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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의 전기관 1
이쿠노 타지마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2년 11월
평점 :
품절
죽은 후에 두 번째 기회를 얻는다면 어떨까.
사실은 나도 내 생각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일 수 있었음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 누군가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들을 기회. 무엇보다, 다시 살아갈 기회.
회귀, 환생, 빙의 소재가 흔해진 요즘에, 어쩌면 그렇게 차별점을 가지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차라리 뇌과학 영역의 기술을 통한 망자 소생이라는 점은 꽤나 독특하다. SF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유명한 이야기의 오마주라고 하더라도.
사형수 데이빗 더글러스는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시체 기증에 동의했다. 그 시체를 의학 실험에 사용한 사람은 빅토리아라는 뇌과학자로, 13살에 최연소 의학 박사로 인정받은 천재다. 이 어린 박사 선생이 하는 실험은 바로 전기 신호를 통한 망자 소생이었고, 실험은 성공하였다. 데이빗 더글러스는 빅토리아의 전기관으로서 '아인스'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빅토리아가 그에게 부여한 사명은 한 가지. '사람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전기관이 유익함을 증명할 것.'
사형수였음을 뻔히 알면서 이런 사명이라니. 아인스는 당황스럽다. 하지만 전기관이 되어 강력해진 힘을 발휘하며 사람을 돕는 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노부인에게 들은 '고맙다'는 인사는 제법 달콤했다. 괜찮을 것 같았다.
빅토리아와 자신을 욕하는 소리에 욱해 사람을 치고, 그 사건으로 빅토리아가 훈장을 반납할 위기에 처하기 전까지는.
밑바닥을 전전하며 살아온 데이빗, '태어나서 대실패, 살아와서 대반성'(솔직히 우타이테 노래에 나올 법한 가사 같다고 생각했다) 같은 삶을 살아온 데이빗이 어떻게 한순간에 거듭나겠어? 그는 자조하며 박사에게 이별을 고한다. 사람을 구하려는 선생과, 사람을 해치며 살아온 자신은 함께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는 결국 박사와 다시 재회한다. 열차 사고로 인해 추락 위기에 처한 열차에서 소녀 의사가 애쓰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으로 달려간다. 스스로를 희생할 각오로 사람들을 구한다. 그렇게 그는 영웅으로 거듭난다.
1화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영웅 탄생 전기라고 봤을 때 서사 구조가 새롭지는 않더라도 익숙한 그 맛을 잘 살렸다. 이런 인물이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싶지만, 기어이 자기 증명을 마쳐 자신이 품은 결함을 이겨내고 영웅으로서 우뚝 서는 모습. 그런 이야기 자체가 독자에게 힘을 주니까.
1화 이후에도 아인스와 빅토리아는 계속 사건에 휘말린다. 사건에 휘말릴 때면 아인스는 늘 새로운 문제에 봉착한다.
엄마의 약값을 벌기 위해 소매치기를 하는 어린아이를 감쌀 때는 경찰에게 '너는 우리 편이냐'는 질문을 들으며 정의와 선함을 고민한다. 빅토리아를 시기하는 동료 연구원에게는 '전기관으로서 되살아나면서 사실은 자유의지를 잃고 선한 일만 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이야기의 맥락에서 충분히 나올 법한 질문이면서, 이야기를 읽는 나도 고민해 볼 만한 주제라 좋았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전개도 좋았고, 주요 인물인 빅토리아와 아인스가 보이는 유사 가족과 가족애도 좋았다. 또 처음에는 적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이후 주인공들과 친해지는 조연, 종교가 월튼이 입체적으로 그려져 좋았고. 길어질 만한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이미 3권으로 완결난 작품이라고 해서 괜히 조금 아쉬웠다.
작화 얘기를 빼놓으면 아쉽다. 인물은 깔끔하게, 배경은 섬세하게 그려진 작화가 눈길을 끈다. 컷의 구도도 기본적이지만 좋았고. 빨리 완결까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