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우는 시 1 : 알을 깨는 순간 창비청소년시선 19
손택수.김태현.한명숙 엮음 / 창비교육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섞여야 한다는 비극

 

학교라는 공간은 날개가 돋는 찰나의 서로 다른 주체들이 섞여 들어가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 필연적인 섞임은 조금 다름에 대해 같음이 되길 강요하고,

많이 다름에 대해서는 배제하고 질서를 작동시킨다.

이러한 속성을 김준현의 김에서 밥까지에서 익살스러우면서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게 그리고 있다.

 

내 이름이 왜 김밥이야? (중략)

내 이름에 김이랑 밥만 있으면

햄이랑 달걀이랑 시금치랑 단무지랑 우엉이랑 오이랑 당근이

얼마나 서운하겠어?

 

이 시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섞임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밥에는 김과 밥뿐만이 아니라 햄, 달걀, 시금치, 단무지, 우엉, 오이, 당근이 있음에도

우리는 이 재료들의 합을 김밥이라 통칭한다.

 

그리고 섞임으로서 발생하는 불균형은 이른바 성장통이라는 감각으로 수행된다.

 

나를 키우는 시 1, 2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연해지는 기분을 어찌할 수 없었다.

고백하건대 처음으로 학교에 부임한 작년에는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학생들만 상대하기도 꽤나 버거웠었다.

올해는 조금 넓게 보리라 다짐하고 보니 자연히 눈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있다.

바깥에 자리한 채 잠자코 지켜보는 학생들, 혹은 무심함의 외피를 단단히 두른 채 속에서 상처받고 있는 학생들.

그 학생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때때로 무엇을 절감하는가.

강성은의 채광에서 보여주듯 아무리 깨려고 노력해도 

 나만 피투성이가 되고/창문은 깨지지 않, 결코 깨지지 않는 그 투명한 창문안에 나만 빼고 모두 있다는 사실을.

 

우리 반에는 성장통을 앓고 있는 학생이 한 명 있다.

학교도, 집도 전부 나를 억죄는 듯하고 도무지 어디에도 흥미를 붙일 수 없던 탓에

본인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해 무기력함으로 일축시키는 학생이다.

학교를 그만둘까 하다가 부모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겨우 학교에 나오고는 있지만

누가 봐도 하는 수 없이 등 떠밀려 나온 모습으로 조용히 앉아 있다.

 

요즘 학교생활은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학생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은 반항기 가득한 뉘앙스가 아닌

선생님께서 저에게 관심을 가져봤자 제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거예요, 라는 의미로 들렸다.

하나도 단단하지 않은 그 대답에 나는 일순간 말을 잃어버리고 깨달았다.

장통은 오롯이 혼자서 견뎌야만 하는 것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철문의 거꾸로 말했다를 통해 자꾸만 괜찮다고만 하는 학생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괜찮아요,라고 말할 때/괜찮지 않았다//저는 됐어요,라고 말할 때/되지 않았다’ 

마침내 성년의 화자는 유년의 화자에게 말을 건넨다.

내가/나라고 부르는 얘야,/너한테 분명히 말해 둘게//아무때나 웃지마,/어색할 때는 그냥 있어도 돼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덧붙인다.

하나 마나 한 말이지만,’ 

끝끝내 성년 화자는 유년 화자의 마음을 결코 성년 화자는 어루만질 수 없다.

 

그리고 어루만져지지 못한 채 유년 화자는 지금의 화자로 성장하고 만다.

때문에 우리 반 학생에게 내가 해야만 하는 말은,

성년이 되어버린 학생이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의 자신에게 결코 전달할 수 없는 다음과 같은 말일 것이다.

그렇게 크지 않아도/./그렇게 뜨겁지 않아도/./겨자씨만 하면/./겨자씨에 부는 바람이면/.’(강은교, 겨자씨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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