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과 전복 - 현대 한국 영화의 어떤 경향
김영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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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평론가는 이 책에서 2000년대 초 한국 영화와 감독들을 아버지-없음이라는 틀로 읽어냅니다. 이 아버지-없음은 두 층위를 지니고 있어요. 하나는 영화사적 아버지-없음입니다. 한국 영화 전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에 등장한 영화감독들은 이전을 참조할 수 없습니다. 할리우드가 존 포드를, 일본이 오즈 야스지로를 참조하여 그 위에 자기 스타일을 발전시켜 온 것(15)과 대조를 이루고 있지요. 그 결과물이 장르 양식의 차용과 변주를 위한 노력입니다.


예컨대 한국 영화가 천착한 멜로, 스릴러, 호러, 범죄 영화 등의 장르를 변주하기 위해 감독들은 다양한 접근을 시도합니다. 대표적으로 박찬욱, 봉준호 감독을 예로 들 수 있지요. 박찬욱 감독이 스릴러를 주로 차용하나 인과성을 배제하여 부조리를 포착하려 하거나(109), 봉준호 감독이 정반대의 과정을 보여주어(111) 목적론적 서사에 저항하는 틈을 제시하는(113) 것처럼요.


한편, 서평집이 다루고 있는 두 번째 아버지-없음은 서사적 층위에서 작동합니다. 이것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하던 중간에 도입한 "아버지의 이름=아버지의 법"이라는 개념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란 유명한 오이디푸스 구조”, 아버지-어머니-주체의 삼각관계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상징하는 가()주어를 말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어머니와 맺은 이자 관계에 머물고 있던 아이를 분리해 독립적인 주체로 만드는 역할을 하며, 이것이 주체를 규율하는 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법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2000년대 초 한국 영화에는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없는 아들로 등장하여 자신이 따를 아버지의 모습이 비어있음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문제라고 느낍니다(312). 또는, 주인공은 비어 있던 아버지 대신 불완전한 아버지 구실을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있는 것 때문에 고통받습니다(316). 따라갈 아버지가 없는 것이지요.


최근 한국 영화에서 "아버지"의 자리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차에 생각을 정리할 기회였습니다. 등장하지 않거나 비어있는 아버지의 자리, 그 자리를 대체하려고 하거나(2000년대) 대체하려는 아들이 성장해서 아버지가 되었으나 무력감을 느끼는(2010년대) 서사는 한국사의 비극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 만나야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절대적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 만나볼 기회도 없었지요. 어떤 의미에서 프로이트의 원부(primal father) 신화와 비슷한 형태로 이미 아버지는 강력한 기표로 남아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에 서글픈 "한강 기적의 주체"라는 이름을 붙여 봅니다. “위대한 전통은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흔적으로 남아 이를 따를 수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 폐허 위에 쌓아 올린 우리의 사회는 아버지 없이 아버지들을 만들어 와야 했던 시대의 불운을 담아 경제만능주의, 성과만능주의라는 제단을 축조하고 있지요.


박찬욱, 류승완, 김지운, 이창동, 장준환, 봉준호와 같은 감독의 이름을 듣는 것은 천만 영화시대에 제작사가 강력한 힘을 가져 감독과 배우는 그저 교체 가능한 항으로 여겨지는 지금, 영화가 대중오락이지만 또한 현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이자 예술 형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울림을 전달합니다. 그것이 어떤 울림인지 궁금하신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대다수 한국 영화는 끊임없이 좋은, 훌륭한 아버지를 희구하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 대다수의 집단의식을 늘 의식하고 만들어진 창작의 결과물이다. 그 안에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자로서의 피해의식과 인정투쟁이 공존한다. 좋은 아버지를 갖지 못해 스스로도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주인공의 강박과 죄의식도 그 과정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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