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VS 유럽 - 갈등에 관한 보고서
로버트 케이건 지음, 홍수원 옮김 / 세종연구원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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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 책을 손에 쥐었을 때 이 얇은 내용이 어인 까닭에 이런저런 주목을 끌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국제정치를 공부했던 나로서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자가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체인 서유럽의 포스트 모더니즘이 오늘날 세계에서 미국의 초강국 지위를 뒷받침해주는 도덕적이고도 윤리적인 근간임을 마지막 순간까지 수용하지 않았다는 속 좁음 내지 편견을 나무랄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일방주의나 하드파워 중시 외교 기조를 비호하는 듯한 전반적인 논리 구조도 비판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로버트 케이건만큼, 근세-현세사에 있어 미국과 유럽 간의 알 듯 모를 듯한 관계와 인식을 이해하고 이를 한정된 내용 속에서 설파할 수 있는 학자가 있을까? 진정으로 의문스럽다. 

또 하나, 미국과 유럽 간의 갈등 구도를 기술한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 팍스-아메리카나 속에서의 한국을 본다. 한국의 위치를 본다. 한국이 눈 앞에 두고 있는 막다른 골목길을 본다.

어떻게 보면 냉전기 동안 우리가 그다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던 국가안전의 문제는 이제 진정 현안이 되어 있는 듯 하고, 아니면 안주해도 그만이었던 넉넉했던 안보 우산은 가랑비를 맞던 우박이 쏟아지든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접어버릴 수도 있게 되었다. 역사상 최초로 우리에게 자율의 기회가 주어졌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과거 60년동안 우리를 꼭 죄어매던 틀에서 벗어나려는 유혹과 함께, 유럽인들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이상적 인본주의의 유혹이 동시에 우리를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하나의 사실이 있고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미국이 상정하고 유일한 국제 질서란 미국이 그 중심에 서 있는 역학 구도라는 사실이다.(책의 164쪽)  아주 유감스러운 현실일 수도 있고, 그나마 다행인 현실일 수도 있다. 이제 누구가 미국의 동맹이 되고 적이 되는가 하는 기준은 미국의 초강국 지위 존속을 돕는가 아닌가 여부에 달려있다. 유럽이 더 이상 미국의 동맹이라고 감히 단정할 수 없음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귀하는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라고 보는가? 아니면 동맹이라고는 자처하지만 동맹의 테두리에 걸터 앉아있는 수많은 국가들 중의 하나인가? 미국을 쳐다볼 것인가? 아니면 유럽을 바라볼 것인가? 결국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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