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룸 - 초파리, 사회 그리고 두 생물학
김우재 지음 / 김영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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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 두 생물학 그리고 기초과학 연구자의 길

 

 

교양 과학 독자로서 지금까지 10년 이상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진화 생물학, 분자 생물학, 세포생물학, 진화학, 유전학 등의 교양과학도서들과 교과서들을 중심으로, 원리와 개념, 관찰과 실험을 소개하는 책들을 주로 읽어왔다. 책을 읽으면서 생명과학이 자연스럽게 세분화되고 생명 공학으로 흘러간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과학사적 맥락에서 생명과학의 전체 흐름이 어떻게 변천해 왔고 상호작용했는지는 <플라이룸>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신선했고 충격이었다.

과학 교양 도서 독자로서 책이 재미있다고 느낄 때는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며, 거기에 저자의 현장 경험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나오는 부류의 책들이다. 물리학자 리언 레더만의 <신의 입자>가 그랬고, 김우재 교수의 <플라이 룸>도 그런 류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초파리 수컷의 짝짓기 행동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행동유전학자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를 현장의 경험과 과학사의 맥락에서 쓰고 싶다고 했다. 저자가 그렇게 쓰고 싶었던 이유는 저자가 <플라이룸>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과학사를 지나치게 선형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견해들은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심각하게 왜곡시켰다."라고 이야기한다.

 

 

공감한다. 되돌아보니 나 또한 그런 식으로 책을 읽어 왔다. 일반 교양 과학 책들을 읽는 독자들은 연구 현장을 모르기에 어떻게 과학의 개념과 원리가 형성되고 정착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현장 실험 과학자의 안타까운 마음에서 저자는 과학 교양책을 읽는 독자들을 향해 선형적으로 과학사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피상적인지를 말하고 싶은 마음에서 책을 썼다고 이야기한다.

 

 

유전학자로서 저자는 초파리라는 유전학의 모델생물이 생물학의 두 전통, 즉 진화생물학과 분자 생물학 그리고 유전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를 중심으로 어떻게 다양한 생물학의 시대를 열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화생물학은 다윈의 자연선택을 중심으로 다양한 유전통계적 기법과 수학이론을 바탕으로 실험으로 얻을 수 있는 인과적 원인을 추론하는 학문이다.

행동유전학은 수학적 도구보다 실험을 통한 조작실험을 통해 원인을 밝히는 학문이다. 둘은 같은 행동을 다루지만 많이 다른 학문의 전통을 지녔다."

 

 

저자는 말한다.

다윈의 추종자들과 멘델의 추종자들은 왜 그렇게 치열한 전투를 했는지..

진화종합의 기수들은 왜 분자진화를 주장한 이들을 못살게 굴었는지, 그리고 두 진영의 생물학자는 왜 교류를 하지 않는지...

나는 윌슨과 왓슨으로 대표되는 진화 생물학과 분자생물학이 그렇게 반목하고 교류하지 않는지를 <플라이룸> 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 모든 이유의 배후에는 다윈과 멘델을 두 기둥으로 하는 생물학의 두 전통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즉, 진화생물학적 관점과 신경생물학적 관점의 차이다.

 

 

"둘 다 생물학이다. 진화생물학의 이론이 분자 생물학의 이론을 모두 정당화하지 못한다. 분자 생물학의 발견이 진화생물학의 모든 이론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호보완적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생물학은 두 날개로 난다 ."

 

 

진화생물학과 분자생물학이 갈등해오고 반목해온 헤게모니의 자세한 역사와 갈등은 몰랐기에, 유전학이 두 생물학 사이의 긴장관계와 상호작용에서 어떻게 두 생물학의 중계자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과학 대중화시장의 문제점으로

"과학을 책으로만 접근하려는 태도는 좋은 방식인가?" 묻는다. 그러면서 '아니다.’라고 말한다. 공감한다. 책 모임을 하면서 토론하지 않고 자기가 읽은 책 내용과 주장, 자기 방법에만 함몰되어 자기방식만 고집하는 잘못된 책읽기를 하는 도그마주의자를 보아왔기에 너무나 공감한다.

 

 

"과학은 확증 편향을 벗어나는 인류의 소중한 발명품이다. 하지만 여전히 과학자는 인간이다. 인간인 과학자가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의 연구를 최대한 많은 동료들과 공유하고, 비판을 받아들이고, 열린 자세로 토론하고 자신의 뒤를 돌아보는 삶의 태도다."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인식과 경험의 노예이기에....

 

 

저자는 초파리 수컷의 짝짓기 행동을 연구하는 행동유전학자로서

질병과 건강중심으로 연구비의 정부지원 정책은 변하고 있고, 안그래도 기초과학자로서 힘들어 죽겠는데 연구비의 80퍼센트 이상이 생쥐라는 모델종에 독점된 현실에 대해서

 

 

"생명과학은 이미 생쥐라는 모델 종에 독점되었다. 연구비의 80퍼센트 이상이 생쥐에 집중되며 논문도 압도적이다." 라고 말한다. 생쥐에 밀린? 초파리 연구자의 비애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서 기초과학 연구자로서

그것이 운명이라면 그 운명 또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고 말한다. 그러나 기초과학을 꿈꾸는 과학도에게는 본인은 어린 시절, 곤충채집하면서 꿈꾸던 기초 과학자의 꿈을 접지 못해 기초과학자의 길로 들어 섰지만, 기초과학이라는 이 험난한 피라미드에는 들어서지 말라고 한다. 현실적인 충고이지만 참 아이러니다. 그래서 저자의 표현처럼 이 책은 피로 쓴 글이다.

 

 

 

 

 

 

"과학이라는 직업은 먼 길을 터벅터벅 걷는 것과 같아서 본질적으로 슬프다. 따라서 그 길이 어디로 향하던 그들은 그 길을 따를 뿐이고 그러다 가끔 뭔가를 발견한다. 물론 아닐 확률도 많다." - <소화기 신경학> 서문 중에서 읽은 어느 과학자의 글이지만, 나는

초파리, 생쥐, 크리스퍼 어느 분야를 연구하든 기초과학 연구는 외롭고 힘들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학자는 자기분야의 에레베스트를 오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존경한다. # 날아라 <플라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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