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철학이 된 영화
심광현.유진화 지음 / 희망읽기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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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하다. 후련하다. 책을 덮고 첫번째 생각이다. 분명 후련해지려고 책을 읽은 아니었다. ‘대중 철학이 영화 공부하기 위해 읽었다. 그런데 요즘 왠지 모르게 갑갑했던 기분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후련한 기분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책은 쉬운 책이 아니다. 술술 읽히는 부분이 아주 없는 아니지만 (3), 핵심 파트라 1-2부는 내용이 대단히 복잡하고, 전개가 빨라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서서히 뒷골이 당겨오는 것이 사실이다. 원래 어려운 책을 읽으면 그것을 읽지 않았을 때에 비해 더욱 갑갑한 기분이 들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어려운 책을 읽고 기분이 후련해질 있을까? 


저자의 기본 자세가역사지리-인지생태학 자세이기 때문인 같다. 저자는 책을 통해역사지리-인지생태학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시범 보인다. ‘역사지리-인지생태학' 무엇이냐면, 쉽게 말해 사물을 사물 자체로만 보지 말고,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보자는 제안이다. 영화를 영화로서만 좋아하지 말고, 기왕이면 영화 아닌 것과의 관계 속에서 좋아할 줄도 알자는 것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숲만 보지 말고 생태계를, 앞의 생태계만 보지 말고 지금 아닌 시간, 이곳 아닌 공간의 생태계까지도 머리 속에서 상상적 연결을 만들어가면서 보자는 것이다.


말은 이 책이 분과학문적 전문성에 매몰된 결과로 어려워 것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평소 익숙하지 않던 방식인 비-환원주의적 방식으로 사유하게끔 유도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나를 전문철학의 사유과정으로부터 소외시키면서 잘난 하는데 관심이 없고, 오히려 거기에 적극 동참시켜 나를 한 단계 (1종인식->3종인식) 혹은 두 단계 (2종인식->3종인식) 나은 사람, 즉 스스로 철학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저자는 '사유의 헬스트레이너'가 되어 직접 시범을 보여주면서, 친절한 동기부여를 해줄 아니라, 모든 지적 고통을 감내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를 끊임 없이 상기시켜주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나는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을 스트레치 했을 때처럼 기분이 개운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책은 어쩔 없이 책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실제 모습은 하나의 연결망network이다. 1부는영화사람사이에 존재하는 그물망과영화 구성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그물망을 건져올린 것이다. 2부는영화라는 거대한 그물망과사회’(절반은 한국 사회, 절반은 미국 사회)라는 엄청나게 거대한 그물망을 하나로 묶어주는 그물망을 규명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순환' 내지는 '회로'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외국 유명 학자의 이론을 발제식으로 요약정리한다거나, 두루뭉술하게 인용하면서 어떤 분위기만 조성하고 넘어가는 법이 없다. 프로이트, 들뢰즈, 벤야민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철학자들의 이론이 언제나 저자의 고유한 사유 그물망에 완전히 연결된 형태로 소개된다. 물론 연결 또한 '연결을 위한 연결'이 아니라 언제나 '비판적 연결'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런 해석에 대해 견강부회 식의 사후 해석이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219)  식의 문장은 다소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동일 저자의 전작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서문에서 이런 작업을 만하다고 공인 받은 권위 있는 사상가나 전문적인 뇌신경과학자가 아니며 검증된 스토리텔러도 아니다 라는 문장처럼 말이다. 과연 스피노자 칸트 마르크스 프로이트 들뢰즈 벤야민 알튀세르는공인됨권위 따져가면서 사유했던가? 그런 적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저자는 머리로 생각해sapere aude’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글자 그대로 따르면서 즐거운 연결 작업을 이어간다. 혹자는 다른 연결의 전문가인 가라타니 고진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진이 밥알의 스케일에서 움직이는 스시 장인이라면, 저자는 한결 거시적 스케일에서 움직이는 비빔밥 장인이다. 그것이 내가 개운함을 느낀 다른 이유이겠다.


손수 개발한 자율주행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어느 고려대학 교수의 30년 전 영상을 최근 유튜브에서 본 적 있다. 그 교수의 얼굴은 아주 해맑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일런 머스크의 속을   없는 의뭉스러운 얼굴과는 현격하게 다른 얼굴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 또한 그런 해맑은 표정의 소유자가 아닐까 잠시 상상을 하였다. 선배 학자의 '형식지'를 열심히 공부한 후 자신의 '암묵지'에 기반한 직관과 결합하여 전혀 새로운 연결방식을 창출해 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아주 개운한 표정 말이다.


누군가 내게 이 책의 핵심을 뽑아 적게 한다면 나는 이렇게 적겠다. "나와 세상의 선순환"(12) 이 책 자체가 그 선순환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나처럼 '나와 세상의 선순환'의 관점에서 이 책을 접근하고 싶다면 이 책을 46쪽 <마음의 파편화>부터 읽는 것도 좋다. 166쪽 <이행기의 웃음과 코미디 장르의 부활>부터 읽는 것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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