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모모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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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행성 기억상실이란 대뇌에 있는 해마가 손상되어 새롭게 겪는 경험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을 의미한다. 생소한 증상일지도 모르지만, 많은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바로 술을 많이 마셔 필름이 끊기는 경우다. 우리는 잠시 기억이 끊기기만 해도 혼란스러워하고 불안을 느낀다. 그런데 자고 일어났더니 며칠, 몇 달이 지나 있으면 어떤 심정일까. 더 이상 경험을 축적하지 못하고 하룻밤이 지나면 어제의 기억이 사라진다고 누가 말해주었을 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겪고 있는 한 소녀와 평범하지만 한없이 다정한 소년의 이야기다.


가미야 도루는 스스로를 잘못 보는 일도, 다시 보게 되는 일도 없을 거라 생각하며 무미건조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반에서 괴롭힘당하는 친구를 위해 히노 마오리에게 거짓 고백하게 된다. 히노는 3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학교 끝날 때까지 서로 말 걸지 말 것. 둘째, 연락은 되도록 짧게 할 것. 마지막으로 셋째, 날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 가미야는 이를 수락하고, 자신이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다음날 방과 후, 히노랑 만난 가미야는 고백을 하게 된 사정을 설명한다. 이야기를 들은 히노는 자신과 사귀는 게 싫은지 물어보고, 이에 가미야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둘은 이상한 조건이 있는 유사 연애를 시작한다. 기미야는 히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달라져 가는 자신과 히노를 점점 좋아하게 되는 자신에게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처음으로 가는 공원데이트에서 가이야는 히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널 좋아해도 될까결국 가미야는 세 번째 조건을 어기고 만다. 히노는 밤에 자고 나면 그날 있었던 일을 전부 잊어버리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가미야는 기억장애에 관해 이야기한 사실과 내가 널 좋아하게 된 사실을 적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날 이후 가미야는 히노가 조금이라도 일상을 즐겁게 느끼도록, 일기가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 채워지도록 노력한다. 매일 자신의 증상을 직면해야 할 히노를 위해.


소중한 존재가 생긴 가미야는 내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버지와의 갈등이다. 가미야는 매일 고난과 정면에서 맞서고 있는 히노를 생각하며 말한다. ‘상처 입기 싫어서 응모 안 하는 거잖아?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면서? 그럼, 그럼 상처 입는 겁내지 마!’라고.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려면 상처를 입어야 한다. 도망쳐선 안 된다. 자기도취에 빠져 상처 입기를 피하면 안 된다. 이 책의 저자 이치조 미사키는 소설의 내용을 통해 정말 소중한 무언가를 위해서 사람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고, 상냥해질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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