 신분 역시 주요한 무기 중 하나이죠. 1권에서는 쥴리에타의 신분이 평민이다보니 사건 해결을 하는 게 아니라 휘말리기만 합니다.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상대가 그녀보다 높은 신분이기 때문에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인물의 도움을 받아요. 전작의 주인공 아델이 귀족이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했던 걸 생각하면 그와 같은 사이다를 기대한 분들이 앞부분에서 조금 실망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적이고 본래 성격을 감추던 쥴리에타의 상큼발랄함이 점점 드러나고, 2권에서 공작 영애의 대역이 되어 조금이지만 답답함이 풀리니 앞으로의 전개를 더 기대할 수 있을 듯합니다.
「쥴리에타의 드레스 업!」을 읽으면서 즐거웠던 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예요. 전작의 남주 펠릭스는 계약 관계로 시작해서 제대로 사랑을 자각하는 기간이 다소 길었죠. 그런데 이 책의 남주인 킬리언은 5권 예정의 장편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빠르더라고요. 그리고 초반부를 읽을 때만 해도 얘가 남주여도 괜찮나 싶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정이 가는 캐릭터였습니다. 특히 틱틱거리면서도 쥴리에타를 챙기는 츤데레적(!)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두 번째는 전작과의 접점이 있다는 거예요. 「쥴리에타의 드레스 업!」은 「아델라이드의 라 돌체 비타」의 배경인 비체른 제국과 함께 대륙을 양분하여 지배하는 오스테른 제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차원견 마니가 보여준 선택지 중 '은색 드레스를 입은 붉은 머리의 가냘픈 여자와 청색 예복을 입은 은발의 잘생긴 남자가 춤을 추는 장면'은 전작의 주인공들을 가리키기도 하죠. '미구엘 공작'처럼 전작에서도 이름이 나왔던 인물이 다시 언급되기도 하고요. 그에 따라서 정치적 상황이 조금 맞물리기도 합니다. 비록 직접적인 배경은 다르더라도 같은 세계를 공유하다 보니 세계관과 이야기가 더욱 넓어지는 느낌이라 매우 좋았네요.
「아델라이드의 라 돌체 비타」에 이어 「쥴리에타의 드레스 업!」을 읽으니 작가님께서 계략과 물밑에서 오가는 싸움을 굉장히 잘 쓰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만 로판임에도 전체적으로 주인공들의 애정전선보다 사건 전개에 치우쳐 있었던 전작을 떠올려 볼 때, 앞으로 「쥴리에타의 드레스 업!」에서 둘의 비중을 잘 잡아주신다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인물들을 더 탄탄해진 문체로 읽으니 즐거웠어요. 유쾌하지만 치밀한 암투가 오가는 로맨스 판타지를 찾으시는 분께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