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섹슈얼리티에 말을 건네다 - 인간의 성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면적인 철학적 성찰
김재기 지음 / 향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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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뤼스 이리가라이라는 여성학자를 알게 되었고 나는 페미니즘의 또 다른 형태에 심취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쪽으로만 시선이 치우치지 않게 헤드랜턴을 양쪽에 찬 기분이다. '성과학의 역사' '무의식의 괴물' 단락에서 프로이트에 대한 반박은 (그러한 시도는) 저자가 남성이지만, 남성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태도의 문제인데 좀 더 다양한 사람의 편에서 페미니즘의 한계까지 극복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개인적으로 오래전 부터 XY, XXY, XYYX, yyxx,,,, x와 y로만 구성된 타이틀로 이어지는 인간의 성이라는 (비)생산적 가치-(가령, 자궁 속에서 자궁이 태어나는 것이 통조림 공장에서 통조림 제품이 생산되는 거랑 뭐가 다른건지)에 대한 단상을 적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나'라는 여성성에서 비롯된 생물적이고 문화적인 시선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불안을 늘 가지고 있다. 나는 불안을 숨기는 방법을 모른다. 앞으로 이 책을 자주 펼쳐볼 것 같다.

(철학, 섹슈얼리티에 말을 건네다/김재기 지음) 솔직히 책을 펼치며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책을 통해서도, 어떤 사랑을 통해서도 섹스에 대해 깨달음이나 만족을 느낀 적이 없다. 돌아 오는 것은 성이 아니라 나라는 정체성을 다시 덧칠해야하는 반복과정과 예측할 수 없는 어떤 관계들, 결핍들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소극적인 기대는 전복되었다.저자는 성이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치밀하고 분석적으로 서술해 놓았다.

3부 토픽들 부터 읽었다.(설명이 잘 되어 있어 어디부터 펼쳐 읽어도 저자가 안내하는 섹슈얼리티를 따라가는데 무방하다) 책을 읽는 내내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고 연구해서 저자 자신만의 디테일을 만들어 낸 통찰력이 느껴졌다.(문어발식 책읽기를 하는 사람에게 적극추천한다. 각 장마다 인용문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중간 중간 큭큭 웃기도 했는데 저자가 섹슈얼리티 쪽이 아닌 철학자의 입장에 분명하게 서있을 때 였다. 그러나 저자의 그런 입장이 분명했기 때문에 '인간의 성에 대해서 체계적이고 전면적인' 성찰이 가능했다고 본다)

'신화의 탄생' 단락에서 저자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의 노랫말 인용한다. "우린 모두 다 우리 자신이 고안한 것에 갇혀 사는 죄수들일 뿐" 이라고. 문득 떠오른 카프카의 문장을 덧붙여 본다.

'죄의식은 나에게 하나의 힘이며 해결책이라 생각하겠지, 아니다. 죄의식은 단지 나의 본질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형식이기 때문일 뿐이다. 죄의식은 일종의 귀소본능이다. 속죄, 자유, 만족의 느낌은 후회보다 훨씬 가공할 정도로 점점 올라가고,후회보다 훨씬 능가해서 내려온다'

그러므로 나는 이어서 말해본다. 죄의식은 나의 본질을 위한 가장 추한 형식이다. 인간의 성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형식의 가장 추한 면, 죄의식의 역설이다.

유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염색체에 염색되어 있는 분들께 필독을 권한다. 연인들이 침대 위에서 함께 읽으면 아름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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