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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고전의 숲 두란노 머스트북 1
존 번연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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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참 재미있는게 인물들의 이름이 '철수', '영희'가 아니다.

'크리스천', '전도자', '고집', '변덕', '신실' 등이다.

이는 마치 '크리스천'이라는 자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크리스천인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들리게 만든다. 또 그가 마주치는 전도자와 고집, 변덕은 믿음의 경주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죄와 은혜를 의인화 시켜 표현한 것 같아 더욱 흥미롭다.

 

-이야기 속 '크리스천'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자신 안에 선함이 없음을 고백한다. 혐오스럽지만 그럼에도 버려지지 않는 육신적인 생각들. 하지만 그는 안다. 십자가과 본향을 바라볼 때 그 죄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끊어야지. 끊어야지.'하면서 주문을 걸듯 죄에서 벗어나려고 스스로를 옥죄는 것이 아니라, 그 죄까지 들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때 온전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걸 나또한 믿는다.

그래서 당장 죄로부터 결박이 벗어지지 않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회개하고 또 회개하며 보혈을 구해야한다!

재미있었던 장면은, 3장 말미에 '크리스천'이 산 아래로 내려갈 때 겸손의 골짜기로 내려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끄러지지 않고 가기가 아주 어려운 길이라고 언급하는데, 그래서 '크리스천'도 아주 조심했지만 한두 번 미끄러진다.

인간의 모습으로 겸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표현한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여튼 미끄러지더라도 골짜기를 내려간 크리스천의 모습처럼 오늘 나도 실수 할지라도 주님이 주신 겸손의 골짜기로 내려가고 싶다.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 책 중간중간마다 쉼없이 드러난다.(세심한 하나님의 돌보심까지 놓치지 않는 책이어서 더욱 추천한다.)

마귀 아볼루온과 싸우는 '크리스천'. 하나님은 그에게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승리를 주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반나절이 넘는 전투로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야 힘을 주시는 하나님. 끔찍한 광경이지만 승리의 기억은 영원한 기쁨으로 그에게 남는다. 하나님은 그걸 아셨으리라.

더 놀라운 건 전투가 끝난 후 그에게 나타난 생명나무 잎사귀다. 잎사귀를 상처에 바르자 상처가 아문다. 문지기 가족들에게 받았던 포도주와 빵을 먹자 힘을 얻는다.

믿음의 경주에서 지치고 낙심되는 순간은 분명 온다. 마귀의 공격도 온다. 하지만 선하신 방법으로 다시 힘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자. 결국 주님은 우리를 그분과 닮게 빚으실 것이고 푯대를 향해 나아갈 힘을 주신다. 마지막 승리를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번쩍 번쩍 빛나는 천국, 그들을 반갑게 부르시는 하나님과 문을 열어주는 천사들.. 그간의 수고와 땀이 기쁨으로 변할 거라는 말이 설렜다.

천국으로 입성하는 자도 있지만 동시에 천성 문까지 왔지만 문이 열릴거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들어오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무지')도 있다.

주님을 잘 모르고 믿음 생활을 제대로 못하는게 처음에는 실수일지 모른다.

하지만 계속되는 권면과 가르침에도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건 '죄'라는 명확한 깨달음을 얻었다.

 

<천로역정>을 추천한다면, 그 이유로 '이들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라고 여겨질 것이기 때문'을 꼽고 싶다.

크리스천과 그의 동역자들은 완전하지 않다. 때로는 잠들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며, 하나님을 의심하고, 심지어 자다가 천성에 들어갈 수 있는 증표인 두루마리를 잃어 버렸다가 고생하며 찾기도 한다. 그 모든 위험을 스스로의 힘으로 넘는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동역자의 따끔한 꾸지람이 차지하는 지분이 더 크다.(서로를 곁에 두도록 허락하신게 주님이니 결국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흔들리는 모습이 '믿음생활의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주님을 붙들어야 한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아 공감이 많이 됐다.

 

이들이 걸어가는 길이 우리와 다른 길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고집, 변덕, 말뿐인 믿음, 아첨, 위선, 교만, 음란, 정욕... 오늘 하루동안도 숱하게 만날 것들이 아닌가. 이들이 사람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대처해야 할 방법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천성을 향해 제대로 달려가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며 읽으면 유익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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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학교 - 학교 밖에서 배우는 사랑 교육
김상훈.윤정희 지음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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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학교>는 '하나님 알러뷰', '하나님 땡큐'의 저자로 알려진 윤정희 사모님과 남편되시는 김상훈 목사님께서 함께 쓰신 책이다.

네 번의 유산을 겪으셨지만 이후 하은이, 하선이 두 자매를 시작으로 해서 8남 3녀를 입양하여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고 계신다.

'더 많이, 더 좋은 걸, 더 빨리'라는 구호 아래 대입 경쟁에 자녀들을 몰아넣곤 하는 요즘 교육 태세와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고 정직하게 성장하는 것을 추구하는 두 분의 교육 방식이 참 많이 와닿았던 작품이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하은, 하선이 친자매를 처음으로 입양하셨다. 토목기사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유복한 생활을 하시다가 둘째 하선이가 폐쇄성 모세기관지염으로 죽을 뻔한 고비를 겪으며 그 때 목사가 되기로 헌신하신다.

영리하고 똘똘했던 하선이가 아픈 모습을 보며 '한글을 언제 떼느냐'라는 속도전 세상 교육에서 과감히 벗어나기로 결심하셨다고 한다.

학습지, 학원이 아닌 동화책과 여행,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도와 말씀의 교육으로.

하선이가 건강해지면서 셋째 '하민'이를 입양하시는데 그때 사모님의 믿음이 개인적으로 놀라웠다.

구순구개열 때문에 언어장애가 있는 하민이.

하지만 사모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하민이는 정상적인 아이'라는 음성에 순종하며 장애아동 신청을 하지 않고 기르기로 결심하신다.

하선이의 병으로 아파트 한 채 값의 병원비를 경험했기에 장애 아동을 신청하고 받을 수 있는 매달 양육수당을 포기하시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무엇보다 하민이에게 계속해서 '너는 정상적인 하나님의 자녀야'라는 말로 안심시켜주었던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부모가 될 나이가 되어가니 '내가 나중에 부모가 되면 내 생각만큼 제대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데,

특히나 아이들에게 '단단하고 든든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윤정희 사모님이 하민이에게 그랬듯,

 

'너는 언어 장애가 있어서 불편할거야.'가 아니라

'너는 지극히 정상적인 하나님의 아이야. 그저 발음이 조금 정확하지 않은 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

                                

 

 

 

 

나중에 내가 딸을 키워서 내 딸이 이런 문자를 보낸다면 그것보다 더 큰 감동이 있을까ㅠㅠ

 

첫째 하은이는 아프리카 선교사를 꿈꾸면서 캐나다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있다고 하는데 듬직한 첫째가 있으니 동생들도 잘 따라왔을 것 같다.

아이들을 기도로 양육하면 어떻게든 하나님이 세우시는 걸 본다.

'기도하는 자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내 고백이 맞다는 걸 책을 통해 또 알려주시는구나.

 


 

 

 

 

여섯째 햇살이가 어느날 물었다고 한다. 학교 친구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발끈하는 누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한 아빠...

 

 내 아이가 학교에서 저런 말을 들었으면 누구라도 화가 났을 것 같다.               

하지만 사모님은 아이들에게 기도하자고 말씀하신다.

   

           
복음을 알고 복음을 흘려보내는 자들로 어릴 적부터 양육시키시는 두 분.

자녀들에게 교회의 문턱만 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아는 사람으로 믿음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혼자만 그렇게 사는게 아니라 가정이 한 마음으로 사랑의 통로가 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목사님과 사모님 가정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말씀, 하나는 섬김.

 

   

야고보서가 행함이 있는 믿음에 관한 말씀이어서 아이들과 야고보서 말씀 읽기를 시작하셨는데 그 후로 동생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성경말씀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재밌고 아이들이 귀여웠던 장면ㅎㅎㅎ
말씀 암송은 정말 놀라운 효과가 있는데 기도할 때에도 말씀이 떠오르면 강력히 선포할 수 있어서 기도의 능력을 얻게 되고,

 

또 하나님의 음성이 필요한 순간에 말씀을 아는 자는 말씀으로 말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니 하나님과 친밀해질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교육 방침이라고 여겨진 '섬김'.               

리어카를 끌고 가시는 할아버지를 아이들이 힘을 합쳐 도와드린 뒤부터 '길 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작은 것부터 나눌 줄 알고 이미 나눴음에도 또 더 나눌 것이 있는지 찾는 사모님과 목사님. 그리고 그걸보고 나눔의 유익을 알아가는 열 한 명의 아이들이다.

이 가정을 보면서 예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사랑은 절대 지치지 않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수처럼 우리 안에 풍성히 흘러넘치는게 맞다는 확신을 얻었다.

주면서도 여유롭고, 나누면서도 풍족한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더 좋은 것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을 믿고 주신 것들을 흘려보내는 모습이 진짜 하나님의 자녀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사는 것 같아서 멋있었다. 복음의 통로가 이런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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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영성 - 내 마음의 주인 찾기
폴 트립 지음, 최요한 옮김 / 두란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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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10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돈을 바라본다.
인생의 어떤 영역도 개별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관계와 재정을 온전히 분리할 수 없고 가정과 일터를 완벽히 때어놓을 수 없듯이.
그래서 돈을 쓰려면 재정의 영역 하나만 볼 것이 아니다.

성경은 돈 자체를 나쁜 것으로 간주한 적이 없다.
다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저주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돈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고 돈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면 그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돈의 올바른 목적과 방향성을 알 수 있다.

또 돈을 쓰는 '내 마음'을 알아야 무엇이 내 재정의 본질적 문제인지 알 수 있다.

먼저, 복음이 전하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어떠한지부터 알아보자.
(사실 이게 시작이자 결론이다. 이 책의 목표는 돈에 관한 모든 것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살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복음으로 우리 세계관이 정립되어야 돈 문제도 바르게 바라볼 수 있다.)

1.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이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주를 다스리신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뜻과 욕망을 좇아 살도록 지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행복하기를 바라시지만 마음대로 살라고 하신 적은 없다.
우리는 그분의 지혜와 계획에 따라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삶에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 영광이 더 중요하다.(그리고 놀랍게도 이렇게 되어야 우리가 진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창조 목적이 그렇기 때문에.)

2. 우리는 죄로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뒤로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다.
하나님을 주인 삼기 싫어하고 내가 삶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죄의 뿌리가 재정, 가정, 일터, 관계 등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죄의 영향력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돈을 우상으로 만들었고, 돈에게 유혹받으며 오용과 남용을 일삼게 했다.

3.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 마음과 삶을 바꾸신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땅에 보내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하늘로 승천하셨다.
이 놀라운 은혜는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다. 마음이 변해야 행동이 변한다. 행동이 변하면 재정상황은 달라진다.
우리의 정체성이 회복되면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고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행하실 수 있다. 물론 우리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창조주 그 분이 너무도 선하시며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4. 우리는 우리보다 더 큰 존재를 위해 살도록 지음받았다.
합리적인 경제생활의 핵심은, 내가 가진 돈이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돈이며 그분의 목적과 기쁨을 위해 써야 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책은 우리가 자잘한 인간적 계획과 기쁨을 뛰어넘는 훨씬 더 큰 '누군가'를 추구하는 존재로 지음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 우리는 대체 왜 재정 문제로 넘어지는가?

1. 엉뚱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 여기서 엉뚱한 목소리란 반드시 사단을 뜻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의 음성일 때가 훨씬 많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주님의 음성보다 내 음성에 더 자주 기울이는게 사실이다ㅠㅠ(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다 알고도 사랑하신 것이니 참소에 넘어지지 않아도 된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그치지만 않으면 된다.)

2. 금단의 열매를 탐할 때 : 선악과를 떠올려보면 쉽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내가 내 마음대로 행했던 것, 그 중 내 마음대로 돈을 쓰고 물건을 샀던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3. 내가 하나님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면 : 죄인은 항상 자기가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이 나쁘다고 말해도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우리의 무거운 빚이 쌓이기 시작한다..

4. 하나님의 공급을 과소평가한다면 : 감사하는 사람은 손안에 없는 것보다 손안에 있는 것에 집중한다. 아담과 하와를 떠올려보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걸 주셨는데. 여기서 더 바랄게 뭐가 있겠어?"라고 말했다면 결과를 달라졌을 것이다.

5. 하나님을 의심한다면 : 사단의 가장 큰 공격루트라고 생각하는데, 사단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게 만들 뿐. 다시 아담과 하와로 돌아가보자. 뱀이 하나님이 없다고 말했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자신과 같이 될까봐 아주 좋은 걸 감추고 있어."라고 말했다.
선하신 하나님을 의심하면 그때부터 돈의 사용 방식이 틀려진다.

6. 하나님이 정하신 선을 넘는다면 : 인생에는 수많은 도덕적 선택이 있다. 작은 선택들이 모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를 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라. 대부분의 돈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거역해서 생긴 것이다.

7. 분명한 결과를 부정한다면 : 기만적인 죄가 아주 무서운 것은 죄인이 죄의 결과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폭식을 해도 건강에 이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빚을 내서 소비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돈에 관한 하나님의 경고가 나와는 무관하다고 확신할수록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나는 방식으로 돈을 쓰게 된다.

8. 서로 비난한다면 : 자기 마음의 욕망과 생각 때문이 아니라 타인, 월급, 결제, 물가 등을 탓할 때 문제가 더 악화된다.

글을 쓰며 내 재정상황을 많이 회개했다. 바르게 사용해야지,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내 뜻대로 썼던 수많은 상황들 ㅠㅠ 예전에 목사님께서 자기 마음의 중심을 알고 싶다면 카드내역을 보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책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계시하시지 않으면 어떤 것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죄인이다. 그리고 모든 죄는 특정한 선택과 행동의 문제이기 전에 우선 마음의 생각과 욕망의 문제다.

우리는 고통받는 존재다. 우리가 사는 타락한 세상은 죄로 엉망이기 때문에 누구나 고통을 받으며 산다. 때로는 이 고통으로 하나님을 부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성도다.
성도도 어리석은 짓을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것처럼 살기도 하며,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똑똑하다고 믿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도에게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은 분명 도우신다.


하나님은 서서히 우리를 바꾸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재정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을 탓하거나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자.
그럼 내 삶이 본질적으로 무엇을 위해 지어진 것인지 알게 하신다. 우리의 삶은 창조주의 영광을 위해 지어진 멋진 삶이다. 그러니 창조주가 우리를 떠나지만 않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그리고 절대 떠나실리 없다.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에)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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