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루, 종교, 권위주의
조엘 크레이머.다이아나 알스타드 지음, 추미란 옮김 / 종교와이성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책은 요즘 보기 드문 딱딱한 제목을 하고 있다. 구루, 종교, 권위주의라...
구루는 수행자이자 정신적 지도자고 종교는 정신의 정수를 모은 것이며 그래서 권위를 갖는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미루어 짐작이 갔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so what?
그래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책은 말한다. 믿음은 대개 개인적인 기호나 흥미에 기반한 것이어서 논쟁할 수 없는 것이지만 믿음의 기반이 권위주의적인지 여부와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사리를 보호하는 지에 따라 그 진실성을 판가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물리적인 강제나 협박을 동원해 조종하려고 드는 그러한 권위주의가 아닌 우리 정신, 감정, 심지어 열망과 같은 것에 숨어 있는 권위주의를 폭로하고 있다. 모든 사회의 ‘질서’라는 것은 그 사회가 구성원을 컨트롤하는 방식이다. 어떤 사회도 물리적인 강제로만 조종을 오래 지속할 수 없고 세대를 거쳐 내면화된 가치를 선전해야 한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인간의 사회화 과정은 대부분 자신을 불신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람을 조종하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고 모든 문명은 이러한 권위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그것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더욱더 확실해졌으며 그 도덕이 다시 사람들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종의 심리상태인데 이러한 도덕적 확실성이 권위주의와 함께 보호될 때 그 형태는 변하기 힘들어 진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과 권위가 개인과 사회의 행복에 방해가 된다면? 역사의 전환점이 되면 사회를 응집하고 있던 이러한 기본 토대는 더 이상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저자는 지금이 그 시기라고 보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문화는 서로 달라보여도 그것의 유지를 위해서는 권위적인 조종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다. 인류의 유산인 권위주의의 순기능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 기능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대다수의 문제는 예측할 수 없는 기술 발전의 속도와 그에 따른 물신주의에서 비롯되었다. 구시대의 가치인 종교적 권위주의로는 더 이상 이 불가피한 현재의 상황을 따라갈 수가 없다고 저자는 꼬집어서 말하고 있다. 밖으로는 사회적이고 안으로는 심리적인 이러한 구속에서 벗어날 때만 인류는 이 시기를 지혜롭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인 가치의 진정한 전환이 절실하다. 구루와 종교와 권위주의는 과거의 패러다임이 가졌던 일종의 천성일 뿐 더 이상 우리를 감당할 수 없다. 비권위주의적인 체계만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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