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세계사 - 대량학살이 문명사회에 남긴 상처
조지프 커민스 지음, 제효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80년대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영화 중에 [마루타]라는 영화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일으킨 무자비한 생체 실험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던 이 영화를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영화의 포스터에 '인간통나무'라는 표현이 있었다는 사실과 몇 년 후 텔레비전에서 심야 시간에 이 영화로 추정되는 영화를 방영했던 기억이 있다. 인류 역사의 잔혹함을 잘 모르던 시기에 봤던 영화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생체 실험을 하는 장면들이라든지 만삭의 임부의 배를 갈라 살아있는 태아를 꺼내 포르말린에 담는 장면과 같은 잔인한 장면들이 담겨 있었고, 그 장면들은 그 후 이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눈 앞에 떠오를 만큼 기억 속에 지나칠 정도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린 시절에는 2차 세계 대전의 가해자인 일본과 독일의 생체 실험만이 인류가 일으킨 잔인한 역사의 전부일 것이라는 어이없을 정도로 순진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4.19혁명, 5.18광주 민주화 항쟁, 4.3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류가 일으킨 잔인한 사건은 비단 다른 나라만의 일이 아니었고, 많은 책을 접하게 되어 갈 수도록 인류의 역사상 나타난 잔인함은 인간의 본성의 악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만큼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책 [잔혹한 세계사]는 이런 인류가 일으킨 잔인한 사건을 18가지 사건으로 정리한 책이다. 기원전 146년에 로마인들이 일으킨 카르타고 학살에서 1995년 스레브레니차 대량살육까지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책 속의 삽화는 점차 흑백 사진으로, 그리고 칼라 사진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무지몽매한 과거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불과 십 여년 전의 이야기로 바뀌는 동안 목에서 무언가가 걸린 것같은 이물감을 느끼게 해주는 답답함을 느끼게 했다.

 

 책의 머릿말에서 저자는 대량학살이 있어났던 사건들의 공통점을 선전활동, 가해자의 피해자 비난, 여성에 대한 끔찍한 취급으로 언급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 그보다 강하게 느껴졌던 것은 인간의 광기어린 집단 최면이었다. 때로는 재물이나 명예에 대한 인간의 탐욕으로, 때로는 종교적 맹신으로, 때로는 국가의 권력을 위해 이루어진 집단 살육 속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절망과 고통보다 가해자가 가진 광기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난징 학살에 참여한 일본인 병사가 쓴 일기장에 드러난 것처럼 사람을 죽이는 경험 속에서 그들은 그 죽음을 즐겼고, 그로인해 적을 완파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학살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인류의 모습과 죽음을 즐기며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시도하며 서로를 자랑하는 모습, 그리고 죽인 자의 신체를 훼손하고 시신을 먹는 모습, 더 나아가 살아있는 사람들을 마치 가축처럼 잡아 먹는 모습은 샤머니즘이 지배하던 과거의 이야기에서 일어났을 때보다 20세기에 일어났을 때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문제는 이 책에 드러난 모습은 인류 역사의 극히 일부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내용과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모습을 제외하고도 아직도 모르는 잔인한 사건들은 수없이 숨어 있고, 21세기인 현재로 지구촌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덧붙임- 본문 중간 중간 책의 내용 중 일부 구절을 다른 글씨체를 이용해 다시 한 번 보여주곤 하는 편집을 사용했는데 한 쪽으로 따로 빼내지 않고 본문 사이에 있다보니 약간은 책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성 바톨로뮤의 날 대량살육' 편에서는 본문의 내용과 삽입된 구절이 차이를 보여 어느 내용이 맞는지 알 수 없었던 점도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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