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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 ㅣ 현대 예술의 거장
앙투안 드 베크.세르주 투비아나 지음, 한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평점 :
을유문화사의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 중 한권이며 최근 개정판으로 단장한 책을 읽었다.
그의 단편 ‘400번의 구타’를 레퍼런스로 본 적은 있으나 그 외의 작품은 찾아 보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 프랑스 영화를 변화시켜나간 에릭 로메르의 작품은 ‘클레르의 무릎‘, ’여름 이야기‘ 외에 여러작품을 찾아본 만큼. 로메르의 작품활동을 찾아보며 프랑수와 트뤼포의 이름은 여러번 내 기억 속에서 끄집어진 인물이다.
좋은 기회에 서평단으로 뽑혀 따끈한 개정판을 읽으며 ‘아무르 호랑이’가 떠올랐다. 활동 영역이 서울면적(605.2km²) 2배 가량에 이르고 독립생활을 하는 용맹하며 고독한 포식자. 그 호랑이 같은 트뤼포는 사생아로 태어나 양부와 친모에게 걸리적 거리는 존재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사랑을 갈구하고, 그 관심에 때로는 갑갑해하지만, 놓치면 불안해서 손에쥐고 싶어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성장한 인간 트뤼포.
반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운 영화산업에서의 트뤼포는 불완전한 자신을 스스로 다듬어 결국은 걸작품인 감독 트뤼포를 만들어냈다. 인간 트뤼포는 스스로를 혐오하며, 온 힘을 다해 좋아하는 영화와 책에 탐욕을 부려 그 영역의 전문가로 인정받고자 했고, 그 결과로 탄생된 감독 트뤼포는 영화사에 족적을 남겼다.
평론가 시절 트뤼포는 영화 연출가만이 진정한 작가이며 그 작가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작가정책‘을 구축했다. 독설도 서슴치 않게 날리던 그에게 앨프리드 히치콕, 장 콕도, 장 르누아르 등은 존경의 대상이였다. 이들의 작품을 치밀하게 해부하여 관찰하고 그 작가들의 속살까지 사랑하려한 트뤼포. 하지만 한 번 설계를 하면 바꾸기를 두려워 하는 성격은 위 감독들의 졸작까지도 사랑해야하는 괴로움을 주기도 했다.
위 감독들의 작품을 낱낱히 분해하고 해석하며, 스폰지처럼 연출방식을 흡수한 평론가 트뤼포는 대담하게 자신이 그 평론의 대상이 되기로 한다.
작가, 즉 감독이 된 이후에는 자신이 독설을 내뱉던 유명세에 안주한 감독이라는 평을 듣지 않기위해 앚둥바둥 거린다. ‘자가당착’에 빠진 작가라는 평가를 피하고자 자신이 모든 것을 컨트롤 하려는 ’ 아무르 호랑이‘로 ’감독 트뤼포’를 지속해서 보수해 나간다.
감독 트뤼포의 영역은 프랑스의 소수의 영화관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 영국, 일본, 미국에 이르기 까지 확장되며, 자신의 영역내에서 생산되는 작품 속 여배우들에게 구애한다.
자신의 컨트롤 속에 있는 배우와 스탭, 투자자, 배급자 속에서 사랑을 받으려 하고, 편안함을 느낀다.
따라서 많은 작품 속 배우와 스탭, 제작자와 배급사는 매번 같았고 그 때문에 많은 작품들이 호평보다는 비평을 받았다는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이해한 감독 트뤼포의 발자취이다. ‘400번의 구타’로 칸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아메리카의 밤’ 으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 ‘마지막 지하철’로 세자르 여러부분 수상한 이력. ‘새로운 물결(누벨바그)‘의 대표적인 인물로 정의되는 ’감독 트뤼포‘ 보다는 ’인간 트뤼포‘를 알아가며 빠져들었다.
사회에 대한 부적응은 영화를 통해 불완전한 그에게 자존감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며 자신이 갈망한 ’부모‘와 ’형제‘를 만들게 된다.
한 번 맺은 인연은 그의 죽음에 이르기 까지 대부분 끈끈하게 이어졌다는 면에서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무엇인가 알고 싶어졌다. 그의 자유로운 연애, 이혼한 부인, 사귀고 헤어진 여러 여배우들과도 긍정적인 관계를 지속한 그 원동력을 완벽히 알 수는 없겠지만 그의 ‘작가정책’를 따라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고자 한다.
‘옮긴이의 글’과 ’찾아보기‘를 포함하면 1,0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인간 트뤼포의 ‘인정받기’ 프로젝트로 탄생한 감독 트뤼포의 꾸준한 업데이트 버전을 살펴나가다 보니 짧은 시간에 책을 덮을 수 있었다.
트뤼포와 함께 누벨바그를 이끌어나간 프랑스의 감독들을 애정하는 독자들이라면 나 보다 더욱 이 책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