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 갈 곳 없는 마음의 편지
오지은 지음 / 김영사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부터 인디 뮤지션을 꿈꾸던 내겐 확실한 롤모델이 있었다. 여성 뮤지션은 모두 여신이어야 했던 세계에서 여신이 아니어도 된다는 걸 보여준 사람, 홍대 마녀 오지은이다.
그녀의 신간 <당신께>를 읽었다. 이 책은 그녀가 7년간 쓴 편지를 엮은 책이다. 동명의 메일링 서비스를 몇 년간 받았던 사람으로서 감히 속삭이자면, 얼마나 많은 수정 작업을 거쳤는지 대부분이 거의 처음 보는 글이다(!) 그녀는 7년 동안 집요하게 편지를 쓰고 고쳤다. 그리고 드디어 그 편지가 부쳐졌다.
여느 편지가 그렇듯 그녀가 보낸 편지들은 대부분 소소한 일상에서 시작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녀가 머물던 숙소, 인상 깊게 읽은 책, 운동을 하거나 남의 결혼식을 가는 일상. 거기서 시작되는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 새로워서 큰 깨달음을 주는 류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에세이의 매력이 그런 것 아닌가. 내가 무심하게 지나칠 법한 소소한 일상에서 누군가는 생각의 고리를 늘어뜨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어릴 적 나는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그 말들이 마치 성경 속 구절인 것처럼 곱씹고 또 곱씹었다. 혼자서 저세상으로 돌아갈 바엔 나를 데리고 가라는 마음을, 널 보고 있으면 널 갈아먹고 싶다는 말을, 시커먼 강물이 들어와 내 몸이 검게 타들어 가는 장면을. 그 표현은 고통스러웠지만 아름다워서 나는 빨리 어른이 되어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며 차츰 알게 된 나라는 사람은 그녀와 비슷하지 않더라. 나는 겨울보단 여름을, 밤보단 낮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고뇌하는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라 그 옆에서 해맑게 “괜찮아! 할 수 있어!”를 외치는.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그녀의 음악을 듣고 책도 읽고, 그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듣고 유튜브도 보지만, 그녀는 마녀이고 나는 마녀의 핏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녀의 다른 면을 본다. 그녀는 여행지의 멋진 방에서 “왜 이 아름다운 책장에 난 자외선차단제를 네 개나 놓아두어야 하는가” 한탄하다가도 에필로그에서 “자외선차단제는 그날 이후로 사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근육은 늘리면 아프고, 스스로를 의심하면 골치가 아픕니다”라며 내가 상상한 마녀가 할 법한 말 뒤엔 이렇게 덧붙인다. “하지만 놓아버릴 순 없으니까요. 지금은 이 모양이지만 언젠가는 유연해져서 손바닥이 바닥에 닿을지도 모르지요. 순진한 마음은 참 좋지 않나요.”
그러니까 그동안 나는 큰 착각 속에 있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착각 그리고 나 자신을 알 수 있다는 착각’. 사실 그녀는 ‘마녀’이기만 했던 적이 없다. 그녀는 ‘마녀’이기도, ‘프리랜서’이기도, ‘어른’이기도, ‘아줌마’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 또한 마녀는 될 수 없을지언정, 프리랜서나 어른, 아줌마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거나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녀를 좇는다. 그녀의 노래를, 글을, 삶을 좇으며 그녀를 꿈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