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쓰기를 말하다 - 폴오스터와의 대화
폴 오스터 지음, 제임스 M. 허치슨 엮음, 심혜경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폴오스터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아주 오래 전 <달의 궁전>이 처음이었다.
그때 그 책을 어떤 이유로 집어들었는지는 기억이 전혀 없다.
그 책을 읽고 정말 오랜만에 책읽는 즐거움을 느꼈었다는 기억 밖에.
그 이후로 폴 오스터의 책은 거의 빼놓지 않고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책은 <달의 궁전>.
누구는 <뉴욕3부작>을, 누구는 <공중곡예사>를,
누구는 <브루클린 풍자극>을 최고로 꼽지만
<달의 궁전>을 읽던 경험이 가장 강렬했고 생생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작가와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의 인물과
내가 만나는 경험인 것 같다. 그러면서 아 '이 작가는 나랑 통하는구나'
'이 작가는 나랑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는 느낌이 들면서
아는 사람이 되고 친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글쓰기를 말하다 : 폴 오스터와의 대화>는
그의 인터뷰를 모아둔 책인만큼
작가로서의 폴 오스터, 인간으로서의 폴 오스터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미 <작가란 무엇인가> 에서 접한 내용도 있었지만
그것의 확장편이라고나 할까...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의 나는 무기력한 존재입니다.
글을 쓰는 일이 내게 대단한 즐거움을 주어서가 아닙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상태가 더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어서 글쓰기란 자유의지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닙니다.
생존의 문제인거죠. 이미지들이 내 안에서 아우성치며 떠오르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 때문에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선택의 여지는 없지만 그것을 껴안을 수는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받기 시작하죠.
그러한 일련의 시달림 끝에 한권의 책이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비밀 때문에 생기는 고통을 다소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위라고 봅니다. 감추어진 기억, 트라우마,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들 ...
우리 자신의 손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이런 부분에서부터
소설이 시작된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왜 쓰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이 같은 그의 대답을 읽어 나가며
나 역시 '그가 왜 좋은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늘어났다.
폴 오스터에 대해 지고지순할 정도의 애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저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라서, 그의 소설이 재미있어서라기보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한 생생한 경험과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진
단단하고도 엄격한 사람이, 그 단단함을 이야기로 부드럽게 조형해내기 때문.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책을 통해 '작가 폴오스터'보다 '인간 폴오스터'가 더 좋아졌다.
그래서 이 책에도 등장하는 한 팬과의 만남처럼,
브룩클린의 한 카페에서 우연히 폴 오스터와 마주치는 상상을 해본다.