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호에 실린 시들이 다 좋지만그 가운데서도 <사노라면>과 <9번 버스>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엄마랑 사노라면을 불렀다 / 강예나 용문초 4학년저녁에 엄마랑 나란히 손잡고메트로 서점에 문제집 사러 가는 길이었다.가는 길, 터널은 아닌데음, 일단 터널이 있다.지나가는데 사람들이 없었다.난 입으로 개미도 못 들을 정도로“사노라면 언젠가는~”부르고 있는데 엄마가 “조 으 은 날도 오겠지~” 따라 불렀다.난 엄마랑 사노라면을 우렁차게 부르면서 갔다.(2009년 11월 20일)* 서점에 사러 가는 책이 시집도 동화책도 아니고 문제집이다공부에 시달리는 아이나 그렇게 경쟁 속에 몰아넣는 엄마나사는 게 참 힘들다처음엔 모기 소리로 부르다가 끝엔 엄마와 딸이우렁차게 합창을 한다.따뜻한 희망이 느껴져서 좋다.9번 버스양양 조산초 6학년 김택유학원 마치고 집에 갈 때나는 9번 버스를 탄다.다이소 앞 정류장에 서서다리를 떨면서 기다린다.길 건너편에는 고양이 한 마리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뒤진다.할머니들이 마른 고추포대를 발밑에 두고버스를 기다린다.하늘은 어두워오는데버스는 언제 오나 기다린다.고개를 왼쪽으로고양이처럼 살며시 돌리니깐파란색 몸통에9번이라는 숫자가 눈에 띈다.이제 집에 가서 놀 수 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둘레 장면을 가만히 붙잡아 그려낸 힘이 놀랍다.이오덕 선생님은 이것이 시 쓰기의 기본이고,시 지도의 알맹이라 하셨다.이렇게 붙잡아 그려놓으니 그냥 흘러보내고 나면 묻혀 버리고 말 일도두고두고 바라볼 수 있고별일 아닌 일도 별일이 된다.이 시를 읽으니 백석 시인이 쓴 <팔원>이 떠오른다.<9번 버스>를 쓴 택유도 장면을 붙잡아 그리는 힘이 백석 못지 않다.팔원(八院) / 백석차디찬 아침인데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 하니 비어서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자성은 예서 삼백오십 리 묘향산 백오십 리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내지인 주재소장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