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절 - 어떤 역사 로맨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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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미국의 송어 낚시>를 통해 20세기 미국 문학의 거장이란 이름을 알린 브라우티건의 1971년 작품 <임신중절>. '임신중절'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이미지를 생각했을때, 조금은 무겁고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부제는 어떤 역사 로맨스. 과거의 어느 연인의 사랑 이야기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고,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이야기가 펼쳐졌다.

우리는 책을 분류하는데 듀이의 십진분류법이나 다른 분류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다. 도서관 장서 원장에 등록한 다음에는, 그 책을 저자에게 돌려주어 그가 원하는 곳, 또는 그의 필이 꽂히는 서가에 직접 꽂도록 하고 있다. 책은 어디에 두어도 아무 상관 없는 것이, 아무도 그걸 빌려가기 위해 찾아오거나 도서관에 와서 읽어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는 그런 도서관이 아니다. 이곳은 다른 종류의 도서관이다. p.20-21

 주인공 '나'는 31살로 28살 때부터 3년간  도서관에서 일하며 숙식생활을 하고있다. 근무하는 곳은 조금은 특이한 곳. 24시간 책으로 출간되지 못한 원고와 문서를 받아주고, 보관해주는 도서관이다. 지루할법한 생활에 나름 만족을 하며 살아가던 어느날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을 가지고 온 바이다를 만난다. 육감적인 몸매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 불편한 그녀는 자신의 몸을 증오하고 있다. 첫만남에 책을 보관하며 그녀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둘은 서로 호감을 느껴 연애를 시작한다.

“나하고 자고 싶어요?” 내가 물었다.
“그게 뭔지는 나도 모르지만.” 그녀가 대답했다.
“당신에게는 나를 편하게 해주는 뭔가가 있어요.”
“내 옷 때문일 거예요. 그게 사람들을 편하게 해준답니다. 언제나 그랬어요. 나는 사람들이 편하게 느끼는 옷을 고를 줄 알지요.”
“난 당신 옷하고는 자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나와 자고 싶어요?” 나는 물었다.
“도서관 사서하고는 같이 자본 적이 없어요.”
이제는 99퍼센트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나머지 1퍼센트도 점차 나를 향하고 있었다.
드디어 나머지 1퍼센트도 나를 바라보는 것을 확인했다. p.58-59


여자와 잘 때 위에서부터 시작할지 아래에서부터 시작할지는 어려운 문제다. 특히 바이다는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건 심각한 문제였다. 그녀가 어색하게 손을 뻗어서 내 얼굴을 감싼 채 조용히 계속해서 키스했을 때, 나는 어디서부터든지 시작을 해야만 했다. 그녀는 내내 나를 바라보았고, 마치 내가 활주로나 되는 것처럼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바꾸어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그녀의 얼굴은 내 손 안에 든 꽃이 되었다. 나는 키스하는 동안 손을 약간 아래로 내려 그녀의 목과 어깨를 어루만졌다. 내 손이 그녀의 가슴 경계에 도달했을 때, 나는 미래가 그녀의 마음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스웨터 아래 그녀의 유방은 아주 크고 완벽해서 처음 그것을 만졌을 때 나는 사다리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p.63

그리고 바이다는 임신을 한다.  아이를 낳아 키울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들은 낙태를 하기로 결정하고, 낙태가 불법이었던 미국과는 달리 낙태가 허용됐던 멕시코 티후아나로 임신중절 수술하러 가기로 한다. 친구에게 도서관을 잠깐 맡기고, 벤과 비행기를 타고 경유해 멕시코에 도착한 후, 호텔에 짐을 맡기고 병원으로 가 수술을 받고 좀 쉬었다 다시 돌아오기까지 단 하루의 여정에 불과했다. 이 짧은 여정으로 인해 '나'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수술 때문에 3년 만에 도서관 밖의 현실세상을 마주한 '나'는 수술 후 다시 도서관에  돌아갔지만, '나'의 자리는 이미 다른 사서로 채워졌다. 잠시 일을 맡겼던 친구가 도서관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나'는 도서관에서 나오게 되고 결국 바이다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300페이지 정도에 달하는 짧은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작가란 누구보다 먼저 주위 사건들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무슨 어마어마한 정치적, 문화적 대변인은 결코 아닙니다만, 사회상과 문화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회의식이 없는 예술이란, 돈 있고 배부른 귀족들의 사치일 뿐, 결코 인간정신의 고양이나 잃어버린 전원의 회복에는 도움이 될 수 없을 겁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


 
도서관에서 장기간 정착해 혼자 조용히 자유롭게 살아가던 남자 주인공이 여자친구의 임신중절 수술로 인해 현실세계로 돌아와 지극히 현실적인 삶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현실세계를 만나게 되면서 그 후에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아서 좀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임신중절>이라는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궁극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해 봤지만, 결국 답은 나오지 않았다.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나에게는 쉽게 이해하기에 어려운 소설이었다. 





브라우티건이 이 소설을 쓸 때 캘리포니아에서는 낙태수술이 불법이었지만, 소설이 출판된 1971년에는 합법화되어서, 부제를 뒤늦게 ‘역사’ 로맨스라고 붙였다고 알려져 있다. 임신중절수술 금지법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p.237, 해설 중
 
브라우티건이 창조한 이 특이한 도서관을 기념해 동부의 버몬트 주 벌링턴에는 브라우티건 도서관이 세워졌고, 거기서는 실제로 출판되지 않은 책 원고들만 받아서 보관했다. 브라우티건 도서관은 벌링턴의 플레처 프리 도서관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가, 2010년에는 워싱턴 주 밴쿠버에 위치한 클라크 카운티 역사박물관으로 옮겨갔다. p237, 해설 중


임신중절

저자 리처드 브라우티건

출판 비채

발매 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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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리처드 브라우티건 소설 임신중절. 책으로 출간되지 못한 모든 원고와 문서를 기증받아 보관하는 캘리포니아의 도서관에서 일하는 남자와 그 도서관을 찾아온 절세미녀의 연애극을 담은 이 작품은, 조금 서툰 커플의 엉뚱한 연애 이야기로 읽어도 흥미롭고, 소위 총천연색 루저들의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로 읽어도 유쾌하고, 작가가 내내 천착한 상실, 죽음, 폐허 등의 키워드로 읽어도 의미 있을 것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 소개
리처드 브라우티건
20세기 미국 문학계의 대표적 작가. 『미국의 송어낚시』는 구사된 단어 하나 하나는 순진무구하고 쉽되, 줄거리를 말할 수도, 그럴 이유도 없는 소설이다. 여섯 개쯤 되는 단어로 온갖 난해함을 표현하는 어린아이의 말처럼, 많지 않은 분량에 들어 있는 에피소드는 시작될 만하면 끝나버리고, 끝나버린 후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물에 들어가면 금방 굳어버리는 녹말가루를 능숙하고 끈기 있게 풀어내 탕수육에 올릴 멋진 소스를 만들어내는 요리사처럼,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흩어져 유영하고 있는 언어들에 질기게 집착하여 치밀한 상징으로 조합해낸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동상이 서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워싱턴 광장에서, 동상 아래서 무료 급식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싱거운 농담 같은 낚시 도구를 챙겨들고 대서부 서사시를 쓰러 송어낚시 여행을 떠난다. 카네기의 도시 피츠버그에서 강철로 된 송어를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주인공은 가는 곳마다 시체와 배설물, 상실의 무덤을 본다. 하천은 계단이나 콘크리트 바닥이 되었으며, 숲은 코요테를 죽이기 위한 독극물인 사이나이가 뿌려져 있다. 버려지고 상실된 모든 것이 그 아래에 묻혀져 있다. 미국에서 『모비 딕』의 고래는 송어로 왜소해졌지만, 이제는 '송어낚시'도 무릎 아래가 절단 나 금속제 휠체어 위에서 하루에 몇 병인가 하는 위스키를 마시며 지내는 형편이다.

브라우티건이 이 모든 것을 묘사하는 방식은 신랄하지만, 공정성을 잃지는 않는 듯하다. 그는 '본질'에 집착하다가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에 빠지는 것 같은 얼간이 짓은 하지 않는다.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고, 상실한 것은 상실한 것이고, 죽은 것은 죽은 것이다. 본질에 대한 집착은 현실을 바라보는 초점을 흐리게 하여 엄한 길로, 편견으로 사람들을 이끌지도 모를 일이다. 브라우티건은 자신이 죽어도 세상이 끝나지 않음을 아는 사람들은 흐르는 과정에서부터 출발하며, 지혜롭고 용기 있는 희망을 지닐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워싱턴 광장에서 주인공의 어린 딸은 다리 잘린 송어낚시 쇼티가 앉은 흉물스러운 휠체어로 달려갔다가 역시 흉물이 된 술주정뱅이 중늙은이 쇼티를 발견하고 겁에 질리지만, 곧 광장 안에 있는 모래 상자를 발견하고 달려간다.

6학년 아이들은 교장 선생과 어른들에게 제지당해 하루만에 끝날 혁명이지만, 1학년 아이들의 등에 모조리 '미국의 송어낚시'라고 쓰는 테러를 한다. 스노비즘적인 캠핑 열기를 비난하지만, 여행은 그의 삶을 멈추지 않게 하는 조건이다. 동상 아래서 다섯 번째 위스키 병을 비우고 있는 뉴올리안즈 화가들은 생계 수단으로 벼룩의 등에 색종이로 옷을 해 입혀 서커스를 시키는 사업을 구상한다. 테이크 아웃 오뎅 전문점 정도를 사업적 상상력이라고 에둘러오다니, 그런 이들은 반성할지어다. 무엇보다도 브라우티건은 완벽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든 완벽한 낚시밥을, 송어낚시의 금빛 펜촉을, 작가가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언어를 믿는다. 제 작품에 해제를 다는 것을 자제하는 브라우티건이 『모비 딕』을 빌어 한 말이 책 말미에 있는 인터뷰에 나와 있다.

"…『모비 딕』과 『송어낚시』는 모두 환상(또는 픽션)과 리얼리티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깊이 의식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비 딕』과 『송어낚시』는 둘 다 언어와 사물의 단절을 깊이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작품 다 상상력에 의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진귀하고 풍요한 것을 찾기 위해 탐색작업을 계속합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언어의 유희가 생성되고, '환상'을 소중히 여기게 되지요. 악몽 같은 현실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술가의 펜뿐입니다. 작가의 펜에서는 잃어버린 온갖 것들이 되살아나기 때문이지요. 푸른 초원도 아름다운 꽃도, 무성한 숲도 말입니다. 비록 얻고자 추구하는 대상은 잃어버렸지만 꿈만은 잃어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모비 딕』 같은 작품에 나타난 '미국의 신화'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작가의 펜이기 때문입니다."


목차
제1권 버펄로 소녀들아, 오늘 밤에 나오지 않을래?
제2권 바이다
제3권 지하 저장소에 전화 걸기
제4권 티후아나
제5권 세 번의 임신중절수술
제6권 영웅

해설 브라우티건 도서관의 뜻을 기리며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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