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는 호를 여러 개 썼는데, 가장 유명한 호가 단원이라고 한다. 단원 김홍도, 그의 고향이 '경기도 안산'이라는 설을 근거로 단원구가 생겨났다 하는 이야기의 첫 소개가 눈에 띈다. 단원 김홍도의 단원이 우리가 알고 있던 단원구였다니 흥미롭다. 김홍도의 이름 앞에 늘 붙어 다니는 '천재 화가', 그는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화가로 손꼽힌다. 나 또한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김홍도는 여러 방면에서 뛰어났지만, 풍속화에 특히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고 한다. <씨름>, <서당>, <빨래터>, <주막>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작품을 보면 당시의 풍속을 맛깔나게 그려 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도화서 화원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는데, 강세황의 추천을 빌리면 단원의 실력은 혼자 터득한 솜씨로 그려 내니 타고나지 않고서는 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뛰어난 실력으로 영조를 비롯해 정조에게까지 인정을 받아 정조는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김홍도에게 맡겼다고 하니, 그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는 끼니를 잇지 못할 만큼 생활고를 겪었는데, 돈을 못 벌어 궁핍한 게 아니고 그의 씀씀이가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얼굴이 잘생기고 성품이 시원시원해 당시 사람들이 신선과 같은 인물이라 평했다 하고, 살림살이가 가난해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하니 예술가 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 김홍도의 작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그의 예술성에 늘 찬사를 보냈는데, 김홍도에 대한 이런저런 사실들을 알게 되니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