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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ㅣ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미하엘 엔데 는 1929년 독일에서 태어나 청소년 문학 작가, 배우, 극작가, 비평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여러 활동을 하다가 1995년 8월에 사망한 인물이다. 특히 작가로서는 동화와 환상소설을 통해 금전과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고발한 철학자로 평가된다. 대표작으로는 ‘끝없는 이야기’, ‘짐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 ‘모모’등이 있고 ‘모모’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했다.
‘모모’는 우리가 아는 동화책과는 다른 범상치 않은 두께를 가지고 있다. 분명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이라면 지레 겁을 먹고 손도 대지 않으려 할 만한 두께다. 그러나 그러한 아이들도 일단 이 책을 한 장이라도 읽고 난 후에는 끝까지 읽지 않으면 못 배기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이 책이 주는 매력은 이미 먼 옛날에 동화를 졸업한 어른들에게도 유효하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눈으로, 어른들은 어른들의 눈으로 ‘모모’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커다란 도시의 한쪽 끝에 있는 어떤 마을, 그 근방의 무너진 작은 원형극장에 어느 날부터인가 어떤 소녀가 살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모모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였다. 모모는 자신의 능력으로 마을사람들과 깊은 유대를 나누게 된다. 이들의 일상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회색신사들이 마을을 방문한 후였다. 회색 신사들은 마을사람 한 명 한 명에게 찾아가 그들이 허비해온 시간을 초단위로 계산해주며 시간을 저축할 것을 권유한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시간에 쫓겨 바쁘게 살아가게 되는데 이것을 저지하고 회색 신사들의 음모를 막기 위해 모모는 여행을 떠난다.
시간을 되찾기 위한 모모의 여행은 정의롭고 환상적인 여정이었다. 모모는 회색신사들과 긴박한 추격전을 벌이고 그들의 음모의 현장에 몰래 숨어들면서 마을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또한 미래를 보고 등껍질에 글자를 띄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거북이와 만나거나 ‘시간의 꽃’이 피어나고 또 시들어 져버리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는 등 믿을 수 없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런 멋진 이야기들에 사로잡혀 이 책을 손에 놓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하엘 엔데는 맛있는 음식 속에 아이가 편식하는 야채 따위를 몰래 숨겨놓는 어머니들처럼 ‘모모’를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들로만 꾸며놓지 않았다. 아이들은 아름다운 이야기에 이끌려 미하엘 엔데가 숨겨놓은 어려운 이야기까지도 호기심 가득한 자세로 받아들일 것이다. 미하엘 엔데는 호라 박사와 모모의 친구 기기 등의 인물을 통해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전달한다. ‘시간’이란 무엇인지, ‘꿈’과 ‘목표’가 주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들 너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아이들은 ‘모모’를 읽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 어려운 문제들과 접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어른들에게 ‘모모’는 어떨까? 그들에게 더 강하게 와 닿는 것은 모모의 반짝이는 모험기보다는 회색신사들의 존재 자체일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회색 신사들이 마을사람들에게 권유한 것은 시간을 저축하는 일이었는데, 시간을 저축하기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마을사람들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급박하고 여유가 사라진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회색 신사들의 꾐에 빠져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을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기시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세계에 정말로 회색신사들이 있을 리가 없는데, 우리는 언제나 바쁘고 정신없는 매일을 보낸다. 도대체 이 세계에서 회색 신사들의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호라 박사는 모모에게 이렇게 말한다.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버리지. 장님에게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멀고 귀 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우리는 다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신경이 쏠려서 시간을 가슴으로 느끼는 것에 소홀해 진 것이 아닐까. ‘모모’는 우리가 진실로 낭비하고 있는 시간들의 존재를 깨닫게 해준다. ‘꿈’이나 ‘목표’의 존재 의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우리가 주변을 살펴 회색신사들을 경계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미하엘 엔데는 현대 사회 속에서 바쁜 걸음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모모’라는 책으로 소리쳐 불렀다. 그리고 우리들의 뒤에 점점이 떨어져있는 시간의 꽃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너무 많은 것을 들고 가려다가 깜빡 떨궈버리고 만 소중한 것을 돌이켜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