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화려한 축제
라이너 슈탐 지음, 안미란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아는데 나는 아주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슬픈가? 축제가 길다고 더 아름다운가? 내 삶은 하나의 축제, 짧지만 강렬한 축제이다. 마치 내가 나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에 모든 것, 전부를 지각하기라도 해야 하듯이, 나의 감각은 점점 더 예리해진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내 안에서 사랑이 한 번 피어나고 좋은 그림 세 점을 그릴 수 있다면 나는 손에 꽃을 들고 머리에 꽃을 꽂고 기꺼이 이 세상을 떠나겠다."(101쪽).


"짧지만 화려한 축제"(라이너 슈탐 지음, 안미란 옮김, 솔출판사, 2011년)는 독일미술을 근대에서 현대로 이끈 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적인 독일 여성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1876~1907)의 31 살 짧은 생애에 관한 일대기이다. 미술사학자이자 현 파울라 모더존 베커 박물관장인 라이너 슈탐이 저술한 그녀에 대한 연구총서라 하겠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는 독일 예술가 마을 보르프스 베데를 본거지로 4차례나 파리로 옮겨가며 방대한 양의 일기와 가족 및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글을 남겼다. 저자는 이런 기록들과 그밖에 주변인들의 기록(회고록, 평론과 비판) 등을 바탕으로 그 시대 예술 환경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힘께 파울라의 예술세계에 대한 변천사 및 동시대인들과의 우정과 사랑 등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그녀 삶의 무대가 되는 1900년대 전후 파리의 아카데미와 화랑가를 중심으로 한 예술계 풍경과 독일 예술계 특히 보르프스 베데 예술가들의 교류 등을 아주 잘 엿볼 수 있다.

평생 우정을 나누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나중에 파울라의 절친한 친구 였던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의 남편이 됨)와의 예술적 교감도 아름다운 감동을 준다.

"참된 인간이며 순수한 감수성을 지닌 영혼, 여성" 이고 싶었던 파울라는 오토 모더존과 결혼한 뒤 자신의 아이를 갈망하며 화가의 아내와 여성 예술가로서의 길 사이에서 번민하며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파리와 보르프스베데를 오가는 삶을 산다. 파리의 국제적인 예술감각을 키우면서 보르프스베데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구빈원의) 아이들을 그리는 등 보르프스베데 풍경화가들과는 달리 인물화에 더 관심을 쏟는다. 남편은 가장 가까이에서 일찌감치 그녀의 예술성을 알아보았으며 그 스스로도 그녀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형태의 위대한 단순함", "자연", "자유로움과 색채의 힘" 등 그녀 작품의 "독특함" 은 그 당시에는 시대를 앞서간 여성작가로서 동시대인들에게 몰이해와 무관심 심지어 냉대와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피트거와의 논쟁 55쪽). "긍정적이고 활달한" 성격으로 "자의식"이 강했던 그녀는 자신이 꿈꾸는 회화세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예술혼을 불사른다(그녀의 화풍과 미술사적 족적에 대해서는 엮인글 참조).

그녀의 열정적인 추구와 노력은 그 자체로 교훈이 되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과 삶의 열기"가 가득한 그녀의 작품은 이 책을 통해 우리곁에 새롭게 다가온다.

결정적인 시기에 그녀에게 용기와 믿음을 주어 창작열을 북돋아준 조각가 베른하르트 휘트거와의 만남 이 후 그녀의 창작시기의 정점을 알리듯 중요작품들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온다. 또한 이 시기는 대내외적으로도 인정을 받기 시작하는 때이다. 이 시기에 그린 그림들 가운데 하나인 여섯번째 결혼 기념일의 자화상은 예술사에서 "여성이 그린 최초의 누드 자화상"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수많은 여성화가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 그림은 실제 임신한 것은 아니지만 자의식을 강하게 나타낸 모성애적인 자화상으로 ,어머니와 예술가의 공통분모인 창조(자), 즉 당당하게 자신감에 찬 그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삶의 정점에서 어머니이면서 예술가이고자 했던 소원이 이루어지자마자 출산후유증으로 '아, 아쉬워라!" 라는 말을 남기고 급작스럽게 1907년 11월 20일에 짧은 생을 마친다.

아랫글은 릴케가 그녀를 회고하며 장엄한 시로 1908년에 기록한 "벗을 위한 레퀴엠'의 일부분이다.


"나에게 망자가 있고 나는 그녀를 떠나보냈다 (..).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다른 어떤 여성보다도 나를 많이 변화시킨 네가 방황하고 오다니 (..).

너는 이 열매들을 네 앞의 그릇에 담고

이들의 무게를 색채로 달아보았다.

그리고 너는 그 과일들처럼

여인들과 아이들도 바라보았다.내면으로 부터

존재의 형태가 만들어진 여인들과 아이들을.

그리고 너 자신도 열매처럼 바라보았지.

너 자신을 옷으로부터 꺼내고 거울 앞으로

가지고 가서는 너 자신을

그 안에 넣었다. 너의 눈빛만 제외하고, 큰 눈 빛은 그 앞에

말없이 있었다. 이게 나야. 아니, 이게 있어.

너의 시각은 끝끝내 호기심이 없었고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고, 진정 가난했다.

그래서 너 자신도 요구하지 않았지. 거룩했다.

나는 너를 이렇게 간직하려 한다. 네가 너를

거울 앞에 세우듯이. 깊이,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 (281~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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