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와 친일파 문제
민족문제연구소 지음 / 아세아문화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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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 현대사와 친일파 문제 친일파……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단어이지만 한국인에게 있어서 친일파는 일본에 우호적이고, 일본문화를 찬양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닌, 주로 반민족행위자 또는 민족 반역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왔다. 바로 이 단어가 우리 민족의 식민지배의 문화이며 사실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반세기에 접어 든 지금의 시점에까지 식민지배 청산문제가 운위된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결국 민족분단 자체가 바로 식민지배의 미청산 그것이다. 이 책에서는 한국 근 현대사와 그에 따른 친일파 문제에 대한 논의가 드러나있다. 오늘의 시점에서 친일파를 어떻게 규정할 것 인가란 문제를,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규정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지만 그 중 1. 작위, 관료 등 지배 계층에 종사한 행위, 2. 군, 경 등 직간접적으로 행한 민족 탄압 행위, 3. 사회 저명인사로 여론 등으로 반민족적 영향력을 행사 한 경우, 4. 경제적으로 민족에 해를 끼친 경우, 5. 국가주권 침탈에 관여한 행위 등을 친일 행위라 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적 친일이나 그 이전의 사상적인 친일로 인한 독립정신의 와해, 민족 해방투쟁의 분열을 초래한 각종 사이비 독립노선 등등은 논의의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친일파가 반 식민지 또는 식민지하 에서는 반민족행위를 하고 물질적 자본주의적 발전만을 꾀하였다면 친일파의 문제는 과거 한국역사의 치부로서 남는데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친일파 문제가 현재까지 거론되는 것은, 친일파가 해방후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해방 후에 청산되기는커녕 일제 때보다 한 단계 차원이 높아져 지배층을 형성하였고, 해방직후부터 단정운동을 벌여 분단의 내적 요인을 이루었으며, 해방 후에도 여전히 근대화 지상주의에 서서 종속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꾀하였다. 분단체제, 반공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박은 친일파의 역사적 성격을 고찰한 부분에서 친일파는 자신들의 반민족적 행위를 반공이데올로기의 작동 등으로 희석화 시키고 은폐하였으며, 친일파의 득세는 민족기강을 무너뜨리고, 사회정의 등 가치관, 윤리관을 극도로 혼란에 빠뜨림과 동시에 이기주의와 부정 부패를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기본으로 삼게 했다. 또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주체성이 없고 외세의존성이 강한, 특히 친미친일 일변도의 외세의존적인 틀을 형성하였다. 이상이 대략적인 친일파의 정의 내지는 범주에 대해서 이 책에서 다룬 내용들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민족역사를 저해하는 친일파의 청산이 해방 이후에 과연 바람직하게 이루어졌는가? 이 책에서는 그러한 답변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사실상 해방은 자주적 성격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었고, 당시 서구의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38선을 경계로 점령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과정에서 친일파의 재생산 즉, 미군은 한반도에 상륙한 그 날부터 반민족혁명적인 현상유지정책을 써서 명사, 유지들을 대우하고, 일제하의 한국인 관리들을 유임시켰고, 특히 민족의 증오가 서렸던 친일경찰을 다시 불러들여 중용하였다. 미군정이 친일파를 기반으로 한 것은 일제에 `유능하게’ 충성을 바친 자들이 자신들에게도 그러한 충성을 바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우리나라는 과거 친일 행적을 한 사람들이 득세 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친일파와 우리 민족의 관계는 공존이 불가능한 관계이다. 친일파는 외래 제국주의의 무력을 등에 엎고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 민족사회를 파괴하고 유린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반면 민족사회는 이런 만행을 업으로 하는 친일세력을 처단하지 않는 한 사회의 안녕과 발전을 보장 할 수가 없다. 친일파의 청산과 그것을 극복 하지 못한 역사는 과거를 되풀이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이 식민지배 구조와 친일파 변절자들에 대한 철저한 청산 노력을 얼마나 진지하게 기울였는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 할 수 밖에 없다. 이 물음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그것은 모든 사람, 민족성원 모두에게 가는 것이지만 해방 이후의 독립운동 세력에게 특히 물어야 한다’ 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과연 식민지배구조의 문제점과 역사 발전의 조건에 대해 얼마나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고심했는지에 대해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급 해 볼 부분은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역대 정권의 입장과 정책을 비교한 부분이다. 초대 이승만 정권의 반일정책은 친일파 정권의 정략적 반일정책으로 볼 수 있다. 이승만의 대일 정책은 당시 국민들의 광범위한 반일감정에 편승해 취약한 정권의 정통성을 호도해보려는 정략적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승만의 권력기반은 누가 봐도 분명히 친일파 민족반역자 집단이었으며. 정권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군부와 경찰은 말할 것도 없고 행정부와 자유당의 고위직 대부분을 친일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박정희 정권의 특성은 `과거사 문제는 따질 입장도 못되고 그럴 겨를도 없다’라는 말로 요약 가능하다. 쿠테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에게는 권력유지를 위해 무엇보다도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했다. `절망과 기아 선상에서 신음하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자립경제를 재건……’ 운운하며 거사를 했으나 쿠테타 직후 내자동원을 위해 실시한 화폐개혁의 실패 등으로 경제사정은 날로 악화돼가고 있었다. 정권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는 경제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에 박정희는 일본에 들러 한 나라의 최고 실권자로서의 권위나 민족적 자존심은 찾아볼 수 없는 비굴한 자세로 일관하며 일본의 도움을 청했다. 이러한 박정희 정권의 태도로 인해 정신대 문제, 사할린 동포 귀환 문제, 징용 징병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 및 송환 문제 등에 대한 해결의 길이 막히게 된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엎드려 절 받은 과거사 사과와 한일 동반자 관계 합창’이라고 표현 하였는데, 박정희가 일본 제국군 출신인데 비해 전두환과 노태우는 미군에 의해 교육받은 정치 군인으로 일본에 대해 박정희만큼 이해가 깊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대일 정책은 박정희에 비해 `덜 세련되고’ 보다 직설적이며 즉흥적인 면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삼 정권에 대해서는 `역사인식이 결여된 미래지향 구호’라고 표현 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는 취임 직후 한일간의 최대 현안이었던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명확한 진상 규명을 요구할 뿐 물질적 보상은 요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른바 `문민정부’의 도덕성과 정통성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의 외교적 표현 이었고, 이에 일본은 과거에 듣기 어려웠던 사과 발언을 했다. 하지만 후에 일본에게 식민지 지배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식의 망언을 들었을 때 “이번에는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감정적 반응을 보인 것은 역사의식이나 문제의식이 결여된 단발성 대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실현 가능성도 전혀 없어 보이고 점잖지도 못한 대응을 하기 보다는 지금이라도 그런 발언이 원천적으로 나올 수 없도록 식민지 지배 청산을 확실하게 하려는 노력이 보다 문민정부다운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가 이 책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현재 노무현 정권에서도 친일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고, 일본 정부의 망발 또한 계속되고 있다. 비슷한 상황의 독일과 비교 했을 때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처럼 감정적, 비논리적 대응으로만 맞설 것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대처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 있는 글들은 그 동안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주최한 학술회의 가운데 친일파 문제를 중심으로 한 과거사 청산에 관한 내용들만 간추린 것이라고 한다. 논문 형식이다 보니 어떻게 보면 조금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글들이었지만 그에 앞서 친일파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볼 수 있었고, 단순히 우리의 어두운 과거사를 조명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앞으로의 과제 등등을 각 글쓴이 들의 글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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