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는 시 2 : 서로의 어깨를 빌려 주며 창비청소년시선 22
함민복.김태은.육기엽 엮음 / 창비교육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우리 아닌 것들을 노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요. 불행이 아니라 다행인 걸까요. 어쩌면 축복인지도요.

 

  아침에 일어나서 식구들과 밥을 먹다가, 일터에 나가고 또 집에 돌아오다가, 누군가를 만나거나 티비를 보거나 시를 읽다가, 때로는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침대에 누워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다가. 이 모든 순간 우리는 반드시 나 아닌 무언가를 사랑하고야 만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나 아닌 무언가에게 사랑받고야 만다는 것을, 또한 발견합니다. 사소하고도 버거운 사실입니다.

  우리는 가끔 이러한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외면하려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시들은 우리가 잊고 살던 것들을 꺼내어 들이댑니다.

 

  한 시인은 오이지를 만들다 물기를 다 못 짜서, 헤어진 애인한테 물기 좀 짜 달라고 건네는 꿈을 꿉니다. 애인은 꿈속에서도 물기를 꽉 짜서 돌려줍니다.

  또 다른 시인은 밥을 먹다 깻잎 반찬을 집어 드는데, 꼭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 깻잎 두 장을 떼어 주려고 말없이 달려드는 젓가락들을 봅니다.

  어떤 시인은 주막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떠드는 노인들을 보며, 어떤 시인은 떨이 과일을 한 소쿠리나 건네주는 트럭 뒤꽁무니를 보며, 어떤 시인은 나이 먹은 딸이 한밤중에 잠을 깼다고 이불을 고쳐 덮어 주는 어머니를 보며, 사랑을 노래합니다.

 

  우리 인생은 그렇습니다. 이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우리 인생이 굴러갑니다.



누구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집 앞 과일 트럭이 떨이 사과를 한 소쿠리 퍼 주었다
어둑해진 골목을 더듬거리며 빠져나가는 트럭의 꽁무니를 오래 바라보았다
낡은 코트를 양팔로 안아 드는 세탁소를
부은 발등을 들여다보며 아파요? 근심하는 엑스레이를
나는 사랑했다 절뚝이며 걷다 무심코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너는 참 처연한 눈매를 가졌구나 생각했다 어제는

지친 얼굴로 돌아와 말없이 이불을 끌어다 덮는 감기마저
사랑하게 되었음을

내일이 온다면
영혼이 떠난 육신처럼 가벼워진 이불을
상할 대로 상해 맛을 체념한 반찬을 어루만지기로 한다

‘박소란, 돌멩이를 사랑한다는 것‘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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