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길 없는 대지 - 길 위에서 마주친 루쉰의 삶, 루쉰의 글쓰기
고미숙 외 지음 / 북드라망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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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외침의 <서문>에서 시작되었다.

 

가령 말일세, 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   (루쉰, <서문>,외침」,  그린비 루쉰문고 03, p.14~15)

 

 

루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나에게 이 글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부서질 수 없는 철방 속에 갇힌 이들.... 소리를 질러봤자... 가망없는 임종의 고통만을 줄 뿐인 외침....

그것을 뼈저리게 알았기에 저 깊은 심연의 적막에 닿았던 루쉰.

그러나 결국 그는 다시 소리를 지르는... 아니 지를 수 밖에 없는, 무언가를 쓸 수 밖에 없는 삶을 살아간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루쉰이 좋아하던 니체...그가 자주 쓰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계속 되뇌어보아도 뭔가 석연치 않은 대답만 돌아왔다.

 

그래서 루쉰을 읽게 되었다. 쉽지 않았다. 무언가 답을 얻고 싶었지만 답은 얻을 수 없었고 더욱 혼란에 빠져 머리를 쥐어뜯었다. 뿐만 아니다. 무엇하나 그렇다할 답을 찾지 못했는데 다시 또 질문이 쏟아졌다. 루쉰의 희망? 루쉰의 계몽? 루쉰의 혁명? 루쉰의 문학? 등등....

나는 헤매기만 했다. 무언가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도 종종 들기도 했지만 그것을 내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내 말로 루쉰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약 반년정도가 지났다.

 

하지만 이상했다. 정작 루쉰을 읽을 때는 읽혀지지 않는 글이었건만....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마주할 때면 문득 그의 글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폭군의 신민은 폭군보다 더욱 포악하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등등

내 머릿 속에 자주 소환되는 루쉰과 함께 한달 전쯤 그에 대한 반가운 책을 만났다.

 

<루쉰, 길 없는 대지>이다. 오랫동안 공부 공동체에서 루쉰을 읽고 공부하신 6명이 루쉰의 행적을 쫓아가며 쓴 글이었다.

깊게 고민하며 루쉰과 고군분투한 흔적이 곳곳에 보여 연필을 들고 주욱 주욱 줄을 그어가며 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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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루쉰의 철의 방 이야기에서 두 가지에 주목한다. 첫째, 깨인 자는 다시 잠들 수 없다는 것. 둘째, 깨인 자인 나 역시 철의 방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또한 나는 루쉰의 이 비유를, 깨인 자에게는 깨인 자의 운명이 있다는 말로도 이해한다. (중략) 루쉰의 계몽주의는 이 지점에서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을 보여 준다. 나 역시 철의 방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내가 너희들을 깨우는 건 철의 방 바깥으로 나갈 희망이 있어서도 아니라는 것. ( 문성환, '루쉰의 탄생', <루쉰, 길없는 대지>, p.112)

    

나를 루쉰으로 이끌었던 철방에 이야기를 저자 나름으로 해석(?)한 부분에서 다시 한번 강한 의문이 생겼다.

루쉰 역시 철방에 갇혀있다는 것, 루쉰이 글로써 사람들을 계몽하려 했지만 그것은 가벼운 희망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

그렇다면 철방을 나올 가능성이 없지만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을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처음 외침 <서문>을 읽을 때와는 다른 질문들이 생겨났고, 루쉰의 삶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무게와 질문이 오래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루쉰, 길 없는 대지> 책을 읽으면서 다시 루쉰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그 무게와 질문에 답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답은 이미 나와 있는 지도 모르겠다. 책의 제목을 보면 길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미 없는 길을 간 루쉰과 그 길을 따라가 본 저자 6인을 따라 일단 가보련다. 나에겐 다른 길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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