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
장석주.송희복 엮음 / 글과마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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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깊은 책을 제가 감히 서평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음.. 이 글을 쓰면서도 저는 독후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도서를 접하고 읽고 그리고 쓰게끔 도와준 글과 마음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를 보냅니다. 저에게는 또하나의 도전이기도 한 책입니다. 이번주 저의 모든 패턴을 잠시 멈추고 이 책을 집중하며 읽고 또 속을 드러내어 글을 써봅니다. 부디 남은 유가족분들께도 혹 그를 아끼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길 바라며 이 책을 읽고 표현의 자유라는 글쓰기에 대한 제 속에서 잠시 날뛰는 자유로움을 담아 봅니다.

 

사실 제가 기억하는 마광수 교수는요, 

 

어린시절 뉴스에 야한소설을 써서 감옥에 구치되는 이상한 교수로 기억에 남아있었습니다. 다만 즐거운 사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의 소설 제목은 기억했지만 역시나 이 책들은 제 어린시절 편견속에 갇혀 그냥 야한 소설로만 기억되었습니다.

저는 아무개들 못지않게 제가 가진 이 시선이 편견인줄 조차 의식하고 살지 않았고 마광수라는 교수는 뉴스나 간혹 인터넷 상 떠올라오는 이름정도로 치부하고 살았습니다. 편견에 갇힌 사람의 세상 속에서 그의 이름은 그렇게 아무 의미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 를 만나다

그러다 우연찮게 접한 이 책을 말입니다.

색상부터 자극적입니다.

와우~~~ 심플... 짙은 주황색에 보색에 준하는 파란색의 글자색은

아... 뭐라고 해야 하는거죠?

자신감? 아님 .. 뭐지?

요즘 같은 시대에 .... 불꽃같은 서정시에서도 보여준 뚝심, 옳은 느낌...

그와 사뭇 다른 듯 같은 강렬함.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은 채도의 주황과 파란색의 조합의 표지부터 저를 싱숭생숭하게 만듭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는냐~~ " 하는 오래된 노래 가사가 머리를 스쳐가고 표지부터 저를 미궁에 빠트리는 .

제목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마광수를 성찰하겠다는 건지 마광수 시대를 성찰해 보겠다는 건지.

아... 문해력이 없는 걸까요?

표지만 붙들고 이렇게 고민하긴 또 오랜만입니다.

책을 펼치다

얼마나 째려 봤는지 모릅니다.

저의 책읽기는 주로 출퇴근 시간대... 만원지하철에서 읽은 생각을 하니 아직 '마광수'라는 세 글자는 왠지 저를 야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거 같아 공공장소에서 읽어도 되는건가? 라는 편견을 또 싹 틔우게 합니다.

아직 나는 멀었나 봅니다.

그리고 집에서 한장 두장 읽어가며 빠지기 시작합니다.

잠깐만!! 이 책은요~

1992년 가을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규정하고 유포혐의를 받은 마광수 교수는 학기중 긴급체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문단과 학계에서 왕따가 되었고 문학적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2017년 자택에서 죽음을 택한 그의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이 책은요 즐거운 사라가 출판된지 27년이 된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과 함께 그의 사후 2년간 걸쳐 쓴 마광수 교수에 관한 글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입니다.

어떻하죠?

꺄아~ 글을 읽을때 마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아는 세상은 무엇이였나 싶어서요.

껍질을 하나 더 깨고 어른이 되는 기분이였습니다.

마치 성이라는 것, 섹스, 섹시, 야함 ,등 등 어찌보면 금기하던 외설적인 부분들에 대하여 나는 막연하게 비밀스럽고 누구와도 공유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알고보니 마광수 교수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한국 사회는 도덕적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

그런 사회에서 내가 주창한 사랑은 관능적 욕망 자체이며 인간의 행복은 성욕 충족에서 온다. 라는 문학관과 자유주의 성 담론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 문학은 상상력의 모험이자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라고 믿었던 내가 순진했던 것일까?"

야한인간, 마광수_ 장석주

그러게요... 교수님 우리는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숨기고 어디까지 도전해야 하는 걸까요? 어쩌면 그는 순진한,표현에서의 자유로움을 외치는 피터팬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기들이 똥,빵구, 찌찌, 잠지 하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듯 그도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니였나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참된 에로티시즘은 '사정'이 아니라 발기에 있다.

권태에 빠지지 않으려고 나는 오르가슴의 순간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사정 후엔 반드시 권태가 오고,

곧이어 오르가슴의 황홀경이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야한인간, 마광수 - 장석주

 

 

 

 

 

성담론,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다

시대가 발전하기 위해 모든 곳에서 이렇게 흐름을 뛰어넘게 하는 한 순간이 필요하구나! 양지뿐 아니라 우리가 음지마저두요. 모든 분야, 모든 장르에서 선구자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식의 편중, 가치의 무게, 개인의 선호도를 더나 '성장, 성숙'의 흐름를 위해 마광수라는 한 작가는 역시 선구자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글의 주제는 일반적이지 않았음은 분명합니다. 마광수라는 렌즈를 통해 풀어낸 세상에 던져진 그의 글은 적어도 타협하지 않은 그의 길이였으며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의 글이였습니다. 때론 그게 다 일때도 있습니다.

혹은 작은 항변으로 그 당시 그렇게 치욕적으로 그를 끌어 내릴 필요는 없었다고 이야기 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즐거운 사라가 처음 나온 게 1990년대 초. 1988년 올림픽을 치른 뒤 고도소비사회로 넘어가며 우리 사회의 억압된 다양한 욕망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일부에서 <빨간 마후라>,<O양의 섹스비디오>를 비밀스럽게 공유하고 마르기 드 사드의 규방철학이나 소돔120일, 조르주 바따이유의 O의 이야기, 에리카 종의 날으는 것이 두려우, 아나이스 닌의 책들이 시중 서점에 나와 버젓이 진열되고 팔리고 있었다. 그 동안 성의식도 바뀌고 예전보다 훨씬 더 성적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의 한쪽에는 수구적 봉건윤리와 도덕 만능주의자들이 완고하게 버티면서 자유와 다윈주의의 촉매제인 섹스를 억누르고, 그 때문에 우리 사회의 창조적 역량이 억압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다.

근엄한 척하면서도 뒤로는 호박씨를 가는 사회의 위선적 행태에 시비를 걸어본 건이다 성에 대한 알레르기 현상을 깨부수고 싶었다.

야한인간 마광수- 장석주

 

그가 지금 글을 쓴다면?

 

 

만나서 이빨만 까기는 싫어

점잖은 척 뜸들이며 썰풀기는 더욱 싫어

러브 이즈 터치

러브 이즈 필링

가자, 장미여관으로!

 

가자, 장미여관으로 - 1985년작

 

이 책에서 고르고 선별한 것일텐데도 그의 시들은 불편합니다.

밴드 장미여관은 혹 그의 시에서 영감은 받은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알던 정보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던 두 작가에 대해 다른 시선도 가지게 합니다.

그의 소설 일부 발췌 된 부분들도 역시나 많이 불편합니다.

한편 생각해보니 몇년전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위해 봤던 아동용 도서를 보고도 깜짝놀라 덮었던 제가 기억납니다.

한편 생각해보니 요즘같은 전자도서등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흔한 19금 연애소설에서도 볼 수 있는 수위의 글들인데 왜 그의 이름에 붙은 오명은 그의 글을 읽는데 이렇게 큰 장애가 되는 걸까요? 세월이 흘러도 붙어버린 오명은 떼어내기가 힘들구나 사람의 머릿속에 한번 들어간 생각을 바꾸는게 참 어려운 일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어쩌면 작가의 지위와 위상을 알기에 가졌던 기대때문에 질타할 지식인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궁색한 변명도 생각도 하여 봅니다.

 

비평가 마광수, 매력있다, 매력있어!

사실 이책에서 소개된 마광수 교수의 시나 소설보다 비평가 마광수가 저는 제일 마음에 듭니다. 그의 색다른 시각이 빛을 발하는 곳은 비평가 혹은 교수일때의 그 인듯 합니다.

 

요즈음 비평가들에게는 심금을 울리는 문학적 감동이란 우스운 것이고,

어떤 기발한 문체, 신기한 사건의 전개,

이상심리적인 주공의 변태가 더 재미있고 가치가 있다.

그럴듯하게 수식해 놓은 평론에는 도무지 맞지 않는

번드레한 문체가 이제는 우수한 평론 문체가 되어 버렸다.

평론은 실로 이제까지 가졌던 문장정신의 예언자로서의 고매한 영역을 떠나 언어적 유희로서의 상완의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평론 자체로서만 끝나면 그래도 괜찮겠는데,

그러한 평론들은 스스로의 궤변을 계속 고집해 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그 폐는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창작가들은 자연히 종당에서는 평론가의 눈치를 살피게 되기 마련이며

그러한 터무니없는 문학적 가치 기준 위에서 글을 쓰게 된다.

그릇된 평론이 문학 자체와 독자들에게 주는 해는

보통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크다.

 

마광수 문학론집  

 

 와우.. 이 글을 1974년 그의 나이 24세에 쓴 글이라고 합니다. 평폐론이라 하여 문학평론의 폐단과 폐해를 논증한 글로 비평에 대한 비평이란 점에서 메타성을 띤 비평이라고 합니다. (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 _ 제3부 시학,수필, 비평)

정말 그의 비평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지나친 잔소리와 기독교적 설교로 가득 차 있어서 읽기에 재미가 없다고 본다는 글인데요.

앗 도스토옙스키 쏘리합니다...

문득 죄와벌이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저에게는 큰 희망의 글이 아닐수 없어 이 글을 읽는 순간 속이 뚫리는 기분은 뭘까요? ^^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은 내게 재미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그의 작가정신에 의심을 품게가지 만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 또 내가 확신하고 있는 작가정신이란 기성도덕에 의한 창조적 반항이고 기성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골적 도전 ...... 문학의 진정한 가치는 창조적 반항에 있고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에 있다.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읽기 중에서

내친김에 이 글에 소개된 삼국지(연의)에 대한 비판글도 비평가 마광수 매력을 더 느끼게 해주므로 소개해봅니다.

삼국지는 민중 중심의 역사 소설이 아니라 기득권 귀족계급과 권력자 중심의 역사소설이다. 사실 삼국시대의 와중에서 중국의 민중들은 이를 부득부득갈며 통치자를 저주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병역과 부역에 시달리고 집단 살상에 녹아났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지보다는 수호전이 차라리 민중의 아픔과 반항정신을 담고 있고 수호전보다는 금병매가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을 숨김없이 그려내고 있다.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 중에서

나의 편견을 부끄러워하자.

 

 

잠시 ' 마광수'라는 인간에 대한 사명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그의 인생에 주어진 사명에 대해 그리고 완성도에 대해 만족했을까요?

그의 작품조차 읽어본적 없는 내가 그의 사명 혹은 저서를 논하는것은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왠지 그는 자기의 용량을 다 채워 하늘로 떠오른 헬륨 풍선을 생각나게 합니다.

저 멀리 하늘 위로 날아가는 풍선을 보며 우리는 잡을 수 없는걸 알면서도 손을 뻗어 잡아볼려하고 아쉬워 합니다.

시대를 앞서갔다는 표현으로 위로할 것이 아니라 날아간 공을 바라보며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나의 편견을 부끄러워하고 바로잡고 수정해야 할 것은 고쳐나가야 겠다는 의지를 가져봅니다.

그리하여 저는 즐거운 사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라는 내가 읽지도 않고 맞지도 않은 주제의 책을 읽을려고 애쓰기보다는 그가 문학적으로 이뤄낸 비평가로의 그의 글과 예술가로의 그의 그림들을 거부감없이 만나는 방법으로 찾아가볼려고 합니다.

아.. 마무리가 멋지게 써보고 싶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한 사람을 오해하지 않고 이해해 가기 위한 당연한 일을 책 속에 담아엮어 주신 글과 마음 출판사와 장석주, 송희복 엮은이 두 분께도 감사의 인사 전하며 끝!!!

 

 

 

 

 

 

 

 

엮은이 우리는 이 책의 제목을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로 정했다.
이 제목의 문장은 뜻 겹침의 의미로 사용되어 있다.
하나는 과거형이요, 또 하나는 현재형이다.
전자의 경우는 과거의 마광수가 자신의 시대를 성찰하였다.
라는 뜻이 될 것이요,
후자의 경우는 지금의 우리가 마광수가 살던 시대를 성찰하고 있다
라는 뜻이 된다고 하겠다.
독자 여러분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도 상관이 없다.


- P4

한국 사회는 도덕적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

그런 사회에서 내가 주창한 사랑은 관능적 욕망 자체이며 인간의 행복은 성욕 충족에서 온다.
라는 문학관과 자유주의 성 담론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 문학은 상상력의 모험이자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라고 믿었던 내가 순진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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