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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
카린 포숨 지음, 김승욱 옮김 / 들녘 / 200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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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 그런지 장르소설이 간절했다.

어떤 것이 좋을까 곰곰 생각해보았지만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데 비해 별로 읽은 소설이 없어 고민했다. 덧붙여 말하자면 생각보다 아는 장르소설이 없다고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조금 절망했다. 반성.

추리의 고전인 애거서 크리스티나 홈즈 시리즈, 레이먼드 챈들러 등의 소설도 좋아하지만 이제는 현대물을 읽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잡지 ‘판타스틱’을 참고했다.



-유럽 미스터리에 대한 감각



소개의 말머리 제목이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웃기기도 하고…

이건 십중팔구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응용한 거다. 에디터의 센스가 마음에 든다.

여기서 나라별로 나누어서 크게 3가지로 소설을 소개하는 데 나는 위의 제목을 따라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쪽을 선택했다. 거기서 발견한 것이 바로 노르웨이 작가 ‘카린 포숨’의 소설 ‘돌아보지 마’와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 다.



‘노르웨이’라는 나라에 대해 내가 아는 바로는 북쪽에 있는 유럽의 나라 중 하나-라는 사실 뿐 전무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알고 싶다는 생각에 선택하게 된 소설이 바로 이 소설 ‘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 다.

순서로 따지면 이 소설들이 경찰 세예르 경감을 중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돌아보지 마’를 먼저 읽어야 옳았지만, 출판사에서는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를 먼저 들여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들녘에서 ‘사악한 늑대를 누가 두려워하는가’를 2006년에 우리나라에서 출판하고 그 뒤 2007년에 첫 편 ‘돌아보지 마’가 출간되었다. 다시 정리해보면 세예르 경감 시리즈(?)의 이야기 중 1편은 ‘돌아보지 마’이고 2편이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가 되는 것이다.



나는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를 먼저 읽자고 결심했다.

원래 이 시리즈는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2,3편 모두 다른 사건을 다루고는 있지만 조금씩 세예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시간의 흐름을 연결시켜 놓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2편을 먼저 읽기로 했다. 아무리 작가가 북유럽 추리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유명한 상 ‘글래스 키’상을 받았다고 해도 난 그 상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그 점은 염두 해두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소설이라는 것은 취향에 따라 재미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므로 더더욱 상에 연연하지 않으려 했다. (이미 ‘신들의 사회’에서 절실히 느낀 점이다. 물론 이 소설은 재미있다. 그런데 나에겐 너무나 어려웠다! 그 점이 문제인 게다!) 그래서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출판사측에서는 이 소설을 우리나라에 출판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을 것이다. 아직은 북유럽은 우리에겐 너무나 생소한 영역이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질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그러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출판사가 1편보다 2편을 먼저 내 놓았다는 것은 이것이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를 받아서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연유로 나는 제발 이 소설이 나와 친구가 되기를 간절히 빌며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를 구매했다. 그리고 읽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완독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선택은 탁월했다.

범죄 소설이자 사회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의 플롯은 겉보기에는 특별함이 없어 보인다. 얼핏 보면 범인이 어떠한 과정으로 인해 살인을 저질렀는가- 를 중심으로 쫓을 기세다. 하지만 이 소설의 묘미는 그것이 아니다. 작가는 에르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그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도 놓칠 수 없게끔 그들의 내면을 정교하게 풀어내는 기막힌 문장력을 갖췄다. 멀지도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은 시선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등장 인물들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내면에 감춰진 에르키라는 인물에 대한 공포를 말이다. 그들의 공포는 정당하다. 그러나 그들의 공포는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인 ‘범죄 소설의 여왕’이라는 표현이 작가 카린 포숨에게도 적용되었다는 사실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시집으로 문단에 등단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일까, 심리 묘사가 굉장하다.



에르키라는 인물은 정신병자이다. 그리고 그는 노파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된다. 이 용의자는 공교롭게도 은행을 털려던 한 청년에게 붙잡혀 인질 노릇까지 한다. 청년과 에르키는 그렇게 노르웨이의 어두운 숲으로 숨어들게 되면서 그들의 내면이 더욱더 부각된다.



이 이야기는 겨우 이틀간의 시간을 다루고 있지만 살인 용의자로서의 에르키와 모두의 공포의 대상인 에르키의 삶을 상세히 그려낸다. 나는 그의 삶을 알아갈수록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그에 대한 시선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일까. 그들은 극도로 에르키를 꺼려하고 심지어 그가 사라졌으면 하는 내면을 슬그머니 내비친다. 세상에. 오히려 그들이 더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어 사냥하려는 듯한 잔인함을 지녔다. 에르키 한 사람을 영원히 추방하고 싶어하는, 그가 범인이기를 바라는 그들이 거기 있다. 그들의 공포는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당하다고 하소연할만한 편견으로 가득하다.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는다. 죄책감은 스스로를 더욱더 막다른 길로 밀어 넣는다. 이것은 에르키에 대한 우리의 모습인 거다. 두려움, 공포, 죄악감. 하지만 에르키 역시 그들에게, 세상에게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예르라는 인물은 경찰이지만 포와르나 홈즈, 브라운 신부 등과 같이 무언가 활약을 벌이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와 같이 당황하고 고민하고 조사할 뿐이다.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신중함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심각한 사건 도중에 사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의 그러한 행동에 공감할 수 있고 나로 하여금 그런 점이 용인됨은 이 소설 자체가 바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간상을 담은 그러한 소설이기 때문이리라.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이 아니다. ‘누가 범인인가’ 보다는 ‘그는 누구인가’에 중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범죄를 다룬 사회소설인 게다.

이 소설은 강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은행강도, 구테바겐이라는 곳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모습들은 에르키와 더불어 그들의 상황에 빗대어진 사회에 대해 내면의 어두운 진실을 재조명할 수 있게끔 해 준다.



소설의 마지막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범인이 잡히고 모든 것이 그럴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씁쓸함만을 안겨주는 듯 보인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하지만 더욱 씁쓸한 결말이 있기에 한탄을 내지르게 된다. 이 부분에서 사실 영화 ‘마더’를 떠올렸다. 세상은 겉 껍데기와 편견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강조하듯 진실이란 진실이라는 이름, 단지 그뿐이다.



에르키의 정신분열증에 관한 심리묘사가 감탄스럽다. 너무나 불행한 순간을 겪은 에르키는 죄책감으로 자신을 가두고 정신분열증상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그러한 그에게 강도 청년이 하는 말이 인상 깊다. 나에게도 있었던 그 목소리…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젠장. 나도 들어. 가끔. 내면의 목소리. 상상 속에서 듣는 것처럼. 하지만 난 그게 그냥 상상이라는 것을 알아. 그 목소리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절대 안 든다고.



-무슨 근거로 그렇게 결정한 거야.



-내 목소리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어.



가장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에 출판된 카린 포숨의 소설은 2편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앞에서도 말했듯 세예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3편의 소설이 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두 번째인 이 소설은 세예르에 대한 개인의 이야기가 더 이어지려는 부분에서 끝나버렸다. 소설을 다 읽고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기기도 전에 이 점 때문에 내 가슴이 바짝바짝 말라버렸다. 속이 탄다.



이 속을 달래기 위해서는 출판사가 힘을 써주어야 한다. 하루 속히 3번째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 출판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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