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에게 배우는 민주주의
박혁 지음, 김민지 그림 / 맹앤앵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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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앤앵 출판사에서 출간한 <이솝에게 배우는 민주주의>는 박혁 작가가 글을 쓰고, 그의 아내 김민지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이솝이 누구인가 생각해보니 어렸을 적 알고 있는 그 이솝 이야기의 이솝이 맞다. 이솝 우화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많이 들어보고 이야기했던 '토끼와 거북이', '여우와 두루미', '당나귀를 팔러 간 아버지와 아들' 등 몇몇 가지 이야기들은 알고 있던 대표작이다. 나는 어렸을 적 이솝 우화를 읽고 이야기가 주는 교훈에 대해 생각도 해보고, 내 삶에 적용하여 고민해 보기도 했다. 작가가 이솝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책을 읽기 전에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현재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 면면에는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가 의문을 제기하며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사회적으로 과도기를 수차례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 진정한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인가 심도 있게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솝은 기원전 6세기 경, 그리스의 사모스 섬의 노예였다가 해방된 인물이다. 이솝이 살았던 시대는 갈등과 불화, 변화와 혼란으로 가득했고, 그는 짧은 우화들로 그 시대를 풍자하며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그 변화를 위해 시민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사실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 하면 아테네가 떠오르는데, 2500년 전, 도시 국가 아테네에서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가 탄생했고, 억압과 차별 속에서 절망하던 아테네 시민들에게 민주주의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던 듯하다. 폴리스의 민회에서, 재판정에서 이솝 우화는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하니, 이솝 우화가 당시 민주주의에 관한 인류 최초의 정치사상이자, 가장 성공을 거둔 정치사상이기도 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솝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정치 언어들로 주로 '공존의 기술'과 '다양성의 존중'을 가르치는데, 오늘날 현실에서도 이솝 우화를 채우고 있는 언어들은 꼭 필요한 부분들이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민주주의의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같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상상력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그동안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이솝 우화의 정치적 의미를 엄마와 아빠, 아이들, 선생님, 학생들과 함께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며, 더 좋은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꿈을 나누었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대로 이솝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 한 편 한 편을 소중한 마음으로 읽어본다.
책은 총 20가지의 이솝 우화를 소개한다. 작가는 그 이야기가 주고자 했던 교훈을 당시 시대적 배경과 접목해 왜 이솝이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는지,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인지, 민주주의를 꿈꾸고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했던 그리스의 상황과 지금 현실을 맞물려 생각해 볼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이야기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토끼와 거북이; 더디 가면 함께 할 수 있어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질 게 뻔한 경주를 거북이는 왜 하려고 했는지, 경주에서 거북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거북이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는지, 토끼가 분해서 다시 도전을 신청한다고 해도 거북이가 이길 수 있을지, 이솝이 왜 이렇게 무모한 상황을 설정했을지 작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분명 이솝은 이 이야기를 만든 이유가 있을 것이다. 토끼를 통해 교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교만으로 가득 찬 절대 권력을 막기 위해 아테네 사람들이 발명해 낸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며,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했던 민주주의의 원리는 바로 '법 앞의 평등'과 '말할 자유'였다. 토끼와의 경주가 결코 무모한 것이 아닌 것은 거북이는 느린 민주주의 안에 공존의 기쁨과 행복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배제되거나 무시되지 않고 자유롭게 교환되는 과정에서 사회는 활력이 넘치고 시민들은 행복함을 느끼고,  민주주의의 운명은 민주주의의 원리를 성실하게 실천하는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깨어 있는 시민들은 느긋하지만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느리지만 충실하게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실현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솝이 토끼와 거북이를 통해 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고, 늘 길 위에 있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똑똑한 전문가가 지배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시민 스스로가 통치하는 느린 민주주의를 선택한 아테네 시민들의 마음은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나귀를 팔러 간 아버지와 아들; 누구 말을 들을까요?

이 우화는 자신의 원칙과 소신 없이 남에게 휘둘리다 낭패를 보는 사람의 이야기로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시장으로 가는 길에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말에 휩쓸려 그들이 건네는 다양한 조언들을 모두 선택하면서 결국에는 당나귀를 잃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우화가 주는 메시지는 소통과 판단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을 조화시켜 적절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사회적 지능이라 하는데, 사회적 지능을 발달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바로 소통이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불행한 결말은 원칙과 소신의 부재가 아니라 소통과 판단의 부재 때문으로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들과 말과도 소통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민주주의자는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더 좋은 판단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진행하는 협력적 작업을 통해 좋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이 소통과 협력적 작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한다.

여우와 두루미; 왜 줘도 못 먹냐고요?

이솝 우화 중 최대 히트작인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는 협상이 실패했을 때 그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우화는 협상의 실패를 비난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민주주의의 문제를 담고 있는데, 국민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동등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한 국가란 온 시민이 빠짐없이 빙 둘러앉은 하나의 식탁과 같은 것으로, 여우와 두루미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잘 대접해야 하고 서로가 지닌 다양한 차이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우와 두루미에게 왜 줘도 못 먹느냐의 협상의 실패를 비난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민주주의의 문제를 담고 고 있고, 식사와 정치의 관계는 아주 오래된 문제로 고대 그리스에서 도입된 공동 식사 제도는 종교적 성격과 함께 정치적 역할이 컸다고 한다. 시민들이 공동 식사에 참여해 서로 대화와 논쟁을 통해 자신들의 도시에서 일어난 정치적이거나 윤리적인 일들을 이야기 나누며 서로 우애를 돈독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족이 아닌 여우와 두루미가 함께 식사하는 것은 생존이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정성껏 대접하고, 좋은 대접은 서로의 차이에 관심을 갖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 서로 친구가 되어 소통하고 함께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동등한 기회와 조건이 주어진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여우와 두루미도 아마 지금쯤은 그것을 깨달았을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솝에게 배우는 민주주의>는 이솝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설명하고, 특히 여러 질문과 상황을 제시하며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중학교 저학년이 읽기에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내용을 이솝 우화와 함께 어우러지듯 설명하여 2500년 전 아테네의 그곳으로 직접 다녀온 듯한 느낌이다. 이솝 우화는 당시 아테네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여 지금까지도 우리 현실 속에서 이야기를 채우고 있는 많은 언어들을 되짚어보고, 우리의 삶과 적용시키고 있다. 작가는 이솝이 말하고자 했던 그 언어 속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중심에 서서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더디 가면 함께 할 수 있고,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누가 양보해야 할지, 권력은 나누면 커지고, 서로를 지켜 주고, 서로 고통을 덜어 주고, 우정은 약하지 않으며,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어렸을 적 선생님이 알려 준 도덕적 훈계에 갇혀 있었던 이솝 우화의 정치적 의미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잠재되어 있던 생각과 상상력을 '민주주의' 앞에 풀어놓게 한 책으로 2500년 전 인물인 이솝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작가의 바람대로 민주주의의 소망을 많은 사람들이 갖게 되리라는 생각으로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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