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H.M. - 기억을 절제당한 한 남자와 뇌과학계의 영토전쟁
루크 디트리치 지음, 김한영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20대에 신경과학 전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1년동안 학부생으로서 열심히 신경과학을 수업을 들었고,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미국어느 주립대에 교환연구원으로 가게 되었고, 1년동안 그곳에서 실험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8개월쯤 지났을때, 무력감과 허무함이 밀려왔습니다. 끝없는 동물실험과 인간배아줄기신경세포를 연구하는 것들, 엄청난 돈을 들여 실험을 하지만 정작 가려지고 버려지는 데이터들을 보면서 나는 어디에 와 있는것인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학업을 접었습니다.

10년이 지나고, 나는 다시 헨리 몰래슨을 만났네요. 그런데, 저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요. 긍정적인 과학의 무언가를 보게될것 같다는 희망이었을까요. 표지에 딱 영토전쟁 이라는 말이 있는데도 말이지요. 


  신경과학을 공부할때 해부학 용어들을 하도 많이 외워서 아직도 기억이 나는게 있습니다.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정말 좋아서 공부한 것들은 잘 잊혀지지 않나 봅니다. 대학생때 학교와 집사이에 통학시간이 한시간 반 정도였는데, 버스안에서 이 해부학 용어들을 무지 많이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외웠던 단어들은 기억이 나네요. 혹시 왜 그렇게 매달려서 공부했는지는 일부러 기억에서 눌러버리고 있는 것일까요. 


책에서 알수 있듯이 헨리몰래슨(환자 HM)은 빌 스코빌이라는 정신외과의에 의해 내측측두엽을 제거당합니다. 헨리의 입장에서는 의사의 실수로 자신이 이런 기억상실증 환자가 된 것이고 빌이라는 의사입장에서는 의도적인 수술이었습니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만 뇌엽절제술을 했기 때문에 논문을 써도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헨리처럼 간질이 있지만 정신병은 없는 정상적인 사람이 뇌의 어떤 부위가 사라졌을때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싶었고 그 결과는 논문에서 중요하게 다룰수 있기 때문에 주목을 받을수 있었을 테니까요.  빌 스코빌 은 이 책 저자의 외할아버지 입니다.


자신의 외할아버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뇌를 절제하는 수술을 했고, 사실 그 수술은 실험에 가까운 수술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내까지 그 실험에 이용했다는 의혹까지 받았구요. 외손주인 이 저자가 용기가 있어서, 혹은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썼을까요. 솔직하게 이 저자는 자신이 '남들이 쓸수 없는 자신만의 글을 쓰기 위해서'라고 책에서 밝힙니다. 참...솔직하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 어떤 이유에서 이 책을 썼는지 밝히지 않을수 없었겠구나 ...참 고민이 많았겠다 싶었습니다.


책은 소설처럼 우리에게 반전과 실마리들을 제공합니다. 신경과학 이야기만 늘어놓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5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이 그리 지루하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 실제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아주 많았는데, 그것은 역시 저자가 6년넘게 자료를 조사하고 끈질기게 인터뷰를 한 덕분이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헨리몰래슨과의 인터뷰는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가 어디에 사는지 알아낼수가 없어서요.


하지만 50년 넘게 뇌실험을 당한 이 딱한 사람을 만난 여러사람들과의 인터뷰와 자료조사를 통해 낯낯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저는 저의 동물실험하던 시절과 오버랩 되는 이 책들의 일화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슬픈건, 헨리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고, 한번의 뇌수술로 기억상실증환자가 되어 매 순간 30초정도만 기억하는 삶을 수십년 살았는데, 정작 그를 이용해 실험한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부자로 살았다는 것이죠. 빌 스코빌은 비싼차를 타고다니는 취미가 있었고, 헨리의 마지막 실소유주? 였던 수잔 코길은 호텔스윗룸 같은 사무실을 소유했죠.흠흠...


헨리가 나이가 들어서 평생동안 먹은 많은 약 때문에 몸은 많이 망가졌고,  평생을 기억없이 순간으로만 살았기때문에 친구도 추억도 없이 불행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몸도 움직이기 힘들고 말도 잘 못하게 되니, 그가 죽기만을 기다리던 연구자들. 아니 그의 소유자들. 죽자 마자 뇌를 적출하고 그 뇌를 가지고 서로 싸웠던 사람들....왜 그들은 그렇게 끝까지 추악해 보여야 했을까. 헨리에게 고마운 마음은 아마 1도 없었겠죠.


저자는 그 소유도 허위일수 있다는 점을 살며시 보여줍니다. 참 이부분에서는 할말이 없었습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해..어떤 희망을 가져야 할까요.

 

심지어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는것도 마음이 아픈 이 시점에, 한때는 채식까지 생각했던 내가, 왜 동물실험을 그만두었는지 초심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동물을 가두고 사고팔고 실험을 하고 마음대로 죽이고, 그 결과로 돈을 벌고, 책을 쓰고, 그 책을 다시 내가 돈주고 사고. 인간사의 돌아가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볼수록 생로병사가 의문투성이 입니다. 병원에서 치료받아 오래오래 사는 사람도 있고 그 치료의 목적이 아닌 도구가 되어 이용되는 사람들도 있고.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 수만명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몇사람이 죽어도 괜찮다는 명분이 과연 옳은 일인가. 헨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실험인간으로 사는 삶이 어떤 것인가. 내가 헨리였다면 . 내가 헨리처럼 실험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친구가 실험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책을 읽는 내내 그 질문에 답을 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뇌과학이라는 실체가 양면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오랜시간동안 자료를 조사해서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들을 보여주려 합니다. 하지만, 그가 그의 외할아버지를 통해 편견을 가지고 그의 외할아버지를 칭송하는 것이 아닌, 잘못한 것들을 솔직하게 고백하듯이 쓴것 같습니다. 고백록 같이 느껴졌습니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이 지루하지 않게 전개해 주었던 것도 이 책의 큰 강점인듯 합니다.



 https://blog.naver.com/fjrql1/221253790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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